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도 어김없이 진보네트워크센터(약칭 진보넷)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보낸 공문이 날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보넷 서버에 올라온 북한게시물과 불법정보에 대한 ‘삭제’요청이다. 진보넷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네트워크’를 선언하며 설립한 단체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네이버와 같은 통신사업자는 아니지만, 방통심의위의 ‘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진보넷은 이러한 방통심의위 ‘권고’에 불복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장여경 진보넷 활동가는 “불법정보나 국가보안법에 등에 의해 법원의 판결이 있다면 우리도 삭제할 수 있다”면서 “‘다만’ 방통심의위의 심의에는 따를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2008년 조중동불매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광고주리스트가 다음에 게재되자, 방통심의위는 총 80건의 게시글을 대상으로 심의를 진행한 결과 게시글 58건에 대해 ‘해당 정보의 삭제’를 결정했다. 다음은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에 따라 포털 내 조중동 광고주리스트 게시글을 하루아침에 삭제했다. 담당자의 실수든 고의든 ‘유사사례’가 포함돼 총 600여 건이 넘는 글이 근거도 없이 삭제되기도 했다.

이러한 통신사업자의 행태에 비춰봤을 때 진보넷의 저항은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복의 근거는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방통심의위 ‘심의’ 권고를 따를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진보넷 화면 캡처.
방통심의위 출범 1년, 진보넷이 방통심의위 ‘심의’에 저항하다

방통심의위가 인터넷 게시물의 불법성을 판단하고 삭제를 권고하는 것 자체가 위헌에 해당한다는 것이 진보넷의 입장이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18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설치 등’에 설립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21조 ‘심의위원회의 직무’를 통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이란 ‘불법정보의 유통금지’를 그 심의 대상으로 두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제재조치’에 있다.

방통위원회 설립법 25조 ‘제재조치’를 살펴보면 “제44조의7에 따른 불법정보 유통에 대한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조치에도 절차라는 것이 있다.

25조 2항은 “(방통)심의위원회는 제재조치를 정하려 할 때에는 미리 당사자 또는 대리인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3항은 “(방통)심의위원회는 제재조치를 정했을 때에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지체 없이 처분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5항은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조치의 처분을 요청받은 때에는 ‘방송법’ 또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해당 사업자 등에 대하여 그 제재조치의 처분을 명령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을 잘 따져보면 방통심의위에 ‘심의’의 권한은 있지만 ‘처분’에 대한 명령의 권한은 없다. 현재 방통심의위가 인터넷 상의 게시글에 대해 ‘제재조치’를 하려면 방통위에 처분을 요청하도록 되어 있는 실정이다.

방통심의위 출범 1년, “부당하게 글이 삭제됐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미디어스
그러나 조중동광고불매운동 광고주목록 게시글에 대해 삭제를 결정한 것은 방통심의위였다. 또한 최근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시멘트’관련 게시글 4건에 대해서도 방통심의위는 ‘삭제’를 명령했다. 방통심의위 ‘삭제’ 명령 자체가 부당한 셈이 된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이 자체를 우려했다. 그는 “설립법에 따라 방통위원회에서 삭제를 명령하면 게시글을 삭제당한 사람은 행정소송을 하면 된다”면서 “그러나 방통심의위의 명령에 따라 게시글이 삭제될 때에는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통심의위는 통신사업자에 대해 ‘처분’이 아니라 ‘시정요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신사업자들이 시정요구를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된다는 식이 된다”면서 “이 경우 방통심의위에 대한 행정소송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방통심의위의 ‘시정요구’로 포털에서 게시글이 삭제되지만 그 책임은 방통심의위에서 질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것을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대입해보더라도 방통심의위는 ‘시정요구’를 한 것이고 어디까지나 삭제를 한 책임은 통신사업자에게 있는 것이다.

방통심의위 출범 1년, ‘처분’권한은 방통심의위에 없다

지난 2월19일 법원에서는 조중동광고불매운동을 벌인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회원 24명에 대해 모두 유죄를 판결했지만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주 리스트를 게재하거나 게재된 광고주 리스트를 보고 소비자로서의 불매의사를 고지하는 등 각종 방법에 의한 호소로 설득활동을 벌이는 것은 구독이나 광고게재 여부의 결정을 상대방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한 허용된다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진보넷은 “방통심의위의 58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결정이 잘못됐다”며 ‘게시물 58건에 대한 불법 결정 철회’, ‘유사사례에 대한 삭제 권고 철회 및 통신사업자에 재전달’은 물론 ‘방통심의위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고통당한 게시자 및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민원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방통심의위는 “당시 위원회의 결정사항은 관련 법률 및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심의위 출범 1년에 즈음해 보니, 제재조치에 대한 ‘처분’ 명령은 방통심의위엔 없었고, 시정요구에 대한 책임은 ‘통신사업자’에 있었다. 그런데도 방통심의위는 버젓히 ‘유사행위’로 무한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진품보다 더 진품 같은 짝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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