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다큐 '백년전쟁' 포스터
근현대사 진실찾기 프로젝트로 제작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다큐 <백년전쟁>을 둘러싸고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전쟁’ 중이다. <백년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을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로 2012년 11월 말 공개 이후, 보수언론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역사다큐 <백년전쟁>을 둘러싼 논쟁은 KBS <다큐극장> 등 공영방송의 ‘정권 코드 맞추기’ 논란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역사다큐 <백년전쟁> 논란, 소송까지

3월 13일 청와대 원로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백년전쟁>과 관련해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한 참석자의 건의에 “잘 살펴보겠다”며 ‘수첩’에 메모까지 했다고 한다. 또, 4월 16일 안전행정부 유정복 장관은 국회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없는 <백년전쟁> 동영상은 국민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한국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역사관이 올바로 설 수 있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발언했다.

RTV에서 지난 1월 <백년전쟁>을 방영하자, 방통심의위원회에 심의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인은 “<백년전쟁>은 종북 선동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진실을 왜곡해 시청자에게 혼란과 불안을 야기시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현재 <백년전쟁> ‘이승만의 두 얼굴’ 편과 ‘프레이저 보고서’ 편은 방통심의위 자문기구인 보도교양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다큐와 관련해 ‘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등의 위반 여부를 다룰 예정이다.

5월 2일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들이 민족문제연구를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허위 사실과 자료 조작”이라며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인격살인”이라고 제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9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이승만, 그는 과연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나>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에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반격에 나서다

이이화 역사학자는 기자회견에서 <백년전쟁>과 관련해 “요즘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글 쓰는 사람들이 지정돼 있다”며 “객관적 토대와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보는 것인지 아니면 이데올로기 잣대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기 조상이 (친일 행적을) 했다고 해서 합리화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 5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백년전쟁'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이승만, 그는 과연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미디어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역사 분야 전문가들의 충분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지 법원의 소송으로 판사의 판결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윤경로 전 총장은 “<백년전쟁>이 ‘새빨간 거짓말’, ‘국가 안보에 해가 된다’는 등 비본질적으로 왜곡하지 말고 학문적 사실에 근거해 이 문제를 풀어 나가는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서도 “기자 정신을 살려달라”면서 “기자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들 아니냐. 그렇다면 어느 것이 옳은지 진실인지를 봐달라”고 당부했다.

함세웅 신부 역시 “역사는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프지만 다시 도려내야할 것은 도려내고 치유해야할 것은 치유해야 한다”며 “왜곡된 내용으로 국민의 정신을 상하게 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정의실천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백년전쟁> 고소사건에 대한 역사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백년전쟁>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며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이미 그 개인의 인격을 떠나 ‘역사적 해석’의 차원에 들어선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 연구자의 해석과 평가에 대해 언어와 영상을 통해 비학문적 비난을 가하고 심지어는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자제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반박했다.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의 고소에 대해서도 “<백년전쟁>의 인터뷰에 응한 역사학자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TV에 대한 방통심의위 심의와 관련해 의문을 나타내며 “결과를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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