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라는 근거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에 나선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선진화법의 테두리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언제나 그렇듯 날선 공격이 계속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라면서 책상을 여러 번 치는 등 불편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는지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이번에도 지상파 등의 언론매체 역시 비슷한 태도로 일관했다. 테러방지법 관련 보도에서 △국정원의 권한 강화 등 논란 여부, △야당 의원들이 진행하는 필리버스터의 합법성, △여야의 입장 차 등에 대해 축소하고 왜곡한 것이다. KBS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경제활성화법안 등 중요한 법안들의 처리가 불투명해졌다고 강조했고 MBC는 필리버스터가 언제까지 진행될지가 ‘관심대상’이라며 사건을 보는 시각 자체를 왜곡시켰다. SBS 또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반대 논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KBS의 걱정은 “경제활성화법안 등 다른 중요 법안들의 처리 전망도 불투명”

KBS <뉴스9>는 24일 <테러법 놓고 필리버스터 대치…與 “정치쇼 그만”> 리포트와 함께 별도로 <“많은 희생 치르고 통과시키겠다는 것인가”> 리포트를 배치했다. KBS는 <테러법 놓고 필리버스터 대치…與 “정치쇼 그만”> 리포트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대해 시작된 야당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며 “여당은 국민 안전을 위한 법안을 당리당략에 이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고 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계적 중립을 지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내용은 그렇지 않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이 이를 비판하는 내용은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 어떤 편향으로 볼 수밖에 없다.

2월 24일 KBS <뉴스9> 리포트 중

KBS 뉴스의 이런 구성은 계속 유지됐다. KBS는 “테러방지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가 이틀째 계속됐다”며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5시간 33분,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 동안 무제한 토론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화제를 몰고 온 은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 사실 추가 보도했는데, 테러방지법 반대 논리를 전하는 대신 “우리가 이 단상을 지키는 한 대테러방지법은 정부 여당안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는 발언을 소재로 선택했다.

KBS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미 없는 발언으로 시급한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항의하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며 “새누리당은 김정은이 대남 테러를 지시해 언제 어디서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엄중한 안보 위기 속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테러방지법 처리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의 “(야당은) 국가도 국민도 안보도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치쇼만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포함됐다.

KBS공식 트위터 캡처

KBS가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후 보도 과정에서 드러난다. KBS는 “여야 간 대치 속에 경제활성화법안 등 다른 중요 법안들의 처리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KBS는 이미 공식 트위터(@KBSnews)를 통해 “국가안보 국민안전에 한목소리 내도 부족할 때 우린 뭐하고 있는 걸까요? 이러다 주변국들이 우리 운명까지 결정하게 됩니다”라고 해 논란을 낳기도 했있다.

KBS는 <“많은 희생 치르고 통과시키겠다는 것인가”> 리포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만 그대로 나열했다. ‘중립’이 지켜지지 않는 구성이다. KBS는 “박근혜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테러방지법을 처리겠다는 얘기냐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며 “국회가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 발전법의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데 대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2월 25일 KBS '뉴스9' 리포트

그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를 대변하는 듯한 리포트였다. KBS는 “박근혜 대통령은 필요한 법안은 통과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총선에서 다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대목에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 만큼, 개혁법안 처리를 막고 있는 국회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묻어났습니다”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KBS는 그동안 야당의 법안 연계처리 주장에 대해서 날선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테러방지법 때문에 스텝이 꼬여버린 국회에 대한 언급과는 달리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지적 한 줄 찾아보기 어려웠다.

MBC, ‘테러방지법’ 문제보다 “필리버스터 언제까지 할까가 관심?”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 또한 같은 구성을 선보였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슈클릭] 무제한 토론 언제까지? 여론 ‘역풍’ 고민> 리포트를 통해 반대여론이 높은 ‘테러방지법’이 아닌 “이제 관심은 필리버스터를 언제까지 할까(에 집중된다)”고 전했다. 사건의 맥락을 뉴스가 어떻게 왜곡하는지 분명해지는 대목이다.

2월 24일 MBC '뉴스데스크'

MBC는 “국회법에 따라 야당이 스스로 중단하지 않는 한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10일까지 16박17일 동안 할 수 있다”며 “그 후, 여당이 곧바로 3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테러방지법을 다시 상정하면, 그때는 필리버스터 없이 즉시 표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절차와 별개로 언제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야 할지, 야당의 고민은 깊다”고 보도했다. MBC는 이어, “여야가 선거구획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모레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획정안 처리가 더 늦어지면 총선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야당의 거센 반발과 시민사회의 우려를 전달하고 정부여당과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화로 조정해야한다는 합리적인 목소리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2월 24일 SBS '8뉴스'

SBS 또한 다른 곳을 보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다. SBS는 <필리버스터, 약일까? 독일까?…관건은 ‘국민지지’> 리포트를 선보였다. 해당 리포트에서 SBS는 “야당이 다음 달 11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계속하면, 2월 국회에선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할 수 있다”며 “하지만 다음 회기가 시작되면 곧바로 표결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 모레 선거법 처리가 무제한 토론 탓에 무산될 경우, 야당에겐 부담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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