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테러방지법’에 반대해 진행해왔던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 권한 강화 및 시민인권 후퇴로 지적돼왔던 법안 문구가 단 한 곳도 수정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결정한 것은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선거구 획정안 처리 지연으로 인한 역풍을 우려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당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10시간 18분 필리버스터로 화제를 모았던 은수미 의원은 “이런 식으로 함부로 중단을 하면 누가 우리에게 표를 줍니까? 항상 하다 말 텐데”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연결에서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과 관련해 “‘오랜만에 야당다운 야당을 봤다’, ‘필리페스티벌’이라고까지 얘기해주신 국민들의 좌절을 생각하면 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이 아픈 것조차 사치”라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총 10시간 18분간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연설을 해 국내 최장 기록을 세운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필리버스터 중단은 의원총회를 열어 결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던 은수미 의원은 “(비대위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은)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건 존중하지만 민주적 절차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필리버스터는 더 이상 우리들만의 야당만의 것이 아니다. 시민들과 함께 납득하고 함께 접는 그런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호소했다”고 밝혔다.

은수미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위해 올라갔을 때조차 아무 기대하지 않았다”며 “만류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테러방지법의 발목을 잡는다는 일종의 마녀사냥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그런데, 소통이 됐고 지지자들이 날밤을 새면서 결집이 시작됐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새누리당 쪽에서 ‘선거용’이라고 비난한 것”이라면서 “그런데 왜 우리 당은 이것이 선거에 안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같은 생각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당내에서 ‘보수언론들의 이념 프레임이 시작됐고 이대로 가다간 총선 망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은수미 의원은 “그렇지 않다”며 “처음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때부터 10일 끝나고 나서 막을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고 했던 것이고, 지지자들도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언론 환경이 좋지 않다보니 (필리버스터를 통해)‘테러방지법이 국민감시법’이고, ‘모든 국민이 사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내 핸드폰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라는 얘기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며 “그 다음에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그것을 바꿔야 된다는 힘이 집결될 수 있다는 공감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의원은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함부로 중단을 하면 누가 우리에게 표를 주냐. 항상 하다 말텐데”라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이어, “국민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 저 사람들한테 좀 희망을 걸고 그래, 재개정을 할 사람들이구나’라고 판단하지 않겠나. 지금 도망가 버리면 그건 거짓말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은수미 의원은 끝으로, 필리버스터 경험과 관련해 “영화 <E.T>가 생각났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외계인과 지구인이 처음으로 손을 접촉하는 장면”이라면서 “처음으로 국민과 마음을 다해서 접촉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역사다. 우리 당이 졌지만 국민이 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같은 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 우윤근 의원은 “필리버스터 중단은 결론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잘했다고 본다”며 “선거구 획정이 결정되지 않으면 선거가 연기될 수도 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실적으로 3월 10일까지 끌고 가더라도 테러방지법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지금 중단하고 총선에서 잘못된 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하자는 주장이 주요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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