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당이 추천한 심의위원들이 연달아 교체된 것이다. 지난달 24일 국민의당 추천으로 신임 선거방송심의위원에 위촉된 경향신문 전 논설위원의 경우 그 다음날인 25일부터 ‘당사자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실제 첫 공식업무가 시작된 28일, 그는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했다는 사실은 이후 알려졌다.

국민의당은 후임으로 선거방송 관련 심의 경력이 많았던 정병운 서울시교육청 정보공개심의회 위원장을 다시 추천했다. 그러나 정병운 신임 위원 역시 위촉 3일 만에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사퇴했다. 결국, 국민의당은 정연정 교수를 다시 추천했고 현재 ‘위촉 작업’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의당이 정연정 배제대 교수를 선거방송심의위원으로 추천한 게 ‘적절한가’를 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연정 교수는 국민의당 공천관리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달 18일까지는 국민의당 공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을 했다. 그럼에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선거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형평성 등을 심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연정 교수는 무엇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측근’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논란은 확대될 수 있다.

국민의당 정연정 공천관리위원회 대변인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20대 총선 제3차 단수 공천 및 경선 지역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일단 <공직선거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조의2(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제3항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위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연정 교수는 국민의당 당원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조항을 적용해 법적으로 ‘부적격’하다고는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방송심의위원의 ‘정당 가입’을 왜 금지했는지 법의 취지를 생각해본다면 문제가 없다고만은 할 수 없다.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특정 당의 공천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인물이 선거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형평성을 그야말로 ‘중립적’ 시각에서 심의할 수 있을 것인지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 KBS1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한 정연정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우려는 강해진다. 정연정 교수는 당일 국민의당 공천과 관련해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부에서 원칙과 절차 등이 제대로 확보됐다”며 “공관위 내에서 한 번도 표결을 한 적이 없다. 대부분 100%합의제로 결정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박선숙·이태규 등 주요 당직자의 비례대표 순번 논란에 대해서도 “(그들은) 국민의당의 창당 공신”이라며 두둔했다. 주지하다시피 국민의당은 공천논란으로 당사에 도끼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해 정연정 교수는 “(그런) 격렬한 행위들은 실제로 안타까운 심정의발로로 이해한다. 다만, 국민들께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답했다.

국민의당 뿐 아니라, 새누리당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볼썽사나운 공천과정은 국민들 모두를 한숨 짓게 했다. 정연정 교수의 답변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했다고 볼 순 없으나 당적 차원에서 공천과정의 문제보다는 당사에 난입한 이들의 개인행동 문제를 더 큰 비중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연정 교수는 또 국민의당에 합류한 주요 인사들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에 있을 때, 이른 바 친노패권주의에 반대해서 정치적 결단을 내린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언론의 ‘더불어민주당=친노패권’이라는 등식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친노패권’이라는 단어와 이를 통한 종편의 흑색선전은 최근 방통심의위와 선거방송심의위에서 ‘심의’ 대상에 자주 오른다. 과연, TV조선과 채널A의 과도한 ‘친노패권’ 몰이에 대해 정연정 교수가 제대로 된 심의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19대 국회다. 그럼에도 방통위원, 공영방송 사장 및 이사와 관련해 결격사유를 구체화시킨 것은 소기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특히 평가할 만한 것은 ‘3년’이라는 기간을 설정한 부분이다. 3년 이내에 방송과 통신 관련 사업에 종사했던 사람과 공직에서 퇴직한 날부터 3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사람은 방송과 관련한 직책을 맡을 수 없다.

여기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 신분을 상실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도 포함된다. 해당 조항은 ‘김인규 금지법’이라고도 불렸다. 인수위에 있던 사람이 곧바로 KBS 등 공영방송 사장으로 임명될 경우 방송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방송 내용의 공정성·객관성 등을 심의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한 해당 조항을 준용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국민의당이 ‘방송심의’의 정치적 중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정연정 교수를 추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당의 선거방송심의위원 추천 과정에는 상식적으로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 짧은 시간에 추천자를 두 명이나 교체한 것 또한 여기에 해당한다. 국민의당은 국회 교섭단체가 된 후, 선거방송심의위의 요청에 따라 김택근 경향신문 전 논설위원을 추천했다. 하지만 김택근 전 논설위원은 이미 장기 해외체류 일정이 잡혀 있어 선거방송심의위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이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제다.

정병운 심의위원의 경우, 국민의당과의 소통 및 조율과정에서 이해가 어긋나 그만둔 것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정병운 심의위원이 사퇴함해 국민의당이 추천한 선거방송심의위원들은 짧은 시간 추천과 의결, 사의표명, 재추천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해야 했다. 이것 자체가 국민의당이 가진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어진 권리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는 입장이 된 거다. 선거방송심의위는 오는 5월 13일이면 모든 임기가 끝난다.

한 언론계 인사는 국민의당의 선거방송심의위원의 정연정 교수 추천을 두고 “(선거방송심의위를) 각 당의 선수가 들어가 서로 감시하는 곳으로 착각한 것 아니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만큼 얼토당토 않는 일이다.

선거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객관성은 시청자들의 눈이 기준이 되어야한다. 결코, 특정 당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물론, 자신을 추천해준 당의 영향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방통심의위가 그동안 6대3의 ‘자판기심의’라는 오명을 썼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러한대, 당 공관위 대변인 출신을 선거방송심의위원으로 추천한 것에는 누구도 쉽게 수긍하기는 힘들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