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내용과 관련한 법적 분쟁으로 인해 기사와 영상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2015년 7월 7일에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 ‘외국 투자 기업의 그늘’ 편은 현재 다시보기 시청불가상태다. 대만 영사관이 위치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281일 노숙농성(2일 기준)을 벌이고 있는 하이디스 사태를 다룬 거의 유일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었다. 하이디스 사태는 해외매각과 기술유출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까지 ‘쌍용차 사태’와 닮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고 언론 또한 관심 없다.

2015년 7월 7일에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 ‘외국 투자 기업의 그늘’ 편

‘하이디스’ 사태에 대해서는 진보성향의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가장 열심히 다뤄왔다. ‘제2의 쌍용차 사태’라고 규정해 심각성을 드러내고 중앙노동위원회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건드린 곳은 경향신문 뿐이다. 하이디스 사태와 관련한 보도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상파의 경우 시청 불가 상태인 KBS <시사기획 창>이 유일하다.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하이디스 노동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리해고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노동조합 지회장으로서 하이디스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왔던 배재형 씨가 그다. 사측은 배재형 전 지회장에 손해배상 및 가압류 등의 압력을 행사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달라진 건 없다. 노동자들은 오늘도 광화문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스는 하이디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24일(수) 저녁 광화문을 찾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이상목 지회장과 김홍일 사무장, 위경복 조직부장 그리고 대만활동가 링이 좌담에 참여했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온 링의 생각이 특히 궁금했다. 하이디스는 현재 대만 영풍위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하이디스는 제2의 쌍용차?…“오히려 쌍용차 사태가 제2의 하이디스 사태”

미디어스 권순택 기자(이하 미디어스) : 검색해봤는데, 관련 기사들이 별로 없어서 놀랐다. 일단 기본적인 상황부터 설명을 해주시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이디스’라고 검색해봤더니 ‘제2의 쌍용차 사태’라고 불리더라. 어떤 이유인가?

김홍일 사무장(이하 김홍일) : ‘제2의 쌍용차 사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쌍용차 사태를 거꾸로 ‘제2의 하이디스’라고 불러야 한다. 하이디스에서 앞의 ‘하이’는 ‘현대(HYUNDAI)’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리고 그 뒤의 ‘디스’는 디스플레이(Display)를 뜻한다. 이렇듯 하이디스는 현대전자가 전신이었다. 그러다가 회사가 워커아웃 사태로 들어가면서 2001년 1월 첨단기술을 보유한 LCD사업부 매각이 추진됐고, 그 당시 하이디스라는 이름으로 분사됐다. 그러다가 2003년 1월 중국의 BOE사에 매각된다. 한국 첨단 기업 중 최초 중국에 매각된 그룹이 바로 하이디스다. 쌍용차가 상하이차에 매각된 것은 1년 후다.

문제는 중국으로 매각된 이후 발생했다. 이른바 먹튀자본 문제다. 16년 전인 2001년 분사될 때 상태로 건물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더 이상 투자가 안됐다는 얘기다. 중국 BOE는 LCD 공장을 새로 짓는 등의 모습을 보였지만, 2006년 초여름 급작스럽게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저쪽(중국) 공장이 되다보니 도마뱀 꼬리 자르듯, 외국인투자기업 중 법정관리로 들어간 1호가 바로 하이디스이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기술(광시야각기술, FFS)만 챙기고 자본을 철수시켜버렸다. 그리고 약 2년간의 법정관리 끝에 지금의 대주주인 대만 E-ink HOLDINGS(당시 PVI, 이하 이잉크)에 2008년 재매각 됐다. 당시 MOU체결할 때 노동조합에서 81일 정도 파업을 하면서 거둔 성과가 기술매각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거였다. 이잉크 측은 하이디스의 정상화를 약속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제대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미디어스 : 앞서 중국 BOE의 기술 먹튀 이야기도 나왔는데, ‘특허’ 문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

김홍일 : 하이디스는 디스플레이 사업을 초창기 때부터 해왔던 곳이다. 그러다보니 특허권을 많이 가지고 있다. 노트북 LCD를 보면 시야각(모니터를 상하좌우의 위치에서 볼 때 정 중앙에서 볼 때와 차이)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야각을 넓히기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됐고 FFS(Fringe Field Switching) 광시야각기술을 하이디스에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이 하이디스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 기술 특허이다. 그런데, 중국 BOE는 하이디스의 4000여 개의 특허권을 빼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소송에서도 결과가 나왔다.

미디어스 : ‘기술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MOU를 체결한 대만 기업은 왜 문제가 됐나?

김홍일 : 이잉크 측에서는 그 특허를 임대하는 형태로 취하고 있고 빌려주는 개념으로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생산 부문 손실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2015년 3월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정리해고에 나선 것이다. 신정연휴 마치고 출근했는데 강당에 모아놓고 ‘특허사업만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이천 공장이 폐쇄됐고, 79명이 정리해고 됐다. 국가적으로도 가슴 아픈 사건이다. 하이디스라는 이름으로 현대전자로부터 분사할 때 직원이 2000명 정도 있었다. 그런데, 정리해고 할 때 보니 400명 정도로 감소해 있었다. 신규채용을 안하고 자연퇴사가 이어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2001년 하이디스와 유사한 규모의 삼성과 LG를 보라. 삼성 LCD는 현재 세계 시장 1, 2위를 다투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하이디스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한숨)

위경복 조직국장(이하 위경복) : (경영진이 주장하듯 하이디스가)적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현재 하이디스와 특허계약을 맺고 있는 곳은 6군데나 있다. 2012년 7월 샤프라는 일본업체에서 2012년부터 10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AOU라는 대만업체와도 2012년 8월에 특허계약을 했다. 같은 해 10월 CPT라는 업체에도 그렇다. CMI라는 업체와는 2013년 11월 계약했다. 대부분 10년 계약이다. 하이디스를 처음 먹튀했던 BOE와의 계약은 2014년 4월이다 그리고 저희는 A사라고 하는데 어느 회사인지 나타나지 않지만 그 회사하고도 2015년 12월 특허 계약했다. 2014년 특허로만 순이익 845억 원 정도 된다. 총 순이익은 1200억 정도였다. 그런데, 2015년 결산을 어떻게 냈는지 모르겠지만 1000억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정리해고를 밀어붙인 것이다. 물론, 갚을 돈이 있었다. 생산제조 하면서 임금도 주고 본사 이잉크로부터 차입했던 돈을 갚기도 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들어올 금액은 고스란히 하이디스 자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차입했던 돈을 안 갚았다면 빚은 있지만 흑자가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리해고라니….

김홍일 : 하이디스 경영진들도 직원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2014년 말 사측 임원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이 같이 워크샵을 진행했었다. 그 당시 ‘앞으로 전망이 좋아질 것이다’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2015년 1월 초 강당에 직원들을 모아놓고 ‘공장폐쇄를 하겠다’고 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특허비용은 제조해서 팔았던 금액과 별개라는 얘기다. 그래서 오로지 적자라고만 이야기를 한다.

지난달 24일(수) 저녁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을 찾았다. 인터뷰에는 이상목 지회장과 대만 링 활동가, 김홍일 사무장, 위경복 조직부장이 함께했다ⓒ미디어스

미디어스 : 그런데,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하이디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이상목 : 중노위 판정 받기 전에 MBC <시사매거진2580>에서 노동위원회의 판결에 대해 집중보도한 적이 있었다. 노동위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전문성이 없는 위원들이 판정을 하고 있어서 잘못된 결정들이 많이 나온다는 그런 취지였다. 우리도 그 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하이디스 또한 그것의 한 예라고 생각된다. 명확하게 흑자 상태에서 정리해고를 한 부분인데 부당해고로 인정 안 된 판정에 불복하고 있고, 그래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해고무효 소송도 진행 중이다.

위경복 : 지노위나 중노위나 비슷하다. 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특허 또한 하이디스의 한 자산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노위는 회사와 같이 별개라고 봤다. 글라스 사이드가 얼마나 커지느냐에 따라 2세대와 2.5세대, 3세대 등이 결정된다. 하이디스는 3.5세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7세대 이후 기술만 국가 차원의 보호대상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국의 기술을 이렇게 보호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나. 하이디스가 가진 3.5세대 기술은 원천기술이다. 그를 토대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8세대 기술까지 개발돼 있다. 삼성과 LG가 LCD사업을 하고 있지만 1위 사업자가 중국 BOE로 바뀌었다. 거기는 현재 10세대가 넘어가고 있다. 사측은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5세대 라인(새장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1조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노동부도 그렇다고 인정해줬다. 왜 1조원이나 드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삼성은 5세대 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 이전 비용은 500억 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1조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금액이다. 특허로 얻는 수익을 분리하지 말고 현재의 단가에서 생산을 하고, 희망퇴직을 받으면 충분히 공장을 폐쇄하지 않아도 된다.

미디어스 : 현재 노조 상황은 어떤가? 투쟁 이야기도 궁금하다. 대만에 원정투쟁을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체투지 관련 기사가 인상 깊었다.

(출처: 타이페이타임스 화면캡처)

하이디스 노동자들, 대만 원정투쟁에 나서다…대만언론의 ‘집중’ VS 한국언론의 ‘외면’

위경복 : 지난해 1월 공장 폐쇄 이후로 석 달간 아무 것도 안한 것도 아니다. 공장폐쇄가 되면서 현재 회사를 법률적으로 대리하는 곳이 김앤장이 됐다. 거기 가서 선전전도 하고 그렇게 투쟁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2월 처음으로 대만 원정투쟁을 갔다. 2차가 3월 달. 3차가 5월 달. 그리고 4차가 7월 달이었다. 현재는 5차 원정투쟁을 준비 중이다. 원정투쟁의 중요한 이유는 대만에 하이디스 투쟁을 알리자는 거다. 우리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투쟁하는 이유와 같다. 6층에 대만 영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투쟁하는지 너희도 알아야 한다. 대만 측에 연락을 해서 해결하는데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기 위한 목적이다. 대만 원정투쟁할 때에는 배재형 동지가 자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5년 5월 하이디스 배재형 전 지회장이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사진=하이디스지회)

미디어스 : 언론은 이렇게 보도한다. “중국 대표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는 최근 구동칩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반도체 업체에 지분 투자를 제의했다. 해당 업체가 거절하면서 납품 계약만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BOE는 2003년 한국디스플레이 제조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한 후 노하우와 인력을 흡수해 액정화면 표시장치(LCD)의 세계적 강자로 급부상했다”. 그런 하이디스를 왜 해외매각했는지 납득이 안 된다.

김홍일 : 중국 BOE는 반도체 사업을 새롭게 하겠다고 하면서 매각됐다. 그런데, 하이디스 주식이 빠지고 하면서 난리가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한국과 중국 경영진들을 고소했다. 그때 경영진들이 대법원에서 유죄(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러면 뭘 하나. 이미 기술은 다 빠져 나간 상태였는데….

위경복 : 2006년 빼갈 기술은 거의 다 빼갔다. FFS 기술을 포함해 중국 BOE에 4331건의 기술 유출이 있었다. 전산망을 통해서 계속 나간 것이다. 결국, BOE는 하이디스를 인수해서 키우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 당시 LCD사업에서 하이디스는 하이닉스보다 더 잘나갔었다. 17인치 LCD모니터로 호황이던 때였고 매출도 좋았다. 그런데 BOE는 하이디스를 인수하면서 투자는 안하고 인력과 기술만 빼갔다. 그리고 기술을 빼 간 후 이제 필요없으니 ‘부도처리’했다. 이잉크는 대만 영풍위그룹의 자회사이다. 당시 이잉크는 3세대 기술을 가진 곳이었다. 구멍가게가 대형마트를 인수한 것으로 보면 된다. 왜 그런지 그 의도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미디어스 : 다시 원정투쟁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위경복 : 원정투쟁 기획은 정리해고 되기 전에 저희 인원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타이페이 안에 있는 영풍위그룹 계열사들과 투쟁했고 점거까지 했었다. 가서 영풍위 그룹에서 한국 공장 자체를 폐쇄시키고 또 앞으로 정리해고를 할 것이라고 알렸다. 흑자를 보는 상태에서 이럴 수 있느냐는 거였다. 3차 원정투쟁 때에는 고 배재형 동지 유가족들과 함께 들어갔다. 교섭이 안 되고 있으니 교섭에 나서라는 요구였다. 그렇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왔다. 갈 때, 체류 기간 90일을 채우고 오자는 결의를 가지고 다시 갔다. 5월 21일 출국했는데 6월 11일 강제 추방당했다. 당시 연행된 사람이 8명이나 됐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청와대(총통부) 앞에서 억울하다는 선전 피켓을 들었다는 이유였다. ‘사회질서유지법’인가 그런 법의 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만 허쇼오추안 영풍위그룹 회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들이 와서 연행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벌금형도 떨어졌었다. 물론, 그 후 대만 쪽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대응해서 무죄 판결이 났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대만에 원정투쟁을 가다보니 이제 대만정부 차원에서 입국을 막은 것이다. 그래서 4차는 릴레이로 원정투쟁을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

미디어스 : 5차 원정투쟁도 준비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위경복 : 기획까지는 다 했는데 ‘블랙리스트’라고 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고민 중이다. 4차 원정투쟁 갔던 동지들 중 2명을 재입국시켜봤는데 우리나라의 출입국관리소(이민소)에서 잡혔다. 그리고 김포공항 자체에서 표를 안 주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를 통해 입국을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도중 잡혀 대만으로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3차 원정투쟁 갔다가 강제추방당한 8명이 그 대상인 것 같다.

미디어스 : 하이디스 투쟁에 대만 유학생 링 씨가 함께하고 있다고 들었다. 대만 자본을 상대로 하는 투쟁에 대만 활동가가 국내에서 합류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것인가?

링 활동가(이하 링) :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해 연구하려고 한국에 왔다. 그러다 2013년 말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국제부장을 인터뷰하고 민주노총 집회에 갔다가 하이디스 공장폐쇄 이야기가 나오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대만 영풍위그룹이 연관돼 있고 거기에서 공장폐쇄하고 이득만 챙기려고 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다가 하이디스 투쟁에 합류하게 됐다. 영풍위 그룹은 대만에서는 큰 회사로 이미지가 매우 좋다. 그런데 그런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만 원정투쟁 때에도 한국에 있다가 대만에 있는 알고 있던 활동가들을 통해 연락해서 같이 가기도 했었다.

미디어스 : 한국에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공부하러 왔다면, 대만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가?

: 대만에서 학생신분이 되기 전에 노조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했었다. 대만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보다 더 심했는데, 사람들이 노조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공부를 하러 오게 된 것이다. 대만은 한국과 다르다. 대만에서는 현재 파견노동법 입법해야 하는지 금지해야하는지 논의하고 있다. 파견노동법이라는게 따로 없지만 이미 비정규직은 많이 통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이 같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노동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에 들어왔다. (링 씨는 실제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미디어스 : 영풍위 그룹에 대한 이미지가 대만에서는 좋은 편이라고 했는데….

: 영풍위그룹은 제지회사로 아기들이 보는 책을 출판하거나 교육방식 등과 관련한 책들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기업 이미지가 괜찮다. 그런데, 그런 회사에서 특허권만 챙기고 노동자들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 영풍위 그룹이 한국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대만 노동자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이디스 투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대만 내 진보적인 노조들의 경우 하이디스 투쟁에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대만에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특히, 한국은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다른 사업자와도 같이 투쟁할 수 있는데 대만은 기업별 노조만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되는데, 대만에서는 투쟁하기 더 어려운 환경이라고 보면 된다.

미디어스 : 전화로도 설명을 드렸다. 하이디스 상황을 공부하기 위해 이런 저런 기사들을 검색해봤는데, 다룬 곳 자체가 별로 없었다. 반면, 대만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받았다고 들었다.

이상목 지회장(이하 이상목) :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술 유출문제 아닌가. 해외자본이 자국 노동자들의 고용을 파괴하고 특허기술만 가지고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사태가 바로 하이디스 사태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를 언론이 중점적으로 다뤄야 재발방지를 할 수 있을 텐데 주요 언론들에서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대만에 갔을 때 생방송 토론프로그램에도 직접 참여했었다. KBS와 같은 공영방송(TTV)이었다. 대만에서는 하이디스 원정투쟁이 바로 바로 신문에 나고 방송에도 나오고 그랬다. 한국 뉴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다. 배재형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한 번 정도 나왔고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언론의 역할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취재를 하다가 중단된 곳도 많다. 기자분들이 취재를 해도 중간 데스크에서 잘리는 일들도 몇 차례 있었고 그렇다.

: 대만시민들의 하이디스 투쟁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하이디스 투쟁 선전물도 적극적으로 받아주시고 연대하는 동지들도 그리고 직장인들과 학생들도 일이 끝나고 함께 결합해고, 같이 밤 새주고 그런 것들이 원동력이 됐다. 영풍위 그룹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관련된 회사에서도 불매 운동 스티커를 만들어 배포해주기도 했다.

“노동자는 국적을 떠나 하나”

미디어스 : 하이디스 사태를 ‘잘 해결됐다’고 평가하려면 무엇이 이뤄져야 할까?

이상목 : 해고자들 대한 고용이 어떤 형태로든 담보가 돼야 한다. 저희는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그래서 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해결방안의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내 어디에도 하소연 할 데가 없다. 대표이사는 한국에 있지만 만날 수가 없다. 사무실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작년 5월 이후, 본적도 없다. 하이디스 사태의 1차적 원인은 무분별한 해외매각에 있다. 정부가 ‘해외자본 유치’라는 이름으로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다. 쌍용차도 그렇고 하이디스 건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정부의 관리감독은 소홀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술은 다 빼앗겼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로운 게 무엇인가. 이렇듯 하이디스 사태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하는 정부가 아직까지도 방치하고 있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 대만주주들이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와 주길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만 원정투쟁을 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디어스 : 링 씨가 대만사람으로서 하이디스 투쟁에 합류하고 있는데….

이상목 : 저희에게는 소금과 같은 역할이다. 대만 원정투쟁에 갔을 때에도 언어적으로 소통이 잘 안됐다. 그런데 링 동지를 통해 입장을 전달했다. 원정투쟁 할 때에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그렇고 링 동지가 없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위경복 : 링 동지는 정말 자기 일처럼 함께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해고당한 것처럼 말이다.

: 다 똑같은 노동자들이다. 자본에 있어서는 한국이건 대만이건 마찬가지이다. 대만 또한 외국자본들이 들어온 상황이기도 하다. 비슷한 일을 언제라도 당할 수 있다. 하이디스 투쟁에 함께 하지 않으면 나중에 대만 노동자들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투쟁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상목 : 노동자는 국적을 떠나 하나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연대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미디어스 : 대만언론들이 하이디스 투쟁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뭔가? 한국 언론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 대만언론들 또한 한국의 언론과 본질적인 차이는 많지 않다. 한국처럼 친자본 언론이 대부분이다. 그런 언론들이 주류이고 대안매체들이 있고 그렇다. 그런데, 하이디스는 외국사람들이 대만에 와서 투쟁을 하는 게 처음이라는 점에서 관심거리 였다. 대만 사람들은 ‘먹튀자본’과 ‘해고는 살인이다’, ‘일하고 싶다’라는 구호들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대만에서는 해고를 당하면 노동자들이 ‘일’이 아닌 ‘돈’을 원한다. 해고를 당하는 대신 돈을 더 달라는 형태다. 그런데, 먼 타국 땅에서 노동자들이 와서 돈을 달라는 게 아니라 고용을 유지해달라고 하는 게 놀라웠다. 그런 점에서 연대를 해준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스 : 대만의 노동상황은 어떠한가?

: 대만은 고용이 길게 유지되지 않는다. 큰 회사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다른 일자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시장 내 양극화가 심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보단 덜하다. 물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미디어스 : 제2의 하이디스 사태를 막기 위한 방안도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김홍일 : 산업기술유출방지법? 그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이디스는 2005년 전산망 개방으로 기술 유출이 4천 여 건이 있었다. 물론,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제정되기는 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만들었다. 그런데, 10년 이상 됐고 내용이 느슨한 편이다. 여러 나라와 FTA가 진행되면서 무용지물된 부분도 많다. 정부가 조금 더 국익이나 이 땅의 월급쟁이들을 대변해서 일을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자본가 입장에서만 큰 걸 챙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이디스 사태와 같은 것들이 시간이 더 지나면 그들에게도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법을 수정보완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하면 안 되지 않겠나. 사실 부끄럽다. 자국의 국민들이 대만 원정투쟁에 나섰다가 불이익을 당하고 돌아왔는데 어느 곳 나서서 대변해 주는 곳이 없지 않나.

(자료=하이디스지회)

미디어스 : 앞으로 연대투쟁과 관련해선 어떤 계획 갖고 있나?

위경복 : 조직된 지부나 단체에서 많이 연대해주고 계신다. 매우 감사드린다. 그런데 욕심이라면 일반 시민분들이 하이디스 사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싸워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론에서 진정 먹튀인지 따져봐주시고 노동자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면 일반 시민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텐데….

김홍일 : 외국 투자기업들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김앤장 같은 법무법인도 파트너로 들어와 나쁜 짓을 계속 하는 것도 문제다. 외국투자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면면을 보면, 그 배후에 김앤장 등 법무법인들이 많다. 그 사람들 역시 자국의 이익의 반대편에 서서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 부분에서도 관심이 필요하다.

미디어스 : 대만 노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면?

: 노동의 본질을 봐야한다. 자본의 국제이동을 봐야 한다. 대만에서도 하이디스 투쟁과 같은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만노동자들도 다른 나라에 가서 원정투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노동과 자본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만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자들은 경제적 약자인데, 정부가 자본을 도와주면서 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만의 경우, 현재 하이디스 투쟁에 있어서 정부와 경찰, 이민소 등 인권침해까지 해가면서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공무방해 등의 이름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대만 내에서도 관심이 많고 비슷한 문제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서도 별개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

미디어스 : 하이디스 투쟁에 한국 언론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있다면?

이상목 : 하이디스는 국내 토종기업이었는데 외국자본의 두 번이나 먹튀당한 경우다. 그런데, 이게 사회적 이슈가 안 된다면 또 다른 우리 국내 노동자들의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이런 문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하지 않나. 그래서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언론들 역시 노동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관심이 별도 없다. 그게 독자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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