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이 돌연 사의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사의 표명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동걸 원장이 금융연구원 홈페이지에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라는 글을 올려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임사를 대신한 이 글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동걸 원장은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금융연구원을 홍보도구로 활용하려 했다는 근거로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금산분리완화 정책’을 예로 들었다.

이 원장은 “(이러한)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다”며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라고 밝혀 이동걸 원장의 사의가 정부와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 한국금융연구원 사이트 화면 캡처.
“경제성장률 예측마저도 정치 변수화”

이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완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어 나갔다. 그는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 부를 수 있냐”면서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다”고 말해 금산분리완화 정책을 한반도 대운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전 세계 선진국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라고 평가했다. 또 그만큼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했다고도 전했다.

특히 그의 글에서 큰 파문이 예상되는 부분은 “경제성장률 예측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이라는 대목이다. 경제성장률 예측에까지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은 오늘(30일자) 신문 1면 머리기사에서 금융연구원 관계자의 말을 빌려 “정부 측 관계자가 1.7%를 2.0% 안팎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증언을 받아내기도 했다.

▲ 1월 29일자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 사의표명에 대한 의혹제기 기사
경향·한겨레 ‘사퇴 압력설’ 강력 제기해 눈길

이번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의 사의표명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한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였다. 경향신문은 어제(29일치) 2면 기사에서 “그동안 금융연구원장이 임기 중 사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어 이 원장이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던졌다. 또한 금융연구원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원장은 금산분리 완화를 적극 반대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았다”며 사의 표명이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이동걸 원장이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과 금융규제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전력을 소개하면서 ‘사퇴 압력설’에 무게를 실었다.

한겨레 역시 어제(29일치) 26면 기사에서 이동걸 원장의 사의표명과 정부와의 연관 가능성을 들고 나왔다. 특히 한겨레는 그동안 이 원장의 행보를 자세히 전하면서 “이 원장이 바로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을 두고도 비판해왔다”면서 “자통법이 추구하는 시장형 금융시스템의 위험 요소를 파악해 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한 말을 인용해 그 근거를 뒷받침했다. 이외에도 한겨레는 “이동걸 원장이 2004년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재직 때에도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와 관련해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문제를 공개해 주목했었다”고도 전했다.

29일에 이어 경향과 한겨레는 오늘(30일) 신문에서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를 자세히 소개하며 이 원장의 사의표명에 대한 정부의 압력 의혹을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경향은 30일자 2면에서 “타기관에도 ‘성장률 압력’ 가능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경향신문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2월 24일 ‘2009년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기”했으며 “이달이 되어서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7%를 제시했다”고 의문을 품었다.

▲ 1월 30일자 '경향신문'의 "타기관에도 '성장률 압력' 가능성" 기사
또한 삼성증권의 경우 “지난해 12월 1일 내놓은 ‘2009년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이 -0.2%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전망한 것에 대한 파문이 확산되자 반나절 만에 인터넷에서 삭제했다고 전했다. 삼성증권에서는 이에 대해 “수정 및 보완을 위해서”라고 해명했으나 증권업계에서는 “정부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참고로 정부가 내놓은 경제성장률은 3%안팎이다.

결국 이번 이동걸 원장의 글과 관련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부가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에 대해 깊숙하게 그것도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와 관련 금융연구원에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했고, 경제성장률 예측도 연구원의 자율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정부정책에 맞는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라고 입김을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동걸 원장은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 1월 29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 사의 표명 단신보도

조중동 모두 침묵…왜?

‘씽크 탱크(Think Tank)’를 수행해야할 연구기관을 향해 ‘마우스 탱크(Mouth Tank)’의 역할을 하라고 압박하는 이명박 정부.

이에 대해 조중동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침묵’ 상태다. 이들은 지난 29일 “임기 1년 6개월을 남기고 사의를 표명했다”며 짤막한 단신으로 다룬 것 이외에는 별도의 기사를 전혀 싣지 않고 있다.

혹시 조중동 등 일부 언론들이 MB정부의 ‘마우스 탱크(Mouth Tank)’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금융연구원 대신 MB정부의 ‘씽크탱크(Think Tank)’를 맡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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