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총경들이 모여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치하는 방안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모자를 대기발령 조치했다는 뉴스를 보며 영화 ‘부당거래’를 떠올렸다.

이 영화에서 경찰들은 같은 경찰인 주인공이 부당하게 대기발령됐다는 이유로 대낮부터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들이키며 사보타주를 감행한다. 지방경찰청장이 현장을 찾아 주인공과 독대하자 동료 경찰들은 실력행사가 효과가 있다며 역시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둥 한다. 그러나 실상 지방경찰청장이 태업 현장을 방문한 것은 인사처분을 철회하는 대가로 주인공에게 부당한 임무를 맡기기 위한 목적이다. 이러나 저러나 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경찰의 운명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장면인데, 묘하게 지금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데가 있다. 차기 경찰청장이 총대를 메고 경찰 내부의 반발을 진압하러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선 두 가지 차원의 반론이 있다. 첫째로 절차적인 문제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하지 않고 시행령 개정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쟁점이 있지만, 보수정권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 같은 사람들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경찰국 설치를 강행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을 엄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이석연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 통제할 수 있는 근거가 법적으로 없다는 것에 대해 “로스쿨 초년생에게 물어봐도 다 아는 얘기”라고 했다.

물론 백보를 양보해서, 원내 다수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라도 밀어 붙여야만 하는 명분이 있다면 경찰국 설치는 법적으로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정당성도 크게 나누면 두 가지 논리다. 첫째는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져 통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거고, 둘째는 지금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이뤄진 음성적 지휘 통제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는 거다.

국민의힘은 이전 정권에서 경찰이 수사해야 할 것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하는 게 먼저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 자체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일 수 있다. 만일 전 정권에서 경찰이 수사해야 할 것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면 그건 권력의 눈치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 통제한다고 해서 권력의 눈치를 보는 고질적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민정수석에서 행안부 장관(심지어 현 정권에선 법무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직을 맡고 있다)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다만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할 필요는 있다. 전 정권에선 자치경찰제 도입을 부분적으로 추진했다.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전면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이게 과연 정답인지,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대해진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 권력이 직접 조직을 틀어쥐는 방식은 이미 이때 대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하다. 경찰 권력의 비대화가 걱정스러운 건 역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경찰이 비대해진 권한을 통해 권력에 과도하게 충성해 반대파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둘째는 경찰이 일선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등의 잘못을 저지르는 빈도가 높아질 거고 그런 잘못을 바로잡기도 더 어려워질 거라는 점이다. 만일 집권세력이 후자를 근거로 경찰국 설치를 주장하는 거라면 그나마 대안적 논의를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국 설치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실상은 전자와 관련된 쟁점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 이건 정치권력이 경찰로부터 거리를 두게 할 일이지 직접 통제하는 걸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다면 현 정권과 여당이 답이 아닌 것을 답이라고 주장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는 게 야당의 답이지만 그걸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검찰은 자기들끼리 살아있는 권력과 겨루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무용담이 있지만 경찰 조직은 앞서 ‘우화’에서 봤듯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다. 지금대로 놔둘 경우에도 정권이 바뀌는 대로 코드를 맞춰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뻔한 결말을 굳이 부정한다면 그건 권력관계의 일반론이 아닌 다른 것, 그러니까 어떤 특수성을 떠올리고 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이 정권이 이전의 보수정권과도 차별화되는 점은 ‘검찰정권’에 가까운 형태라는 점이다. 단지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사를 비롯해 각종 현안에 대응하는 정권의 태도는 검찰의 시각을 상정해야 이해가 빠른 일이 많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에도 ‘대통령이 검사 정체성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고언이 연일 실리겠는가.

‘검찰정권’이 보는 경찰 조직은 어떤 것일까? 수사권 조정은 전 정권뿐 아니라 역대 보수정권에서도 검경 갈등의 핵심 요인이었다. 만일 정치권력과 경찰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면 경찰이 이기는 일은 없다. 그러나 대치전선이 검찰과 경찰 사이에 있다고 전제하면, 경찰은 예를 들어 수사권이라는 ‘밥그릇’을 위해 얼마든지 검찰을 물어 뜯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검찰이 보는 경찰 조직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권과 여당은 경찰 내의 반발을 어떤 부조리에 대한 항의로 보지 않고 경찰대 출신들의 집단이기주의나 민주당 정권에서 승진한 사람들의 정치적 준동 정도로나 규정하는 거다.

민주당 정권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주장한 것은 이런 저런 제도 개선 논의의 맥락을 떠나 “우리는 검찰을 적대할 것”이라는 정치적 선언에 가까웠다. 반면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민주적 통제’는 “경찰이 우리를 적대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추진하는 ‘반격’에 가까워 보인다. 이제와서 보면 민주당의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주장은 민주주의에도 그들 자신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같은 편’들의 충성경쟁용 주장이 아니라 공론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라.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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