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들의 희망은 비난 속에서 외롭게 살거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의 하나로부터 배제되는 게 아니라 법 앞에서의 평등한 존엄을 요구한 것이며 헌법은 그 권리를 그들에게 보장해야 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문 중 일부이다. 이성애자들에게는 당연한 권리지만 동성애자들에게는 원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결혼 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분명 결혼을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동사무소에 제출한 혼인신고서는 거부됐고, 그들은 남들에겐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어렵게 법원에 손을 내밀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우리 관계 인정받는데 37년이 걸리면 어떡하나” 눈물

서울서부지방법원(재판장 이기택)은 6일, 지난 2014년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구성원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제기한 한국 최초 동성혼 소송에 대한 첫 심문을 비공개로 진행됐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이 넘어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다. 시기적으로 지난달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혼 금지 위헌 판결을 결정한 후여서 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부부로서 힘들거나 아플 때 옆에서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 법·제도적 차별로 인해 지킬 수 없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비공개로 진행된 동성혼 첫 심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미디어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동성혼 소송과 관련한 법원 첫 심문기일을 마친 후, 오후5시 30분 “불평등·차별·배제, 이제는 끝내야 한다”며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김조광수 감독(청년필름 대표)은 “법정에서 울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울고 말았다”며 “지난해 김승환과 대만에서 열린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갔다가 게이커플이 동성 결혼 후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 우리처럼 소송을 제기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리미티드 파트너쉽>(Limited Partnership, 2014)을 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그 부부는 무려 38년을 법정에서 싸웠다”며 “그리고 2013년 그 분들이 속한 주에서는 동성결혼이 불법이라는 법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았다”며 “두 사람은 38년 만에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당사자 중 한 분이 2012년 돌아가셨다.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다큐를 보면서 우리 생각이 났다”고 토로했다. 그는 “혹시 나에게도 37년이 걸리면 어떡하느냐”며 눈물을 쏟아냈다.

“저는 올해로 만 50살이다. 37년이 걸린다면 87세다. 동성애혐오자들은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보다 30년 일찍 죽는다’고 한다. 근거가 없다고는 하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저에게 남은 생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법정에서 판사님께 ‘제발 부탁한다’고, ‘우리 관계를 법정에서 배제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에서 저는 국민의 4대 의무를 다 하고 있다. 군대도 다녀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데에도 왜 나는 이렇게 법정에서 눈물로 호소해야 하나…(중략)…정말 간절히 바라건대 내가 죽기 전에 우리 관계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도와달라”_김조광수 감독

▲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동성혼 첫 심문을 마치고 나와 기자회견에서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발언 도중 끝내 눈물을 쏟았다ⓒ미디어스

김승환 대표(레인보우팩토리) 또한 “재판님께서 우리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셨다”며 “그런 태도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된다.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길 바란다”고 바람을 밝혔다. 담담히 발언을 이어가던 김승환 대표는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헌신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들처럼 저 역시 먼 미래까지 그런 관계를 꿈꾼다”고 이야기하면서는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장서연 변호인 “사법부, 성소수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할 시대적 책무 가진다”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소수자에 대한 불평등과 배제를 법원이 인정해선 안 된다”며 동성부부의 혼인신고 수리를 수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동성혼 소송에는 약 50여명의 소송대리인단이 함께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서연 소수자인권위원장(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1997년 동성동본 금혼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혼인제도와 가족제도는 인간 존엄성과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판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는 성적 자기 결정권과 혼인에 대한 자유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혼인은 개인의 양심 본질에 따라야 하고 그 상대와 시기 등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 서울서부지방법원(재판장 이기택)은 6일 2014년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구성원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제기한 한국 최초 동성혼 소송에 대한 첫 심문을 비공개로 진행했다ⓒ미디어스

장서연 소수자인권위원장은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에 대해 “2005년 만나 진지하게 만남을 가졌고 2013년 9월 7일 양가 가족들과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며 “이들은 깊은 신뢰와 진실성을 바탕으로 혼인이라는 권리 의무를 나누는 부부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성애자들에게는 평범한 소망이지만, 동성애자들에게는 꿈도 못 꾸는 것이 결혼제도”라고 지적하며, “동성커플은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으나 법적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차별과 배제 속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장서연 소수자인권위원장은 “동성혼은 오히려 그들의 박탈감을 고려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며 “사법부는 과거의 오류나 편견에서 벗어나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고 성소수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할 시대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성소수자 가족구성원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소속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은 “동성 파트너가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다”며 “그런데, 병원에서는 보증금을 내고 입원을 하라고 했다. 제가 병원비를 냈지만 의료기록을 보여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파트너의 사망 후 각종 절차에서도 배제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차별받고 배제되고 있는지 그래서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얼마나 박탈당하고 있는지 봐달라”면서 “이번 소송 하나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겠지만 물음표 하나는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소송대리인단의 류민희 주심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한국에서는 동성혼 관련해서 첫 법정소송”이라면서 많은 관심을 부탁하며 “재판부가 충분히 경청하셨다면 수리를 허용하는 결정이 나올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법적으로 다퉈볼 것”이라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한편, 동성혼 소송 첫 심문이 열린 서부지방법원 앞에서는 “이기택 서부지법 법원장님,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원하십니까”라며 동성애반대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 같은 날 오후 5시 20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는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재판부를 압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미디어스
▲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비공개로 진행된 동성혼 첫 심문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 둘이 손을 꼭 잡고 있다ⓒ미디어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