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공석이 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 이하 인권위) 상임위원 후보자로 정상환 변호사를 선정하면서 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상 11명의 인권위원 중 한 쪽 성이 6/10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돼는데, 정상환 변호사가 선임되면 남성이 7명이 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인권위의 유권해석을 받았기 때문에 추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는 23일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조차 지키지 않는 새누리당과 인권위>라는 성명을 통해 새누리당의 정상환 변호사의 인권위 상임위원 선정과 관련해 법에서 규정된 ‘시민사회 참여’, ‘여성할당’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22일 유영하 인권위 비상임 위원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에 장성환 변호사를 지명한 바 있다.

‘특정 성(性) 6/10 초과할 수 없다’ 규정에도 새누리당, 남성 정상환 변호사 추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나라키움 저동빌동 국가인권위원회 새 청사에서 열린 제16차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위원회의 구성) 제2항은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추천하면서 ‘무자격’ 논란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여기에 각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등급을 부여하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 ICC)로부터 ‘인권위원 선출의 투명성’과 ‘다양성’, ‘시민사회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3차례의 ‘등급보류’ 판정을 받으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 후, 국회는 법을 개정해 “국회,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을 후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을 선출·지명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기존 “위원 중 4명 이상은 여성으로 임명한다”는 규정에서 “위원은 특정 성(性)이 6/10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화됐다. 이로써 총 11명의 인권위원 중 법적으로 보장되는 여성 몫은 5명으로 늘어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지난 22일 정상환 변호사를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법위반 논란이 벌어졌다. 현행 인권위는 이성호 위원장(남)과 상임위원 김영혜(여)와 이경숙(여), 비상임위원 한태식(남), 윤남근(남), 한위수(남), 강명득(남), 이선애(여), 최이우(남), 이은경(여) 등으로구성돼 있다. 이렇게 보면 남성의 비율이 법에서 규정한 6/10을 초과한다.

인권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최소 여성이 5명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여성위원의 수가 5명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성인 정상환 변호사를 지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인권위법을 위반하는 사태를 초래함으로써 인권위 등급심사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게 된 것에 대해서 한국 시민사회는 참담함을 느낀다”며 “새누리당이 법을 위반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왜 ‘특정 성’이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을 지키지 않았는지, 누가 어떻게 해석했는지 반드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위, “강명득 임기만료됐기에 계산에서 제외”…시민사회, “정상환 추천 철회하라”

그러나 새누리당 관계자는 “인권위로부터 유권해석을 받아 최종 지명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3월에 (인권위에 대한)ICC평가가 들어가는데, 그 전에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상임위원이 활동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받았다”며 “(새누리당 몫의)인권위원 추천을 위해 공모를 받았는데 여성이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성이 10분의 6을 초과’ 부분에 대해 유권해석을 받게 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몫의)강명득 비상임 인권위원은 지난해 8월 임기가 만료됐다”며 “더불어민주당이 후임으로 추천한 박김영희 후보가 국회에서 의결이 부결됐고,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는 법 규정이 있지만 임기가 만료돼 공석인 것이다. 그렇다면 10명의 인권위원 중 남성 정상환 후보자가 된다면 6/10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강명득 위원이 임기가 만료됐더라도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제외시키고 유권해석을 하는 건 잘못된 계산이 아니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법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임기는 만료됐기 때문에 공석인 것이 팩트”라면서 “또, ‘특정 성(性)이 6/10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개정안의 취지는 다양성 확보와 양성균형의 관점에서 제시된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여성으로 반드시 선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매주 열리는 상임위가 있는데, 상임위 구성의 다양성 확보나 양성균형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현행 위원장을 제외한 상임위원이 모두 여성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추천 상임위원이 남성으로 들어오는 것 또한 다양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입장은 다르다.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유권해석과 관련해 “강명득 비상임위원의 위치를 ‘공석’으로 본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며 “임기가 끝난 것은 오래됐지만 후임자가 국회에서 의결이 부결돼 현재도 직을 수행하고 있다. 인권위에서 결정문이 나갈 때에도 강명득 위원의 이름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을 유지하고 있는데, 단순히 임기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실제 활동하는 인권위원을 ‘공석’이라고 한다면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공석’인 상황에서 강명득 인권위원이 6개월 동안 활동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 인권위 해명에 따라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현필 사무국장은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에 따르면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선출해야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그런데, 새누리당은 공모와 ‘교섭단체 추천 인사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인사심의위원회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원내수석부대표, 사무 제1부총장으로 구성된 위원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ICC는 인권위원을 선출할 때 밀실에서 하지 말라고 권고했던 것”이라면서 “법에 위반된다고 하지 않더라도 ICC의 권고 의미를 살리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민사회는 새누리당 측에 정상환 변호사 후보 추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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