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박보균)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 이사장 표완수)을 통해 '가짜뉴스 퇴치 대책'을 펼친다. 윤석열 대통령이 4·19 기념식에서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다. 

언론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가 설치되고 '가짜뉴스 유형화' 작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유형화하기 위해서는 가짜뉴스에 대한 규정·정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가짜뉴스를 판단하겠다고 나선 것도 문제다. '언론 진흥'을 위한 기관이 언론 위축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가짜뉴스 센터'를 운영하는 게 타당한지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미디어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진=미디어스)

문체부는 20일 <'악성 정보 전염병' 가짜뉴스 퇴치 전면 강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문체부는 가짜뉴스를 '사회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악성 정보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퇴치 대책 중 하나로 언론재단 내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5월 초 센터를 설치해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 피해 신고를 접수받고 구제 절차에 대한 상담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문체부는 센터 직무에 관한 설명에서 "보다 정밀하고 입체적인 접근을 통해 가짜뉴스를 유형화하고 관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공개한다"면서 "언론중재위에도 가짜뉴스 사례를 전달한다. 피해구제 사례집, 대응 메뉴얼도 발간해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언론재단이 유형화한 가짜뉴스를 언론보도를 조정하고 심의하는 언론중재위원회가 참고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특히 22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선거기사 심의를 주관하는 언론중재위에 공공기관이 정한 가짜뉴스 유형과 사례를 전달한다는 것은 정치적 목적을 의심받을 수 있다.  

가짜뉴스 규정도 문제투성이다. 문체부는 "악성 정보전염병 퇴치를 위한 범정부적 대응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면서 '정부 정책 관련 가짜뉴스 사례'를 조기에 발견해 대응하고, '정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허위·왜곡 보도'에 대해서는 정부 대표 소통채널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9회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과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문체부 관계자는 20일 동아일보에 "정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허위·왜곡 보도에 대해선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내 ‘사실은 이렇습니다’ 코너를 만들어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 국민소통실이 운영하는 정부 정책뉴스포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은 '사실은 이렇습니다' 코너를 2010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또 문체부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 관련 피해 구제와 예방을 강화하는 것이지, 정부가 직접 이른바 '팩트 체크'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특정 뉴스나 이슈에 대해 직접 사실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 신문·방송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해온 언론중재위원회, 방송·인터넷으로 전파되는 유해 콘텐츠와 허위 정보 등을 심의해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기능과 중복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바이든-날리면' 사태, 미국 CIA 도·감청 의혹에 대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정보 위조" 발언 관련 보도 등을 문체부와 언론재단이 어떻게 정의하고 '유형화'할지 관심이다.

문체부의 이번 발표는 최근 거듭되고 있는 윤 대통령의 '가짜뉴스' 발언과 궤를 같이한다. 경향신문은 20일 기사 <문체부 "가짜뉴스는 악성정보전염병">에서 "이날 문체부의 발표는 A4 용지 단 두 장짜리 보도자료였다. 제목과 장관의 발언을 빼면 대책은 A4 용지 한 장이 채 되지 않는 내용"이라며 "이날 발표는 문체부의 주간 보도계획에 없던 일정으로 오전에 갑자기 배포됐다. 최근 윤 대통령이 공적 자리에서 잇따라 '가짜뉴스' 등을 언급하자 담당 부처에서 대책을 발표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민주주의정상회의, 지난 6일 신문의날, 9일 부활절 예배, 19일 4·19 기념식 등에서 '가짜뉴스' '허위선동'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겨레는 20일 사설 <4·19에 비판여론 향해 ‘가짜뉴스’ 운운한 윤 대통령>에서 "누가 봐도 현 정부에 비판적인 야권과 언론을 겨냥한 말로 읽힌다"며 "국정수행 지지도가 27%(한국갤럽·13일)까지 떨어진 건 전적으로 윤 정부의 ‘자업자득’이지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모든 게 ‘가짜뉴스’ 때문이라 생각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21일 사설 <세대 갈라치고 ‘사기꾼·가짜뉴스’로 비판 막는 윤 대통령>에서 "불의에 저항한 4·19 정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언론·시민사회에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굴욕적인 친일·친미 외교 대응으로 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주 69시간제 강행 같은 국정운영의 혼선과 불통에 여론조사에서 국정지지율 하락세가 나타났다"며 "이것도 비판 세력의 선동·날조나 가짜뉴스 탓으로 몰고가려고 하면 상황의 본질을 왜곡하게 된다"고 했다. 

언론재단이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현행법상 언론재단 직무에 반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재단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에 의거해 설치된 공공기관으로, 신문법은 재단의 직무를 ▲언론산업 진흥에 필요한 사업 ▲신문의 발행·유통 등의 발전을 위한 사업 ▲한국 언론매체의 해외진출 및 국제교류 지원 ▲언론진흥기금의 조성과 관리·운용 ▲언론산업 진흥 등을 위한 조사·연구·교육·연수 ▲문체부 장관이 위탁하는 사업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국 언론재단 내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 설치는 진흥기관의 성격과 별개로 '문체부 장관의 위탁' 조항에 의거해 진행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언론재단이 2017년 펴낸 연구보고서 <가짜뉴스 현황과 문제점>는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규제나 정부 개입과 관련해 "가짜 뉴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범위의 획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법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온·오프라인 콘텐츠에 대한 검열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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