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채윤 칼럼]

▶◀ 글 시작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피해자분들의 쾌유를, 그리고 유가족과 구조 현장에 계셨던 모든 분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2022년 10월 29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내가 알던 세상이 사라졌다. 휴대폰에 쌓인 다양한 알림 메시지, 그리고 무심코 누른 그 알림 메시지가 보여준 참상은 아마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머릿속을 차지하리라.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2022년 10월 29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수많은 재난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슬픔을 토로했지만, 비극은 반복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비상식적이며, 이해할 수 없고, 혼란스러운 참사의 고통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 다시 찾아왔다.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성숙하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고, 생존자를 찾아가 친구가 죽었는데 알고 있냐고 물어보던 리포터의 모습은 참사를 마주한 우리 언론의 반인권적 행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은 반성하는 듯했다. 재난보도준칙의 마련은 과오를 반성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서 그 의지는 희미해지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 비통한 참사 현장은 또다시 여과되지 않은 채 전시되었고, 확인되지 않은 온라인상의 이야기들이 대서특필되고, 기정사실처럼 이야기하는 쓰레기 기사가 판을 쳤다.

참상의 전시, 잘못된 정보의 홍수, 불분명한 가십성 기사들은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참사 현장의 전시에 대한 자제를 촉구하였고, 트위터 코리아 등 SNS 매체에서도 이에 대한 권고를 내는 등의 행동을 취했다. 그때 우리의 언론매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공중파 방송과 주요 매체들은 SNS에서 공유되던 참사 현장의 이미지와 영상을 여과 없이, 그대로 송출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재난 앞에서 시민사회는 혼란에 빠지며 우리의 시민의식은 도전 받았고, 재난 앞에서 언론은 또다시 그 밑바닥을 보였다.

참사를 겪으며, 언론이 보여준 반인권적 행태는 우리 사회가 스스로 시민성을 회복하고, 참사를 극복하기 위하여 연대하고자 하는 동기, 그리고 참사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원동력 자체를 빼앗아 갔다. 그들의 보도에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라진 보도,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세상에 어느 누가 그저 길을 걷던 중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귀중한 목숨을 잃을 것이라 상상했는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인지,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누군가 알려줘야 하고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언론은 비극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우리 사회가 겪게 될 충격과 공포, 혼란을 달래고, 희생자들을 위한 연대와 진정한 추모의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

2일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2일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는 시민도, 정부도, 언론도 그 누구도 참사 현장에서 주체가 되지 못했고, 결국 참사 희생자는 오롯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채 끔찍한 참사 대응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 대체 이 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상처를 봉합해야 할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명확하게 답을 알지 못한다.

어제 시민언론을 표방하는 한 온라인 매체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실명 명단을 공개했다.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우리 언론에 대한 마지막 희망과 일말의 기대를 모두 포기했다. 사람이 사라진 보도, 정쟁의 도구가 된 참사 희생자의 이야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숙고가 아닌, 이를 이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득실만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이것이 참 언론의 태도라고 자위하는 자들만이 남았다.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만든 재난보도준칙은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어떤 의미였는가. 이태원 참사 이후 당신들이 쏟아낸 수많은 기사 중 단 하나의 기사라도 피해자들을 오롯한 사람으로, 사람으로 존중하고, 사람 그 자체로 귀하게 바라보고, 사람으로 그들의 고통과 피해에 공감하고 연대한 기사가 있었는지. 당신네의 양심은 진정으로 안녕한지 묻고 싶다.

김채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인권교육부 전문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8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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