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한국과 일본이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동반 진출했다. 일본은 지난 2일 스페인에게 승리를 거두며 조 1위를 확정 지었고, 한국은 오늘 새벽 포르투갈 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 황희찬의 결승골로 반드시 포르투갈에게 승리해야 하는 한 가지 경우의 수를 기적적으로 충족하며 드라마를 썼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12년 만의 16강 진출이다. 벤투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 축구 협회는 4년 간 준비한 시간의 결실을 거둔 셈이다. 패배한 가나 전을 제외하면 조별리그를 치르는 동안 전체적인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다. 16강은 한층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만, 16강에 올라간 사실만으로도 평가받아야 한다.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조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조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그동안 한국 대표팀은 국제무대 경쟁력이 없었다. 2002년 4강 신화와 2010년 최초의 원정 16강 이후 월드컵 드림은 다시 꿀 수 없었다. 러시아 월드컵 독일 전 승리를 빼면 8년째 패배와 조별 리그 탈락을 겪었고, 현 대표팀 역시 준비 과정에 여론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승리가 달게 느껴지겠지만, 그런 만큼 그동안 대표팀에 관해 나왔던 논쟁을 정리해 볼 필요도 있다. 포르투갈 전 하루 전에 일본은 독일에 이어 스페인까지 잡고 죽음의 조 꼭대기에 섰고, 축구 커뮤니티에선 한국이 일본에 구조적으로 뒤처진 점을 지적하는 말이 무성했다. 그런 쟁점들이 추가 시간에 넣은 한 골로 다 사라질 순 없을 것이다.

대회 내내 일본 경기는 한국 경기보다 한 발 앞서 치러지며 양국을 비교하게 만드는 예민한 이슈였다. 일본이 보여준 경기력과 경기 결과는 어떤 충격파로 다가왔고 대표팀도 거기 자극받아 의지를 북돋운 면도 있을 것 같다. 한국 축구가 일본에게 뒤처졌다는 탄식과 거기 반발하는 여론이 옥신각신했다. 그리고 대표팀과 축구 협회를 지지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프로 리그엔 보태는 거 없이 대표팀 경기만 보고 비난하는” 여론이 문제라고 성토하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자국 리그 수준이 뒷받침돼야 국가 대표팀 수준도 담보된다는 익숙한 논리지만 현실 정합성이 의심스러운 피상적 주장이다.

1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일본 대 스페인 경기. 스페인을 누르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일본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1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일본 대 스페인 경기. 스페인을 누르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일본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현재 K리그 경쟁력은 J리그보다 낮지 않다. K리그는 아시아 축구연맹이 지난 연말 발표한 AFC 클럽 대회 랭킹에서 아시아 국가 중 2위, 동아시아 국가 중 1위에 올랐다. 일본은 한국 다음 순위 3위다. 아시아 클럽 대항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2010년 이후 K 리그 팀들이 4회 우승하며 참가국 중 최다 우승팀을 배출했다. 게다가 K리그 1과 K리그 2에는 모두 10개 이상의 시민구단이 있는데 이 구단들은 세금으로 마련되는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 예산의 상당 액수를 충당하고 있다. 적어도 리그 수준 차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 경기력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며 K리그는 대표팀을 응원하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존속돼 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일본 축구가 한국을 추월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 원인은 대표팀 운영을 떠나 구조적 투자와 일관된 플랜의 차이일 것이다. 이건 축구를 떠나 단기적 성과주의에 내기를 거는 한국과 장기적으로 인프라 개혁을 추구하는 일본, 양국 사회의 경로 의존성에서 비롯한 결과일 수도 있다. 요는 문제의 원인을 현실에 비춰 구체성 있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년 간 월드컵마다 한국 축구를 둘러싼 담론과 여론은 대표팀 감독을 바꾸는 표면적 처방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대신하거나, 모든 문제를 프로리그로 환원하며 현실을 단순화하고 비판 여론을 무마하는 단순한 수준을 맴돌았을 뿐이다.

20년 전과 닮은 모습 '포르투갈 누르고 16강!' (알라이얀=연합뉴스)
20년 전과 닮은 모습 '포르투갈 누르고 16강!' (알라이얀=연합뉴스)

한국 축구는 대표 팀과 축구 협회를 향해 투입되는 여론과 담론 차원에서부터 합의를 이루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유럽의 축구 강호들도 나라마다 국력과 리그 특성이 다르고 때문에 자국 축구를 부양하는 전략도 방향성과 디테일에 차이가 있다. K리그는 야외 스포츠가 하락세에 스포츠 관람 인구가 크지 않은 사회 상황과 자본 유입 규모 상 지금 이상 성장하기 힘든 리그다. 이 현실 앞에서 “자국 리그의 중요성”을 강조해 봐야 무의미한 동어반복이다. 국가 대표팀 특수와 소수의 특출 난 해외파 선수를 배출해 온 것이 한국 축구가 성장해 온 경로라면, 차라리 그걸 더 확장하는 방향으로 인프라를 특화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

말했듯이, 이번 대표팀은 이미 성공했다. 4년 간 벤투 체제에 많은 말이 나왔지만,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맞춰 대표팀을 세팅하고 그 성과로 축구계 전체를 부양하는 체제다. 그렇게 일군 성과에 보상을 주는 건 때론 열광하고 때론 비난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그 모든 에너지를 대표팀이 얻는 위상으로 바꿔 온 국가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열기다. 이런 방식으로 성장해 온 것이 한국 축구라면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좀 더 장기적인 시각을 덧씌우는 것이 실리적 대안일 수도 있다. 8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실패하며 대표팀 인기도 내려왔었지만, 이번 16강 진출은 현실을 개선해 나갈 여유와 자원을 얻은 반등점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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