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SM 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이전투구가 갈수록 볼만하다. 두 회사의 지분 인수 경쟁에 대한 관측은 경제신문에서 읽기를 권한다. 여기선 케이팝 산업의 행간에서 일련의 상황을 짚어보려 한다.

현 상황에선 두 가지 구도가 눈에 띈다. 하나는 이 싸움의 전선이 SM 대주주이자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을 중심으로 그어졌다는 것이고, 하나는 카카오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SM과 하이브의 대결처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싸움은 SM 임원들이 지난 1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먼트가 요구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받아들이고 이수만 총괄 체제가 끝나면서 시작됐다. 카카오가 유상증자를 통해 SM 주식을 인수하려 한 직후, 하이브가 이수만과 지분 인수 계약을 하며 사태가 요동쳤다. 하이브는 성명서를 통해 이수만이 SM에 대해 지닌 정통성을 강조하며 명분을 확보하려 했고, SM은 이수만의 치부를 연일 폭로하며 대항하고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가 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몽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가 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몽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공방에서 받은 인상을 말하자면, SM의 입장은 미심쩍고 하이브는 섣불러 보인다. SM은 현 상황을 하이브의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규정하고, 외세의 침탈에 맞서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항쟁처럼 형용한다. 그 반대쪽 엔딩이 카카오의 지분 인수란 공공연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것이 논리적인 입장인지 알 수 없다. SM은 자신들이 추구해 온 전통과 가치를 강조하지만 창사 이래 그걸 일군 핵심 주체는 이수만이다. 원색적 성명으로 이수만을 절연해야 할 구시대의 권력이라 포화를 퍼붓는 상황에서, 여론전을 위해 편의적으로 취하는 자가당착이란 인상이 든다. 예컨대 SM 측은 이수만의 잔재를 몰아내려 하지만, 이수만이 전면에서 기획한 ‘광야’(SMCU)는 이수만의 것이 아니라 SM의 미래라고 말한다. SM 임원들이 정말로 전통을 지키려는 스탠스에 있다면, 이수만의 공과를 나누어 평가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반면 하이브는 이수만을 과도하게 껴안는 제스처로 레이스를 시작했다는 인상이 든다. 이수만을 “우리 음악인들의 레거시”라고 추켜세우고, “공동의 비전”이란 표현까지 쓰면서 흡사 양자가 파트너십을 맺은 듯 오해 심을 여지를 줬다. SM이 이수만을 공격하는 프레임을 짜면서 자꾸만 무언가를 해명해야 할 여지를 남겼고, 최초의 극찬과는 달리 이수만과는 향후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야 하는 다소 어색한 모양새가 나왔다.

하이브와 카카오는 각각 SM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 (서울=연합뉴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 (서울=연합뉴스)

그래서 카카오든 하이브든 어느 한쪽이 SM을 얻는다면 SM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달리 말해, 카카오와 하이브는 각각 SM에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같은 엔터회사지만 두 회사의 성격이 판이하므로 대답도 다르다. 카카오는 미디어·뮤직·스토리 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종합 엔터회사고, 하이브는 케이팝에 특화된 음악 레이블들의 집합체다. 이 말은 카카오와 손잡을 경우 케이팝 분야 바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연결망을 얻을 수 있고, 하이브는 케이팝에 특화된 시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SM이 이수만과 별개로 키워가겠다고 다짐하고 방시혁이 공감한다고 밝힌 ‘광야’는 기획사 단위의 독자적 세계관을 통해 마련되는 지식재산권(IP) 사업의 원천이다. 카카오 웹툰과 웹페이지 플랫폼은 거기서 파생되는 스토리 콘텐츠의 유통망이 될 수 있고, 카카오 산하 스튜디오들은 영상물 제작의 퀄리티와 다양성을 더해 줄 수 있다. 이전부터 SM이 선구적으로 추진해 온 IP 사업의 파생 상품화에서 여타 기획사-어쩌면 하이브도-를 앞서가는 경쟁력을 줄 수도 있다. 반면 카카오는 케이팝 사업에 대해선 이렇다 할 인프라도 소프트웨어도 없다. 몇몇 케이팝 기획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걸출한 IP는 없는 상태다. 마찬가지로 내수 시장에 대한 사업 기반은 있어도 해외 시장에서 SM에게 어떤 이득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케이팝 분야에 관해선 SM이 도움을 얻는 게 아니라 카카오가 SM의 IP와 브랜드를 흡수하는 게 절실하다.

하이브는 케이팝 시장의 가장 큰 브랜드이고 글로벌 시장에 유무형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케이팝의 전통을 대표하는 SM과 현재를 대표하는 하이브가 결합한다면 각각의 브랜드 가치와 IP를 통해 전례 없는 시너지가 생길 것이다. 하이브는 북미 현지에서 이타카홀딩스 등 유명 레이블을 인수한 상태고 차별화된 입지와 네트워크가 있다. 북미는 세계 문화의 중심부로서 케이팝 기획사와 가수들이 스텝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SM 역시 오래전부터 현지 진출을 도모해 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 가수들에게 제공하는 현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프로모션 효과 등을 통해 이 숙원을 이루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면, 하이브의 SM 인수에 따라오는 물음표는 역시나 SM의 고유성이 유지될 수 있느냐다. 플레디스 인수나 어도어 레이블을 보면 하이브 산하 레이블들에게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경우는 기존 임원진이 물갈이되는 방식으로 인수될 것이므로 케이스가 다르다. 산업 전체로는 하이브가 지나치게 거대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하이브와 SM은 업계 매출 순위 1, 2위 기획사(2022 상반기 기준 각각 7972억, 3539억)로서 합병 시 YG와 JYP 매출 합계(각각 1515억, 1335억)의 네 배에 이르고, 케이팝 주요 그룹은 대부분 하이브 가수가 된다. 엔터 상품의 특성상 일반적 재화의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그대로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경쟁 없는 생태계는 역동성을 잃을 수 있다. 예컨대 제이팝 아이돌 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쟈니스와 바로나섬 양대 기획사가 보이그룹과 걸그룹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산업의 질적 변화를 위한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SM이 카카오와 손을 잡는다면 수평적 사업 확장을 기대할 수 있고, 하이브에게 인수된다면 수직적 사업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살펴봤듯, 각각의 이면 또한 있다. SM이 발표한 개혁안 SM 3.0에서 제시된 목표 “2025년 매출액 1조 8000억 원, 영업이익 5000억 원, 주당 35만 원”은 현 상태(2021년 매출 7015억, 현 주가 주당 12만 원대)에 비춰 허황된 것이다. 카카오와 손잡는 것이 어떤 면에서 저만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지, 특히 IP 산업 확장이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하이브는 SM 수뇌부가 바뀐 후에도 어떻게 독립성이 유지된다는 건지 조직 구성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인수합병이 케이팝 생태계에 미칠 파장이 해롭지 않을 것이라고 논증해야 대외적 명분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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