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발표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제고사였기에 공개 결과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한 정부와 경제 불황으로 학생들이 점점 사라져간다던 사설학원, 학부모와 학생들은 물론이다. 그뿐이랴.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학부모와 학생에게 줬다는 이유로 해임 및 파면 당한 해직교사들 역시 결과에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 1월 19일자 조선일보 8면 기사
누구에겐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걱정거리를 한 짐 떠안긴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이 차이만큼 신문보도 역시 달랐다. 아래는 오늘 19일자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관련 기사 제목들이다.

조선일보, ‘임실의 기적’ 알고보니 오류
중앙일보, 학력 미달자 없다던 임실 “2~3명 보고 누락
동아일보, 임실 학업성취도 일부 사실과 달라
경향신문, 전북 임실 기초학력 1위 ‘조작
한겨레, ‘깜짝학력’ 임실 성적조작 의혹

차이를 알겠는가?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각각 ‘오류’, ‘누락’, ‘사실과 달라’라고 했다. 왜 표현이 이리 차이가 날까? 그 이면에 무엇이 있기에.

학업성취도 평가가 발표된 다음날, 조중동은 온통 ‘임실’=‘공교육의 희망’이었다.

◇조선일보 17일 보도 : “16일 발표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임실은 ‘기초학력 미달’인 초등학생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적은 지역으로 꼽혔다. 임실 지역 초등 6년생 240명은 사회-과학-영어 등 3개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이 단 1명도 없는 진기록을 세웠다. 국어-수학에서도 미달 비율이 각각 0.8%와 0.4%에 그쳐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중앙일보 17일 보도 : 제목은 “임실 15개 초등학교엔 낙제생이 없다 ‘교사들 열정으로 이룬 초등 공교육 1번지”다.
“주민 3만 1000여 명의 ‘깡촌’ 임실군이 ‘초등학교 공교육 1번지’로 떠올랐다. 군내 15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1390여 명. 도시의 한 학교 학생 수보다 적다. 하지만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임실 초등생들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은 사실상 0%였다. 이런 배경에는 3년 전 부임한 장위현(60) 교육장의 힘이 크다.”

▲ 2월 17일 중앙일보 1면 기사

◇동아일보 17일 보도 : 제목은 “서울의 굴욕, 임실의 기적”이다.
“전북 임실은 초6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0.2%)이 전국에서 가장 낮았는데 특히 영어와 과학, 사회 세 과목에서는 미달 비율 ‘제로(0)’를 기록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렇게 16일 임실지역 초등학교 6학년의 사회·과학·영어 3개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발표됐지만 사실은 달랐다. 사회과목 6명, 과학과목도 6명, 영어과목 2명이 국가기준 기초학력 미달학생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임실의 기적은 없었다.

조중동, 임실의 기적 어떻게 키워나갔나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임실의 기적’을 끊임없이 키워나갔다. 임실의 기적 뒤에는 ‘교장의 리더십’, ‘교사의 열정’, ‘방과후 학교’가 있었다고 선전했다. 임실지역을 서울지역과 끊임없이 비교했고 공교육은 바로 이렇게 가야 한다고들 주장했다. 마치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사교육은 필요 없고, 서울에서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 2월 17일 동아일보 5면 기사
그러나 임실의 기적이 없었다던 오늘, 앞선 조중동의 보도를 되씹어 볼 필요는 충분하다. 조중동이 보도했듯 임실에는 분명 교장의 리더십이 있었고, 교사들의 열정도 가득했으며, 방과후 학교도 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강남은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학부모들에게 주는 충격은 대단히 클 것 같다. 결론은 지금까지 조중동이 주장했던 것과는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는 곧 공교육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사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고 서울지역의 학생들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여기서 한참을 더 나갔다. 안병만 교육부 장관의 말을 빌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두고 교원평가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고, 평준화 교육정책의 폐기를 선언하고 나왔다. 물론 평준화를 주장해온 전교조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조중동은 왜 ‘오류’, ‘누락’, ‘사실과 달라’라고 했을까?

이번 사건은 분명한 조작이다. 해당 학교에서는 분명 교육청에 학업성취도 미달 학생이 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조작’이라 부르지 않았다. 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사례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교육 없이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서울지역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을 ‘조작’으로 규정해버리면 지금까지의 논리를 모두 뒤엎는 것이 되기 때문에 차마 ‘조작’이라고는 하지 못한 것이다. 끊임없이 신화는 만들어져야 했기에.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나도 한때는 철거민, 비정규직이었다’라는 문법과도 연결된다. <신화는 없다>는 그의 책의 소개는 “병약하고 소심했던 노점상 소년이 대기업 회장이 되기까지, 불굴의 의지로 가난과 역경을 헤쳐나간 감동의 인간드라마!”다. 이것이 곧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주는 ‘희망’의 실체다. <워낭소리>를 본 이명박 대통령의 “역시 작품이 좋으면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말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참혹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주는 ‘희망’도 없었다. 맹모삼천지교라 했다. 이제 우리는 교육을 위해서는 서울로, 학원으로 가야만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가 남긴 결과는 이렇게 씁쓸했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이런 결과의 책임을 다시 평준화 교육과 전교조로 몰아가려고 한다. 1980년 전두환의 국보위처럼 과외·학원 금지 철퇴를 못 내리는 게 마치 평준화 교육과 전교조 탓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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