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가까이 공영방송에 몸담아오면서 지금껏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 가운데 하나는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언론인이고 학자들이고 할 것 없이 어쩌면 그렇게 공영방송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모르면서 마치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이들이 핏대를 세우는 지경에 이르면, 그 무지(無知)는 참담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노골적인 적의(敵意)를 과격한 언어로 포장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른바 영향력 있는 신문들의 기사와 칼럼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진정 어린 비판을 찾아보기란 난망하다. 아무리 뒤지고 또 뒤져봐도 공영방송에 대한 날카롭고 건설적인 비판의식으로 무장한 책 한 권 변변히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공영방송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별 것 아닌 그 무엇이었던가. 아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권력자 치고 호시탐탐 공영방송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장악하고 길들이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운 이가 없었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은 늘 정치적, 사회적 논란과 갈등의 폭풍에 휩쓸려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싸구려 담론 속에서 공영방송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실종됐고,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의 목소리 또한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를 겨냥한 이 책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현실이 역으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공영방송에 대해 무지했던 한때 우리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를 배우고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으나, 그것은 대단한 시대착오였음이 곧 드러났다. 정권 교체라는 ‘변화’를 경험해본 적 없는 일본의 개혁적·진보적 지식인들에게 한국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으로 인식돼 왔다. 2004년 7월 예능 프로듀서의 제작비 착복 사건과 2005년 1월 민간 여성 국제 전범재판 프로그램 내용의 부분 삭제 파문은 NHK로 하여금 100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의 집단 수신료 납부 거부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하게 했다. 세계의 공영방송을 주제로 한 <미디어포커스>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은 한국의 공영방송이 전문화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이미 수년 전부터 방송해 왔다는 것과 신문이 방송을, 방송이 신문을 상호 비평하고 감시할 수 있는 우리의 사회적 풍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더 이상 그들로부터 본받고 싶은 대상이 아니게 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MBC <미디어 비평>에서 출발한 방송의 매체 비평 기능은 KBS의 <미디어포커스>를 정점으로 현저하게 약화됐고, 공영방송을 입맛대로 길들여 보려는 지배 권력의 노골적인 장악 기도 앞에서 ‘한때’ 공영방송이기에 가능했던 날선 비판은 갈수록 무뎌진다. 비판은 국익(國益)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너무도 쉽사리 좌절되고 있다. 일본 굴지의 탐사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지난 1990년의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의 파탄 상황을 ‘제2의 패전’으로 규정하면서 ‘대본영 발표를 전달하기만 하는 미디어’에 의지해서는 미드웨이 해전부터 전함 야마토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대본영 발표밖에 몰랐던 국민과 마찬가지로 ‘제2의 패전’ 뒤에 가려진 진실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지배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감시, 견제라는 언론의 본래적 사명을 날카롭게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2005년 1월 민간 여성 국제 전범재판 프로그램 내용의 부분 삭제 파문에 대해 NHK의 방송총국장은 ‘통상 업무의 범위’라는 말로 일본의 공영방송 NHK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 반론이란 것이 이렇다. “사업계획의 설명에 부수하여, 앞으로 방송할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통상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업무범위 안이다. 개별 프로그램에 대해 질문을 받은 경우는 그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이런 반론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NHK가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해마다 국회의 예산 심의에 맞춰 의원들을 상대로 전방위적 로비 활동을 전개하게 만드는 일본만의 시스템, 바로 국회의 NHK 예산 심의 기능 때문이다. 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검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십 년에 걸친 NHK와 정치권의 끈끈한 유착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에서도 드문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일본 신문과 방송의 유착으로 인해 신문 지면에서 비판적인 기사가 줄어들고 프로그램 선전 기사가 증가했다. NHK 문제가 폭발했을 때, 일본의 언론은 NHK의 ‘불상사’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보도는커녕, NHK 내부 개혁 실태에 대한 검증도 전혀 하지 않았다. 저자는 NHK 사태에 대한 신문의 동업자 의식에 대해 “시민은 본래 삼권을 감시하는 미디어를 새로운 별도의 권력으로서 감시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신문은 TV의 겸업자가 되고 TV는 신문의 파트너가 됨으로써 상호 감시기능은 완전히 약화되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제언하는, 역사적으로 결실을 본 적이 없는 일본 NHK 개혁안을 들여다보니 상당 부분 우리 공영방송이 일찍이 경험해본 것들이다. △“신문 기사를 프로그램 소재로 삼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솔직하게 신문을 포함한 미디어 전체를 비평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한국에서 확대하고 있는 퍼블릭 채널, 시민 액세스채널의 실적을 참고로 한다.” △“방송에 관한 행정은 정부의 직접 감독권한에서 떼어내 독립된 방송행정위원회 소관으로 한다.” 정부가 설치해 놓은 ‘틀 속의 공공성’에서 벗어나 공영방송이 시청자와 함께 자주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할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이같은 제언이 한국의 공영방송 체제를 상당 부분 참고로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공영방송의 철학과 운영, 규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갈수록 퇴행을 거듭해, 애초부터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없었던 NHK를 어느새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저자 역시도 NHK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이 필요한지를 깊이 따져보는 움직임이 없었던 일본의 현실을 개탄하고 있는데, 진지한 문제의식과 건설적인 대안으로 탄탄하게 무장한 이런 저작의 존재가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더 없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200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제작 담당하면서 언론에 관심 갖게 되고,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50회에 걸쳐 미디어오늘에 <김석의 영화읽기>를 연재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보도한 탐사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시의 저서 <세상을 바꾼 탐사보도/ 밀라이 학살과 그 후유증에 관한 보고>를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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