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의 KBS 기자 해외연수 취소는 '경영성과는 임원이 책임진다'는 임원 직무 정관을 근거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연수 선발자를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임원 권한을 확대 적용했다는 얘기다. 독립적인 심사를 위해 내외·부 인사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취지가 사라진 셈이다.
또한 언론재단은 KBS 기자 해외연수를 취소한 판단 근거에 대해 '한일 관계에 관한 중대한 이슈'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와 국익에 해를 끼친 보도를 한 기자라는 점이 연수 취소를 결정하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실은 언론재단에 KBS 범기영 기자의 해외장기연수 선발이 취소된 사유와 경위, 근거 규정에 관한 답변을 요청했다. 범 기자는 지난달 윤 대통령이 한일 양국 국기에 경례한 것을 두고 일장기에만 경례를 했다고 잘못 중계했고, KBS는 당일 두 차례 사과했다. 범 기자는 심사를 거쳐 해외연수 지원자로 선발됐으나 언론재단은 심사결과를 뒤집었다.
언론재단은 답변에서 임원의 직무를 규정한 재단 정관을 취소 근거로 들었다. 언론재단은 해외연수 지원자 선발 후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임원 직권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재단 정관 제11조는 '이사장은 재단을 대표하고 업무를 총괄하며, 임기 중 재단의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상임이사는 이사장을 보좌하여 소관업무를 지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재단은 "재단 사업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책임지는 것은 재단의 임원이며 관련한 의사결정 권한 또한 임원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재단은 "선발 후 취소할 수 있다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음에도 재단이 이런 결정을 한 근거는 ▲방통심의위 심의 신청 접수 ▲KBS 내부 징계(본인 발언)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서의 잘못된 발언으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기자에게 공적자금을 통한 지원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결정할 권한은 재단의 업무를 총괄하고 책임을 지는 임원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론재단 주장대로 임원이 직권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면 애초 해외연수 지원자를 선정하는 데 독립성을 강조한 심사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할 필요가 없다. 언론재단이 지난 1월 홈페이지에 게시한 '2023 언론인 해외장기연수 지원 사업 공고'에 따르면 '심사방식과 절차'는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선발심사위원회'에서 3월 말까지 심사·최종선발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언론재단이 '방통심의위 심의 신청 접수'를 취소 판단의 근거로 답변한 점은 심의가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문제에 더해 해외연수 선발이 정당의 민원 접수만으로 취소될 수 있는 전례가 남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KBS 일장기 경례 오보'를 방통심의위에 심의 신청한 당사자가 여당인 국민의힘이다.
언론재단은 기자가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KBS 심의실 차원의 '경고'로 징계로 판단하기 어렵다. KBS는 심의지적평정위원회로부터 3번의 경고를 받은 경우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개최한다. KBS 규정상 징계는 인사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기자가 받은 심의실 '경고'는 인사기록에 남지 않는다. 언론재단이 실제 징계가 이뤄졌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언론재단은 해외연수 선발자 취소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취소를 통보한 데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던 취소 규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개선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답했다.
또한 미디어스가 언론재단 등에 확인한 결과 19일 열린 언론재단 이사회에서 범 기자 해외연수 취소 결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전례없는 취소 결정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 ▲범 기자가 소송을 제기한다면 패소 가능성이 높은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지 ▲패소 가능성이 높다면 범 기자 해외연수 취소 결정을 번복하는 안건을 차기 이사회에 상정해야 하는 것 아닌지 등의 지적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재단은 우선 취소 결정 사유로 '한일 간의 이슈로 중대한 사안'이었으며 '오래된 일이 아니라 최근의 일'이라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이어 언론재단은 법률 분쟁 발생 시 패소 가능성에 대해 법률검토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언론재단은 안건 상정 여부에 관해서도 법률 검토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심사위원회 결정을 뒤집은 언론재단 임원은 표완수 이사장, 유병철 경영본부장, 남정호 미디어본부장 등 3인으로 확인됐다. 언론재단 상임 임원은 표 이사장, 유 본부장(상임이사), 남 본부장(상임이사), 정권현 정부광고본부장(상임이사)이다. 표 이사장을 제외한 3인의 본부장은 지난달 14일 문화체육관광부 승인으로 임명됐다.
유 본부장은 연합뉴스, 남 본부장은 중앙일보, 정 본부장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법조기자 출신이다. 언론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연합뉴스에서 법조팀장을 역임했다. 남 본부장은 사회부 기자 시절 법조팀에서 근무했다. 정 본부장은 조선일보에서 법조팀장, 사회부 차장(법조데스크), 사회부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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