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4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라는 보수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의료공백에 대한 대책도, 의사들과의 대화 창구도 없는 정부가 '2000명 증원'만 얘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서는 의사와 정부 모두 의료체계 개선의 핵심인 '공공의료'에는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을 자영업자로 여기는 의사와 의사증원만 얘기하고 영리화 된 의료체계를 유지하려는 정부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진짜 대안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 설치된 TV에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료공백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 설치된 TV에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료공백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오는 18일까지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지 않는다면 사직을 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서울대가 선봉에 선 것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해외 기구에 의대 증원 분석을 맡기고, 의대 증원은 1년 유예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또 정부·의사협회·여야·국민·교수·전공의가 참여하는 대화협의체를 구성하자고 했다.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자 그동안 의사들에게 집중됐던 언론비판이 정부로 옮겨지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중앙일보는 사설 <의료 공백 방치하는 의·정 대치…대화 물꼬부터 터야>에서 "어떤 명분이든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며 "10년 뒤부터 의사 수를 1만 명 늘린다면서 당장 의사 1만 명, 의대생 1만 명이 현장을 떠나고 병원들이 붕괴하는 것을 지켜만 보는 것은 이율배반 아닌가"라고 했다. 

13일 동아일보는 사설 <의대생 집단 유급 임박… 대책도 없이 대화도 않고 파국 맞나>에서 "환자를 떠나는 제자들을 말리기는커녕 뒤따라 나간다는 의대 교수들도 실망스럽지만 이를 보고도 속수무책인 정부 역시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정부는 '흔들림 없는' 강경 대응을 선언했으나 말뿐"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정부에 "의사들의 진료 거부에 마땅한 대응책도 없고 공식 대화 채널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체 뭘 믿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인 ‘2000명 증원’을 지른 건가"라고 따져물었다. 정부가 면허정지·사법처리를 앞세운 최후통첩을 보내고도 업무복귀를 반복해서 '호소'하고 있고, 대표성을 지닌 단체와의 대화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는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를 말리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도 국민 건강에 위협적"이라고 했다. 

3월 13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빅카인즈)
3월 13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빅카인즈)

같은 날 한국일보는 사설 <의대 교수들 무책임한 사직 의결··· 의정 협상창구 서둘러야>에서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복귀를 설득하진 못할망정, 제자들을 감싸며 ‘사직’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은 무책임하다"면서 "정부도 대화 창구 개설을 위해 전공의, 교수, 병원장들과 접촉하며 백방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해외 기구에 의대정원 분석을 맡기자고 한 대목에 대해 "국내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국내 연구기관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사대주의적이고 해괴한 발상"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나마 교수들도 대화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은 긍정적이다. 지금 급선무는 의료계 내부에서 정부와 협의할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정부도 의사도 대화 국면 조성에 온 힘 쏟아야>에서 의대 교수들을 향해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환자를 외면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하면서 "정부도 '집단행동 엄단 방침'만 외치는 대신 의사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한겨레는 "양쪽 모두 의대 증원에 관한 정책 결정을 독식할 수 있다는 오만함부터 버려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중재 시작한 의대 교수들, 정부도 파국 막을 대화 나서라>에서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제재가 시작되면 의대 교수들도 집단사직을 예고해 의료대란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원칙을 견지하되 그 폭과 방식을 협의하고, 심각한 의료 공백 위기를 관리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라며 "의·정이 치킨게임하듯 맞선다면 해법은 요원할 뿐이다.(중략)지금은 환자가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13일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비급여 진료로 큰 수익을 내는 개원의를 선망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영업자’로 여기고 있는 의사들도, ‘2000명’이라는 숫자만 내건 채 영리화된 의료체계의 문제를 다시 영리화로 해결하려는 윤석열 정부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의사에게서도, 정부에서도 공공의료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숫자 싸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진짜 대안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3월 13일 경향신문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 인터뷰 기사 갈무리
3월 13일 경향신문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 인터뷰 기사 갈무리

이 국장은 공공의대 신설과 지방의료원 확충을 통해 필수·지역의료 공백을 메우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국장은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국장은 의사 증원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울산을 꼽았다. 이 국장에 따르면 울산은 필수과목 전문의 수가 전국 최하위권이고, 공공병원 병상 수 비중은 0.9%로 전국 평균 10%를 한참 밑도는 지역이다. 2022년 울산에서 서울로 원정진료를 떠난 시민 수는 1만 9671명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는 울산의료원 설립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경제성 논리로 공약을 폐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울산의대 정원을 40명에서 150명으로 늘린다고 한들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겠냐는 게 이 국장의 지적이다. 

이 국장은 지역인재 전형 확대, 지역필수의사제 도입,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정부와 의료계가 말하는 유인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 국장은 2022년 전국 의대생 3058명 중 공중보건장학제도(장학금을 받은 의대생은 최대 5년 간 해당지역 의료원에서 근무토록 하는 제도)에 지원한 의대생은 단 1명 뿐이었고, 한 지방 종합병원에서는 연봉 10억 원을 제시했어도 심장내과의를 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영리화된 의료체계 문제를 다시 영리화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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