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 단위로 책정되는 연장노동 시간을 월 단위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주 52시간제를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노동계의 요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노총은 “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이정식 장관은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핵심은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이다. 이 장관은 “현장에서는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를 불가피하게 요청하는 실정이다.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가령 노사 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등 합리적인 총량 관리 단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 중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 중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정식 장관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연구개발 분야에만 정산 기간을 3개월로 인정하고 있어 그 범위의 불명확성·형평성 등에 문제가 있다”며 “근로자의 편의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적정 정산기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시간 저축계좌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 설명에 따르면 현재 기업은 노사 합의만 있으면 월 52시간 범위 안에서 추가 노동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연장노동을 한 주에 몰아서 할 경우 1주 최대 노동시간은 92시간이다. 연장노동시간 확대는 경영계의 요구 사항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5일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기획재정부는 16일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추진과제로 내세운 바 있다.

이정식 장관은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호봉제를 직무급·성과급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구구조, 근무환경, 세대특성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임금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연공성 임금체계는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지만, 이직이 잦은 저성장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노동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를 7월 중 구성해 구체적인 입법·정책과제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장관은 “연구회 논의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라며 “법령 개정 등 후속조치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 이 과정에서 노사와 충분히 소통하고 다양한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고 했다.

양대노총 "편법적 노동시간 연장"

한겨레 기자는 질의응답에서 노동계가 주 52시간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고, 노사관계가 사측으로 기울어있는 사업장에선 노동권 보장이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장관은 “브리핑을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하겠다고 양대 노총, 경영계 대표에게 전화를 드렸다”며 “현장의 모든 노사관계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어느 한쪽에 힘이 기울어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힘이 불균형한 데 대해서는 균형되게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추가노동시간 변경은 법 개정 사항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관련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정식 장관은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을 만들어 나가자는 데 대해서는 여야 간이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여야 의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를 해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KBS·뉴시스 기자는 주당 노동시간이 늘어날 경우 노동자 건강권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장관은 “근로자 건강권 보호조치가 반드시 병행될 것”이라며 “국제과제에는 ‘근로자의 건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건강 보호조치를 병행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합리적 개편 수준과 건강권 보호조치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CBS 기자는 “과제에 대한 표현 대부분 ‘검토하겠다’라는 수준이어서 장관이 직접 발표한 정책 방향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솔직히 (노동 유연화가) 경영계 요구 사항이어서 서두르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발표내용이 한국 노동시장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와 도전에 가장 시급하고 직접적인 해답이라고 볼 수 있는지 와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장관은 “이 부분이 반드시 경영계에서 요구하는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며 “중대재해법도 그렇지만 노동계에서도 현장에서 애로사항이 많다고 의견, 제안, 요구, 불만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대노총은 반대하는 내용의 논평·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전혀 없이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스타트업·전문직의 노동시간 규제 예외적용 등 초과노동시간에 대한 편법적인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정책만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관심사인 시대착오적 장시간 노동방안과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만을 내놓은 것에 대해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며 “장관은 대통령과 정부의 입안의 사탕처럼 굴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5인 미만 사업장·단시간노동자의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 복수노조를 이용한 부당노동행위 엄벌과 교섭권 보장, 교사·공무원의 노동기본권·정치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비정규직제도철폐 등 노동정책의 일대 전환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총도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은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며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아무런 제한 없는 초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개혁방안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합리적 대안’이 아니라 ‘사용자단체 요구에 따른 편파적 법·제도 개악 방안’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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