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글자 그대로 가상화폐에 불과하던 비트코인이 미국 제도권 시장에 진입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10일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공식 승인했다. ETF는 투자자가 직접 주식이나 금, 은 등을 매수하지 않고 펀드를 통하여 간접 투자하는 방식의 상품이다. 예를 들어 상위권 바이오 기업과 AI 기업의 주식을 혼합해 ETF를 구성할 수 있고 금과 원자재 등을 모아 ETF를 구성할 수도 있다. ETF의 수익은 특정 주가 지수(예 : 다우존스 지수, S&P500 지수, 나스닥 지수)에 따라 결정된다. SEC의 이번 결정으로 일반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투자할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열렸다. 

이번 결정 이전에 현물은 아니지만 비트코인 선물 ETF는 거래되고 있었다. 2021년 10월 승인되어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공식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선물 ETF의 합법적 운용을 근거로 미국의 자산운용사들이 비트코인 현물 EFT의 승인을 계속 요청했지만, SEC는 "시장 조작이 우려되고 투자자 보호가 어렵다"는 이유로 승인해주지 않았다. 특정 상품이 거래소에 상장되기 위해서는 그 거래소가 상품과 관련된 불공정거래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의 경우 제도권 밖에 있는 가상화폐라서 이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다가 미국 가상자산 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이 SEC의 비트코인 현물 EFT 승인 거부는 부당하다며 법원에 재심사를 요청했고 그레이스케일이 승소함에 따라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소 상장을 승인했다. 법원의 판결과는 별도로 SEC는 비트코인 현물-선물 가격의 상관계수를 파악하기 위해 2년 6개월간 시간 단위 데이터로 분석을 했고 그 결과, 상관계수가 0.98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상품의 가격이 같이 움직였다는 얘기다. 적어도 그 기간 중에는 불공정거래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SEC가 법원 판결에 승복했고 가상화폐가 최초로 전통자산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되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암호화폐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프로그래머가 2008년 개발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완벽한 전자화폐 시스템은 온라인을 통해 일대일로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필요하지 않다." 라고 시작되는 ‘비트코인: 개인 간 전자화폐 시스템’ 제목의 9페이지 영어논문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시스템을 부정하는 새로운 형태의 화폐의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 중앙은행을 통한 금융시스템 대신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화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첫 문장처럼 혁명적이고 비장한 선언이다.

처음 비트코인이 공개되었을 때 암호화폐, 블록체인의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기술적 이해도가 높은 소수의 전문가 몇 명만이 가벼운 마음으로 거래를 하는 정도였다. 거래하기 위해 필요한 지갑을 만드는 일부터 실제 거래하는 일, 모두 쉽지 않았다. 기존 주식거래와는 다르게 친절한 거래소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앙은행과 같은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혼자 수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탈중앙화, 국가로부터 독립된 운영 등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느 누구도 내 금융거래에 간섭할 수 없고 거래수수료도 부과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비트코인 거래가 증가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대와 우려의 규모가 동시에 커지기 시작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암호화폐의 가치는 0이다”라면서 투자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역시 가상화폐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반면 테슬라 대표 일론 머스크는 주요 가상화폐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고, 테슬라는 지난해 3분기 현재 1억 8400만 달러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타(구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암호화폐를 준비 중에 있다. 

찬반 논란이 계속되면서 오히려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전문 거래소 등이 생겼으며 결과적으로 글로벌 투자대상이 되었다. 이름도 밝히지 않는/못하는 무명의 프로그래머가 만든 가상화폐가 미국 정부에 의해 자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했던 사람들도 이제 편하게 투자 대상, 거래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거나 인정한 것이 아닌 한 개인이 만든 가상화폐가 제도권 안에 진입한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기존 제도 대신 새로운 질서가 만든 세계에 진입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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