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CJ ENM’으로 검색하면 암담한 뉴스가 쏟아진다. 큰 폭의 수익하락, 주가 하락 전망, 티빙 가입자 증가세 둔화, 영화 시장 흥행 부진, 방송 광고 매출 저하… 한때 CJ는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자신만만한 슬로건을 내걸었고, 그렇게 자부할 만큼 실적을 낸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문화산업 전 방위에서 CJ의 퇴락은 기정사실이 됐다. 영화·음악·방송 어디에서도 청신호는 없다. CJ가 제작한 대작 영화들은 숨기고픈 성적표를 받았고, <걸스 플래닛 999>로 데뷔한 케플러는 케이팝 신 구석진 자리로 밀려나 있다. 엠넷의 대표 상품이었던 오디션 방송도 재작년 <스우파>가 복권에 당첨되며 히트했을 뿐 나머지는 보는 사람만 보다 적막하게 막을 내렸다.

엠넷 〈퀸덤 퍼즐〉 [엠넷 제공]
엠넷 〈퀸덤 퍼즐〉 [엠넷 제공]

이런 와중 엠넷의 새 오디션 방송 <퀸덤 퍼즐>이 예고됐다. <퀸덤 퍼즐>은 <퀸덤> 시리즈와 <프로듀스> 시리즈를 조합한 방송처럼 보인다. <퀸덤>처럼 기존에 데뷔한 아이돌들이 가무를 겨루고, <프로듀스>처럼 개인 단위로 경연을 해서 그룹을 결성한다. 아이돌 육성 오디션에서 '육성'을 지우고 경연만 남긴 셈인데, 최종 데뷔 조는 일회성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솔직히 잘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작 <퀸덤2>는 시즌1에 비해 하락세였고, 아이돌 오디션 방송은 생명력이 꺼져 가는 단계로 보인다. <퀸덤 퍼즐>도, 방송으로 결성되는 그룹도 대거 활동 중인 신인그룹 틈바구니에서 주목받기 힘들 것이다. 결국, 출연자 개개인의 팬덤에 기대는 방송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팬덤이 큰 출연자도 없다.

잘라 말해서, CJ E&M이 추락하는 건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안이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투자를 안 하고 변화가 없다. 트렌드를 타고 한 가지 포맷이 흥하면 마르고 닳을 때까지 우려먹는다. 영화도, 음악 방송도, 레이블 운영도 그렇다. 지금까지는 보유한 플랫폼의 힘으로 돈을 벌어 왔지만 이제는 플랫폼도 지배력이 떨어진 상태다.

10년 전 멀티플렉스 확장으로 한국영화 1억 관객 시대가 열렸고, CJ는 제작/배급까지 주무르는 수직계열화로 '천만 영화공식'을 고안했다. 이 공식의 적용이 반복되며 관객 규모가 커지고 흥행 영화가 쏟아졌지만, 당시에도 한국영화의 질적 저하가 지적됐었다. CJ 기획 영화의 지루함과 획일성, 새로운 작가적 감독의 부재 등 한국영화 위기론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영화관 티켓 가격 인상 외에 바뀐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위기론을 주장할 것도 없이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 〈스트릿 우먼 파이터〉 포스터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 〈스트릿 우먼 파이터〉 포스터

<쇼미더머니> 역시 늦어도 2~3년 전에는 끝났어야 할 방송이다. 시즌 7 이후부턴 다소 확장된 한국 힙합 팬덤 외엔 이 방송의 애청자는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시즌 6가 끝난 직후부터 언론을 통해 <쇼미>가 종영할 거란 관측이 나왔었다. 여러 정황을 봐도 한국 힙합 신의 확장성이 꺼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나는 머지않아 방송이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곤 다음 시즌 제작이 어김없이 예고되는 걸 보며 쓴웃음을 흘린 기억이 난다. 참가자부터 프로듀서들까지 재출연은 기본이고 출연자 풀은 일찌감치 소진됐다. 한국 힙합의 상업적 포텐셜이 진물까지 다 빠지고 미라가 되고 나서야 드디어 올해 엠넷 연간 편성표에서 방송 이름이 사라졌다.

<프로듀스>로 데뷔한 그룹들을 보며 혀를 찼던 것도 CJ가 대기업이란 사실이 아연할 정도로 볼품없는 퀄리티였다. IOI, 워너원, 아이즈원의 노래 모두 그 흔한 해외 작곡가도 찾기 힘들었다. MV는 아무런 스케일이 없었고 미장센은 수수했다. 뮤비와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 능력은 둘째치고, 콘텐츠 제작에 돈을 안 쓰는데 어떻게 볼만한 물건이 나오겠는가. 어차피 일이 년 굴리는, 기간 한정 그룹이니까 투자를 안 한 거다. 방송 흥행으로 화제성, 팬덤을 확보했으니 산하 레이블에 보내서 팬덤 지갑만 털었다. 이름만 대기업이지, 그룹 운영 상태는 어지간한 중소기획사에도 못 미쳤다. 후속 오디션 시리즈로 탄생한 케플러의 경우, 이전 그룹들보다는 돈을 쓴 흔적이 보이지만 그 정도론 자체 제작 노하우를 보유하고 콘텐츠에 자존심을 거는 대형기획사 그룹과 겨룰 수가 없다. <걸스 플래닛>은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반응을 얻은 덕에 데뷔 직후엔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나, 뒤이어 쏟아진 신인 그룹들의 질주에 휩쓸려 뒤안길에 남겨져 버렸다.

CJ '문화를 만듭니다' 슬로건
CJ '문화를 만듭니다' 슬로건

오디션 방송이 동일한 골자로 분야가 바뀌어 론칭된다. 아이템이 시류와 잘 만나면 <스우파>가 나오는 거지만, 제작 마인드가 구태의연하니 다음 시즌만 가도 인기 지속이 안 된다. <프로듀스>건 <쇼미더머니>건 <퀸덤>이건 <스우파>건 제작진들이 방송을 띄우려는 방식은 틀에 박혀 있었다. 여론의 관심을 끌 만한 출연자를 점찍어 장작을 불사르며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스우파>에선 원트를 비난의 불길에 던져 넣고 댄서들 패싸움을 부추기는 작태가 유치하기 짝이 없었고, <쇼미더머니11>에선 이전 시즌까지 없었던 마이크 쟁탈전 룰을 집어넣어 이영지가 여론의 제단에 올라갔다. 음악 경연의 내실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의 시청률과 화제성에 급급해 출연자 잠재력은 물론 방송 수명까지 갉아먹는 근시안적 태도다. 예전엔 엠넷의 경쟁자가 지상파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심의 기준의 자율성과 선도적 아이템의 기동력으로 지상파를 추월했었다. 지금은 OTT 시대다. 볼거리가 넘쳐나는데 저런 식으론 경쟁력이 없다.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호언에도 불구하고, CJ가 문화의 가치와 좋은 콘텐츠의 힘을 믿었던 것 같지는 않다. 대기업의 지배력을 갈퀴처럼 휘둘러 시장 독과점과 수직 계열화, 시장성 있는 아이템 포착과 탕진으로 낙엽처럼 떨어진 지폐를 긁어 갔을 뿐이다. 이들이 문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뿌리가 얕고 저속하다. CJ는 <프로듀스> 투표 조작 사태로 창사 이래 최대의 치명상을 입었고 고개를 조아리며 쇄신을 약속했었다. 투표 조작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 안준영의 엠넷 '재입사' 뉴스는 이 회사의 자기 규율의 파탄을 공표하는 부고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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