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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한국 힙합의 가사 논란[culture critic] '중2병'에서 래퍼 염따가 쓴 가사가 빚은 논란
윤광은 | 승인 2020.01.20 10:31

[미디어스=윤광은] 사람의 ‘급’을 나누는 발언이 옳지 않다고 하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위가 어떻건 재산이 어떻건 용모가 어떻건, 그런 가치로 사람의 우열이 규정되지는 않는다. 설령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고 믿어야 한다. 그게 절대다수의 사회가 공유하는 합리적 상식이다. 누군가의 ‘급’을 말한다는 건 그의 값어치를 매길 자격이 나에게 있다고 전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의 ‘급’을 높이 쳐준다고 해도 그런 행동이 주제넘어 보이는 이유다. 그런데 단순한 ‘상식’이 합의가 되지를 않는다. 지난 주말 일어난 ‘논란’이 그렇다.

“염따거 따거 과거를 닦어 전용기 타고 / 샴페인 따고 감히 너가 나랑 사귈라고? / 돈은 있어 시간 없어 내가 원하는 건 한예슬 급”

작년 연말에 나온 다모임의 노래 ‘중2병’의 가사다. 염따란 래퍼가 썼다. 나온 지 조금 지난 이 노래가 다시금 거론되는 건 가사에서 들먹여진 한예슬이 자신의 이름이 나온 구절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기 때문이다. 다른 설명 없이 캡처 사진만 올렸기에 정확한 의중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앞선 문단에서 말한 자명한 상식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다모임 - 중2병 / [MV] TEASER (염따, 더 콰이엇, 사이먼 도미닉, 팔로알토, 딥플로우)

염따는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낸 래퍼다. 그러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었고 발표하는 노래들이 흥행하면서 최근 인기 있는 유튜버와 성공한 래퍼가 되었다. 그가 쓰는 으스대는 힙합 가사엔 이런 개인사가 깔려 있다. 저 가사 역시, 나는 이제 예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기에 아무 여성이나 만나지 않는다, 이제 너와 나는 ‘급’이 맞지 않는다, 고로 미모로 유명한 연예인 정도는 되어야 나에게 어울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왜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타인이 들먹여져야 하는가. 그게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성공한 남성의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로 여성의 ‘급’이 나누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여성들 사이의 ‘급’은 외모 혹은 미디어에서 보이는 외적 면모, 그를 향한 남자들의 환상으로 갈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게다가 자신이 원한다면 거론된 상대방은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떻게 물음을 던져도 멀쩡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건 힙합의 흔한 레퍼토리다. 힙합은 지극한 남성 중심적 문화로 형성되어 왔고, 아름다운 여성을 성공의 징표처럼 들먹이는 가사는 마르고 닳을 만큼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저건 염따 개인이 쓴 가사라기보다, 힙합이 축적한 관습 안에서 뱉어진 가사다. 미국 힙합엔 더 수위가 높은 가사가 많고 한국에도 더 한 전례들이 찾아보면 있기는 있다. 염따는 다른 래퍼들이 흔히 쓰는 부류의 가사를 썼지만, 특정 유명인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한국 힙합의 평균치를 웃도는 정도의 가사를 쓴 것이다. 정리하면, 이건 염따 개인이 책임질 가사이면서, 좀 더 뿌리 깊은 비평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힙합의 관습이 그렇다 해서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실존하는 특정인에 관해서는 그의 인격과 감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건 실존인의 인격에 관한 문제 이상이기도 하다. 어떤 포맷으로든 해당 표현이 공개적으로 수행된 이상, 그건 염따와 가사에 오른 상대방 둘 만의 사건이 아니다. 가사를 접하게 되는 많은 사람이 있고, 가사를 쓴 사람은 세상을 향해 그런 가사를 내어놓은 책임을 지게 된다. 예컨대 사람의 ‘급’을 나누는 말이 음악이니까 힙합이니까 예술이니까 등등의 명분으로 ‘즐길만한 것’이 된다면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가 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논란에 관한 여론을 살펴보면 “한예슬이 기분이 나쁘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제삼자들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보이던데,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건 옳고 그름을 희석하는 주장이며, 공적으로 부상한 토론 거리를 사적 차원에 가두려는 주장이며, 그냥 논리가 없는 주장이다.

힙합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왜 이렇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느냐. 툭하면 비난을 하니 창작자들이 자기 검열에 갇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예술에 발전이 없는 것이다.”는 주장이 보였다. 실존 인물을 특정해 가사를 쓴다면 표현의 자유로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적으로 해로운 표현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추구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다. 설령 염따의 가사가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그걸 비판할 표현의 자유도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표현이 수행될 자유이지, 표현이 반박당하지 않을 자유는 아니다. 논란이 될 가사를 쓰는 건 표현의 자유고 그걸 욕하는 건 표현에 대한 억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특권을 누리겠단 생각이다. 타인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미치는 효과를 생각하는 ‘자기 검열’을 수행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예술은 무제한으로 분출하는 정념과 충동의 동의어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 검열 때문에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만큼 표현력이 빈곤한 예술가란 뜻과 멀지 않다. 빼어난 예술가들은 스스로 마련한 규율과 사회적 규율의 접점을 마련하고 둘의 긴장관계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생각나는 대로 뱉어버리는 쉽고 인습적인 표현과 달리, 그렇게 마련된 ‘자기 검열’의 우회로를 통해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창조하거나 창작의 제약을 창작의 장치로 활용해 버린다. 이런 복잡한 말을 할 것도 없이, ‘급’을 따지는 부류의 말을 안 쓴다고 무슨 자기 검열에 갇힌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힙합은 몇 년 전부터 이런 종류의 논란에 부딪혀 왔다. <쇼미 더 머니>를 통해 힙합이 메인스트림이 되고 미국 힙합의 관습을 대거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가사적 논란이 빈번했었다. 지난 일이 년은 뜸했던 느낌이 있지만, 다시금 논란은 재발했고 논쟁의 양상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표현의 자유는 오해받고 있으며 예술은 유치하게 정의된다. 몇 년 전부터 같은 성격의 논평을 반복해서 쓰고 있는 사람의 소감이다.

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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