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신미희 칼럼]

윤리적 언론은 취재 대상을 존중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할 가치가 있는 정보를 취재하고 전달할 경우에도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미숙하고 동의 능력이 없는 취재원, 사건 피해자 등을 취재할 때는 절차적 정당성과 가장 높은 수준의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인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

우리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여러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재난과 참사를 해석하는 시선, 즉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4.16 재단은 지난해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피해자 권리 매뉴얼>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엔 피해자 중심 재난보도 가이드라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은 '보도 참사'로 불릴 만큼 실패한 재난보도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이후 언론계는 2014년 9월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성찰의 의미로 '재난보도준칙'을 만들고, 이를 어기면 각 언론사가 속한 심의기구의 제재를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15개 언론단체의 신속한 공동 재난보도준칙 제정은 진일보한 사회적 합의로 평가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재난)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와 함께 △비윤리적 취재 금지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취재원 검증 △선정적 보도 지양 등을 비롯해 △피해자 보호 △신상 공개 주의 △피해자 인터뷰 유의 △미성년자 취재 부모 동의 △피해자 대표와의 접촉 △과거자료 사용 자제 등 피해자 인권보호 조항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됐기 때문입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메시지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보호' 명시한 재난보도준칙

이번 ‘10.29 이태원 참사'에서 언론의 재난보도는 나아졌을까요? 피해자 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언론의 다양한 노력에도 ‘10.29 이태원 참사' 보도 역시 낙제점을 면하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기자협회가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긴급요청을 통해 "일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SNS 게시물들이 넘쳐나며 수습 현장에 혼란을 주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며 "언론이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 사태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할 정도였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에서 가장 큰 참상은 현장 사진과 영상이 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무차별적으로 빠르게 퍼지며 피해자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당한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SNS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참사 사진·영상을 공유하는 시민들에 성숙한 윤리의식을 주문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참사 사진영상을 퍼와 기사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언론은 현장 사진·영상을 유포하는 시민들과 이를 관리하지 않는 플랫폼 사업자의 무책임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진·영상이 온라인에서 떠돌아도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그 책무를 지켜야 할 언론이 문제의 사진‧영상을 게이트키핑하지 않고 기사화 한 점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의 자의적 잣대

그런데 정작 흐림 처리를 하지 말아야 할 보도에서 엉뚱한 흐림 처리가 된 사례가 나왔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11월 22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처음으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진상‧책임 규명 △피해자 참여 보장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조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시설 마련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 6가지 요구사항을 밝혔습니다.

유가족들은 이름과 얼굴을 밝혔고, 희생된 가족의 이름에 이어 사연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일부 유가족은 희생자를 알리기 위해 영정 사진이나 생전 사진을 들고 섰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의 첫 입장 발표인 만큼 언론도 적극 보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을 보도한 언론의 사진·영상은 언론사별로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바로 유가족과 희생자 모습에 대한 '흐림 처리'였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기자회견’ 저녁종합뉴스 ‘흐림 처리’ 비교 ©민주언론시민연합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기자회견’ 저녁종합뉴스 ‘흐림 처리’ 비교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결과, 희생자와 유가족 모두 공개한 저녁종합뉴스는 MBC‧채널A‧ MBN뿐이며, KBS와 SBS는 희생자 사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JTBC는 <박성태 다시보기> 첫 화면에서 희생자의 사진이 없었지만, 앵커 멘트 도중엔 공개했습니다. TV조선은 희생자와 유가족 모두를 흐리게 처리했습니다. 신문의 경우 중앙일보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 첫 회견 "정부 진정한 사과, 책임 규명">에 포함된 사진 기사에서 희생자 모습을 '흐림 처리’했습니다. 한국경제는 '흐림 처리' 유무를 떠나 아예 사진조차 싣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신상 보호를 위해 '흐림 처리'를 했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공적 자리에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희생자를 알리기 원했던 유가족 의도는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가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가족들이 용기 내 공개한 사진이 언론에 의해 감춰진 셈이 되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에서 보도국장에게 일선 기자들에게 재난보도준칙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물었습니다. 별도로 교육한 적도 없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을 모아 집체교육을 한다고 효과적이지도 않을 것 같다고 답변했습니다. 교육되지 않는 준칙과 강령은 사문화될 뿐입니다.

아직도 온라인에는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을 '흐림 처리' 없이 그대로 보도한 영상과 사진 보도가 남아있습니다. 참혹했던 현장의 모습은 그대로 보도되고, 공개를 원하는 유가족과 피해자 사진은 '흐림 처리’하는 언론의 자의적 잣대는 재난보도준칙이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인지 되새기게 합니다. 더 나아가 부디 많은 언론인들이 피해자 중심의 재난보도준칙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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