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전편만 한 속편이 없다는 건 진부한 속설이다. 속편은 성공한 전작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이미 성공한 콘텐츠를 빌려오면서 그보다 큰 임팩트를 주기는 당연히 어렵다. 대부분의 속편은 전작을 뛰어넘으려는 야심보다는 전작에 기대려는 보수적 선택이 낳는 자식이다. 하지만 방송가에는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나온 사례가 있다. 아이돌 오디션 방송 <프로듀스> 시리즈다. 왜 <프로듀스 101> 시즌2는 시즌1보다 흥했을까. 더 참신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서? 근본적으로 성별 시즌제의 위력이다. 여성 아이돌보다 남성 아이돌 시장이 크고 출연자에게 몰입하는 코어 팬덤이 많다. 넓게 보면 팬덤 참여로 진행되는 모든 서바이벌 방송에 적용되는 원리다. 트로트 오디션마저 <미스터 트롯>이 <미스 트롯>보다 흥행하지 않았는가.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맨 파이터'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맨 파이터'

지금 엠넷에선 댄스 서바이벌 방송 <스트릿 맨 파이터>가 방영되고 있다. 작년 여름 방영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속편이다. 남자 댄서들이 출연하는 <스맨파>는 여자 댄서들이 출연한 <스우파>보다 화려한 쇼로 진행되고 있을까? 현재까지는 그렇지 않다. 이번 주 방영된 3회 차 기준 전국 시청률 1.68% 수도권 시청률 2.285%이니 상황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스우파>가 작년 여름 밤하늘을 신드롬의 폭죽으로 수놓은 것에 비하면 화제성이 낮고 파생 이슈가 적어 보인다. 시청률을 비교해도 <스우파> 3회 차는 전국 시청률 1.9%로 <스맨파>보다 높았다. <스우파>는 첫 회부터 많은 댄서를 스타로 만들었고 많은 배틀 영상이 화제를 불렀다. <스맨파>에는 이런 순간들이 하나도 없다. 현재 계급 미션까지 진행된 상태인데, <스우파> 계급 미션에서 나온 ‘헤이 마마’ 댄스가 작년 대한민국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였던 걸 떠올리면 수치로 집계되는 것 이상 차이가 있다.

<스맨파>는 왜 성별 시즌제 공식의 축복을 받지 못한 걸까? 방송 만듦새와 제작 규모를 따지면 <스맨파>가 <스우파>보다 낫다. 무명 댄서들이 주인공이라 흥행을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 몰라도, <스우파>는 방송 초반엔 제작 규모가 크지 않았고 방송 운영이 난잡하고 즉흥적인 면이 있었다. <스맨파>는 지난 5월 사전 방송으로 편성된 <비 앰비셔스>부터 몇개월 간 예열 작업을 했다. 이미 성공한 <스우파>의 후광과 출연진들을 끌어올 수 있어 사전 홍보도 유리했다. 역설적이게도 더 정돈된 방송의 매무새가 상대적으로 약점이 됐다.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엠넷 제공=연합뉴스]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엠넷 제공=연합뉴스]

서바이벌 방송 첫 시즌은 처음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지만 그래서 활력과 신선함이 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제작진은 공식이 생기고 출연자들은 요령이 생기고 시청자들에겐 면역이 생긴다. 시즌제 방송이 제작이 거듭될수록 쇠퇴하는 것엔 이런 종류의 익숙함으로 인한 권태와 매너리즘 탓이 있다. <스우파>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댄서 신이란 야생의 생태계를 시청자들에게 탐험시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 없는 댄서들이 난생처음 불현듯 닥쳐온 기회를 거머쥐려 결사적인 에너지를 분출했고 크루 간 자존심 대결, 개개인의 진한 사연이 얽혀 어마어마한 강렬함을 일으켰다. <스맨파>에선 날 것의 펄떡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벼락 스타가 된 모니카와 허니제이를 보며 출연을 고대했을 남자 댄서들이 저마다의 계획과 방송에 대한 사전 학습을 바탕으로 낯익은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스우파>를 흥행시킨 동력이 여기선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더 구체적인 이유는 이 방송이 성별 시즌제의 '예외'라는 사실이다. 감춤 없이 말하자면, 남성 댄서들은 여성 댄서들보다 매력적이지가 않다. 적어도 이 방송의 수요층에겐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일반적인 서바이벌 방송에선 출연자들을 이성 팬덤이 응원한다. 그 바닥에는 아이돌 팬덤 특유의 유사 연애 심리가 있다. <스우파> 팬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이성이 아닌 동성에 대한 동경심과 동일시가 그들을 몰입시켰다. 언젠가부터 여성 아이돌의 테마, 나아가 사회문화적 테마가 된 ‘걸크러시’가 방송의 코드였다. 여성이 여성의 가장 큰 팬덤이 되는 문화 현상의 연장선에서 시청자가 유입한 것이다.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우파>든 <스맨파>든 케이팝과 댄스 퍼포먼스란 교집합이 있는 데다, 이미 두터운 팬덤이 형성된 인접 시장인 케이팝 신에서 시청자가 유입해야 몸집을 키울 수 있는 방송이다. 그리고 <스맨파>는 여성 시청자와 남성 출연진이란 훨씬 전통적인 구도로 진행된다. <스우파>는 댄서들이 아이돌보다 예뻐서 히트한 방송이 아니다. 걸크러시란 콘셉트에서 여성 댄서들은 여성 아이돌보다 러프하고 리얼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남성 댄서들이 남성 아이돌의 팬덤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여성 출연자가 나오는 시즌도 여성들이 보고, 남성 출연자가 나오는 시즌도 여성이 보게 된 이 방송 시리즈의 맥락이 성별 시즌제의 흥행 공식을 뒤집은 것이다.

이 맥락으로 보면 <스맨파> 제작 발표회에서 권영찬 엠넷 CP가 뱉어 논란을 부른 발언은 더욱 부적절해 보인다. ‘여자 댄서들이 질투와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 댄서들에게선 의리와 자존심 대결을 볼 수 있었다’는 내용의 코멘트다. 이 발언은 출연자들 성별에 따른 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발언이고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말했듯이 <스우파>와 <스맨파>는 사실상 동일한 시청자 풀을 공유한다.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맨 파이터' 크루 리더 [엠넷 제공=연합뉴스]
Mnet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맨 파이터' 크루 리더 [엠넷 제공=연합뉴스]

<스우파>를 애청한 이들이 <스맨파>로 넘어오게끔 유도해야 하는 제작진의 발언으로선 저의가 궁금할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고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다. 만약 제작진이 <스우파>가 흥행한 맥락과 이유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저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을까? 객관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송 흥행을 제작진의 공으로만 여기는 심리에 빠져 출연자들을 쉽게 평가하는 발언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스우파>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비극적 중단 이후 엠넷에서 실로 오랜만에 나온 흥행작이었지만, 제작진에게 성공을 이어 갈 역량이 있는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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