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악동 뮤지션’의 이찬혁이 <쇼미더머니> 시즌10 무대에 찬조 출연하며 뱉은 이 한 마디 노래 가사는 한국 힙합을 꼬집는 유행어로 떠돌고 있다. 이 말에 동조하는 여론은 ‘국힙’을 놀리면서 “안 멋져”를 밈처럼 뱉고 있고, 이 말에 발끈한 래퍼들은 이찬혁에게 응수하는 랩을 앞다투어 쏟아 냈다. 고작 가사 한 마디가 반향을 일으킨 건 공감하는 사람이 많거나 아픈 곳을 찔린 사람이 많다는 뜻일 거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0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0

사람들은 왜 저 말에 통쾌해한 걸까. 힙합이 ‘멋’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이고, 어떻게 멋이 없다는 걸까. 한국 힙합의 영향력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여론에 빈축을 사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찬혁의 의도와 별개로, 저 말을 키워드 삼아 현상에 접근해 보는 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멋이 없다는 건 말 그대로 ‘폼’이 안 난다는 거다. 래퍼들과 국힙 팬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럴듯하지도 않고 따라 하고 싶지도 않다는 건데, 달리 말하면 ‘국힙’이 트렌드세터나 문화적 아이콘에서 밀려났다는 뜻이다. 한때는 그런 위치에 있기도 했다. <쇼미더머니>가 부흥한 육 년 전, 칠 년 전에는 힙합이 사회문화적 유행과 담론의 중심에 있었다. “어느새부터” 그 중심에서 밀려난 이유와 계기는 무엇일까.

가장 단순한 이유를 찾자면 힙합의 상업적 유행은 끝났다. 한국 힙합에 날개를 달아 준 건 <쇼미더머니>였는데, 오 년 전 시즌7 무렵부터 하락세의 징후는 뚜렷했다. 당시 일어난 트로트 오디션 방송 붐에 떠밀려 화제성을 잃었고, 지금은 신인 걸그룹 전성시대와 함께 걸그룹 산업이 트렌드 최전선에 있다. 이건 단순한 방송 인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국힙 시장은 행사 중심의 수익 구조로 돌아간다. 이 행사 시장 파이를 트로트 가수들, 아이돌 그룹들이 가져갔다. 따라서 행사 섭외를 위한 지명도를 제공해 주던 <쇼미더머니> 출연도 의미가 반감되었고, 국힙 시장의 자생적 재생산이 어려워졌다. 국힙을 대표하던 레이블이 도미노처럼 해체됐고, 래퍼들은 예전처럼 헤픈 씀씀이로 시계와 목걸이를 자랑할 수 없다.

이건 외적 화려함을 떠나 외면과 내면의 일치, ‘진정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현세대 한국 힙합의 정체성은 ‘플렉스’와 ‘스웨거’처럼 돈 자랑을 하는 물질주의인데 말로만 잘나간다고 강변해 봐야 신 전체의 하락세를 인지하고 있는 여론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없다. 때마침 국힙의 성공 신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도끼의 세금 체납, 보석값 미납 뉴스 등이 보도되며 영락은 한층 선명하게 그늘을 드리웠다. 그러니까, 열심히 ‘허슬’해서 사치를 부리는 힙합의 ‘멋’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폭로된 것이고, 이것이 “국힙이 망했다”는 표현으로 야유를 부르고 있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이건 한국과 미국의 사회 환경 차이 상 어쩔 수 없이 도착하게 된 결말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시장이다. 힙합은 수십 년 전부터 그 안에서, 나아가 세계 음악시장에서 확고부동한 메인스트림이다. 하지만 한국은 내수 음악시장이 크지 않고 끝없이 유행이 회전하며 대세가 바뀐다. 한국 힙합은 케이팝처럼 해외 시장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순전히 내수를 통해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산업의 저변이 좁고 메인스트림으로 정착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 논점엔 산업 논리를 떠나 사회문화적 요인, 국힙 신 주체들이 보여준 태도와 행보가 엮여 있다.

그동안 한국 힙합은 한국의 사회상과 아귀가 맞지 않는 일,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일, 한 마디로 여론의 눈밖에 나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 도끼는 가족에게 빚을 준 채권자에게 “(빌린 돈) 천만 원 그거 내 한 달 밥값밖에 안 된다”는 발언을 해 공분을 샀다. 국힙 신 내부에서 마약이 유통되며 어린 래퍼들이 중독자가 된 실태가 알려졌고, 래퍼들이 쓰는 혐오 가사가 번번이 논란이 되고 래퍼 간의 법적 분쟁으로도 이어졌으며, 래퍼들끼리 툭하면 인스타로 싸우고 ‘현피’(현실에서의 주먹다짐)를 하는 광경이 영상으로 퍼져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얼마 전엔 <쇼미>에서 우승한 유명 래퍼가 병역 비리를 저지른 건 물론 관청 공무원들을 협박한 사실이 알려졌고, 한 래퍼는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 없는 태도로 언론에서 질타받고 있다.

이런 일들이 국힙 신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다만, 여론에 노출된 특정 문화 집단에서 이토록 갖가지 논란이 몇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전례는 아마도 없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여론에 피로감을 주고 국힙의 사회적 이미지는 물론 상업적 생명력을 좀먹었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닐 것 같다.

래퍼 도끼 [연합뉴스 자료사진]
래퍼 도끼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기에 래퍼들과 그 팬들이 고수하는 태도가 더해진다. 현세대 한국 힙합은 과거와 달리 미국 힙합의 관습을 직수입하여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배금주의와 남근주의, ‘IDGF’(I don’t give a fuck)처럼 “남이 뭐라고 하든 난 신경 안 쓴다”는 자아중심적 태도다. 이런 태도가 노래와 라이프 스타일로 재현되면서 한국의 문화적 규범과 충돌 및 부조화를 일으켰고, 힙합의 문화적 특수성이 사회 통념의 간섭을 거부하는 명분처럼 내세워졌다. 래퍼들이 빚은 논란에 “힙합은 원래 그런 음악이다”라는 핀트가 어긋난 논리로 대항하고, “당신이 힙합이 아니면 힙합에 참견하지 마라”는 아집과 동류집단의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수년 동안 이어진 결과는 무엇일까. 래퍼들은 미국 힙합의 원형과 한국 사회 환경의 괴리를 고민하는 대신 그 괴리를 무시한 채 자신들이 생각하는 ‘힙합’을 고수했고 거기 감응하고 익숙해진 일정한 숫자의 마니아, '힙찔이'가 늘어났다. 한국에서 힙합은 원래 비주류 장르였지만, 00년대까지 마이너한 음악 취향의 문제에 가까웠다. 지금은 래퍼들 및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과 그 밖의 사회 환경 및 여론 사이 문화적 간극이 깊어진 상태다. 한국 힙합은 그들만의 문화적 자치구, ‘유사 게토’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 규모와 근본적인 생활 배경의 차이로 인해 자신들이 모사하는 미국 힙합과 한없이 동떨어진 키치로 전락하곤 한다. 이런 모습들이 한국 힙합은 “안 멋져”라고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실 한국 힙합은 한국 사회의 거울이다. 힙합이 품은 힘과 물질에 대한 선망,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실은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과 공명한다. 그것이 힙합이 한때 이 사회 수면 위로 부상했던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문화적 보수주의와 집단주의 역시 강한 사회이고, 모난 돌이 튀거나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드는 걸 보고 넘기지 못한다. 한국 힙합은 이 ‘한국적 특성’의 양면이 모두 투사된 존재로서 이 사회의 욕망과 금기가 무엇인지 환기시키는 화살 과녁과 표지판 노릇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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