[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의대 증원 갈등의 중재자로 떠올랐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을 하루 앞둔 24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를 만난 뒤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등을 유연하게 해달라고 대통령실에 요청한 것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강경기조를 유지하던 대통령실은 곧바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요청에 화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라”,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달라”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지시한 것이다.

이제 의료 공백 우려는 해결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의대 교수도, 전공의도, 의사협회도 의대 증원 2000명 안을 유예하거나 철회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미 각 대학에 대한 정원 배분까지 끝난 상황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언론은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며, 각 병원에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더라도 주 52시간 내에서 의료진료, 수술, 입원진료 등을 유지하는 방식의 ‘준법투쟁’이 이어져 의료 현장의 부담은 계속 커질 걸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마치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피격된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마치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피격된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건설적 협의체’에서 대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이때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중재자’를 자임하고 대통령실이 이를 서둘러 인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결국 정책적 대안이 아닌 '정치적 대안'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여당과 대통령실은 이종섭 대사 문제와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반발 등 ‘용산발 리스크’로 충돌을 빚었다. 이는 여당의 선거 전망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권심판론에 다시 불이 붙는데다 보수층이 분열해 투표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 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이재명은요?’ 반문 화법과 ‘종북론’은 이런 배경에서 강화된다. 보수 결집을 위해 외적 위협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오히려 피로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지적이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중앙일보는 25일 <한동훈 유세 ‘반명’만 들린다…여권 우려 커진 원톱 선대위> 기사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고물가 등 민생 문제 대응 등으로 돌파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호응하듯 국민의힘은 최근 선대위 산하에 민생경제특별위원회 등을 꾸렸다. 그런데 이런 전략이 힘을 받으려면 두 가지 문제의 해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용산과의 갈등 해소이다. 앞서 언급했듯 용산과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반명-반북 행보를 강화한다. 민생으로 선거 전략의 포인트를 옮기기 위해서라도 윤-한 갈등은 치유돼야 하는 거다. 

둘째는 의료 공백 문제 해소다. 가령 한국일보는 25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나선 데 대해 “민생을 강조하면서 민생 최대 이슈로 부상한 의대 정원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 게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 반영한 행보라는 취지라고 썼다. 당연한 얘기다. 초기만 해도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 이슈가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봤지만 최근에는 여당 내에서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보도도 있었다.

따라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중재자’로 나서고 용산이 이를 서둘러 인정한 것은 양자 간의 갈등 해소와 의료 공백 해소라는 두 쟁점을 동시에 건드리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걸로 볼 수 있는 셈이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청년단체 '청년하다' 회원들이 이종섭 주호주대사 구속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청년단체 '청년하다' 회원들이 이종섭 주호주대사 구속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과연 ‘용산 리스크’를 돌파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귀국한 이종섭 호주 대사는 공수처 조사를 촉구하며 이런 저런 일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상 ‘억지 일정’을 만들어 낸 것에 가깝다는 게 대부분 언론의 지적이다.

가령 조선일보의 23일 <출발부터 엉클어진 이종섭 호주 대사 제 역할 할 수 있겠나>란 제목의 사설을 보자. 조선일보는 “애당초 피의자 신분인 사람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킨 것부터가 문제였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해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후에 현지에 부임하는 게 순리였다. 이 대사가 25일부터 참석한다는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도 이 대사의 귀국 명분을 만들고자 급조한 혐의가 짙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5국 주재 대사들은 들러리를 서기 위해 원래 일정을 무리하게 취소·조정했을 것이다. 외교를 이렇게 하는 나라도 있나”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피의자 신분으로 부임한 지 11일 만에 다시 귀국한 것부터가 주재국에 대한 결례다. 이 대사는 호주 복귀 시점을 정하지 않고 귀국했다고 한다. 최소한 총선이 끝날 때까진 국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대사 업무의 장기 공백과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출발하는 이 대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도 했다. 이런 지적은 이에 앞서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기사, 사설, 칼럼 등을 통해 연이어 한 바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한겨레 25일 지면 칼럼 <총선을 전쟁터로 만든 ‘복수혈전’의 판타지’>(강희철 논설위원)에 잘 나타나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용산, 공수처, 검찰의 전현직 특수통’들은 “윤이 ‘그림자’를 보고 대경실색한 걸로 보인다”며 이종섭 대사의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가 짙은 상황에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전 구속영장 청구를 지레짐작했고, 이 경우 이종섭 대사가 심적 동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일으킨 일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퍼즐을 못 맞추게 하려면 조각을 치우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제와 민생을 말하고 의료 공백의 중재자를 자처한다고 해서 이 중대한 사건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를 선거와 관련된 변수 정도로 가볍게 다루는 정권의 태도를 유권자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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