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한국 축구에 관해선 늘 말이 많다. 축구는 모든 운동 종목 중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렬하게 투여되는 종목이다. 단일 종목 국가 대항전으로서 월드컵만큼 규모가 큰 대회는 없다. 벤투가 이강인을 쓰지 않는다, 관중들이 경기장에서 이강인을 연호하며 출전을 촉구했다, 손흥민이 이강인만을 위한 대표팀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카메룬 평가전에서 나온 광경은 월드컵 시즌마다 국가적 들썩임으로 난무하던 이 말 저 말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 그럼에도 아직 유망주에 불과한 어린 선수 때문에 관중들이 대표팀 감독을 직접 압박한 건 이례적인 일인 것도 틀림없다. 경기가 끝난 후 여론은 논쟁에 휩싸였는데, 주목할 건 벤투를 변호하고 비판하는 말들이 충돌하면서 파편처럼 튀어나온 ‘FC 코리아 팬’이란 말이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 손흥민이 경기가 끝난 뒤 벤치를 지켰던 이강인을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 손흥민이 경기가 끝난 뒤 벤치를 지켰던 이강인을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FC 코리아 팬’은 대표팀 경기에만 극성을 부리는 국민을 빗대는 신조어다. 국내 프로 축구 리그, 케이리그에는 무관심하고 대한민국 대표팀을 하나의 클럽팀, 풋볼 클럽(Football Club)처럼 응원한다고 해서 ‘FC 코리아’다. 이 말을 뱉는 사람들은 주로 케이 리그를 소비하는 서포터이거나 한국 축구 실정에 관심이 꾸준한 마니아들로 보인다. 그만큼 저 말에는 비하의 뉘앙스만큼 배타적 자의식이 묻어있다. 평소 한국 축구에 관심도 없던 당신들은 대표팀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본 건 대략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태용 호가 비판에 직면했을 때고, 그 후로도 대표팀과 축구협회가 비난받는 국면마다 등장해 방어막으로 펼쳐졌다. 이런 인식은 자국 프로리그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대표팀 경기력을 이룬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상식적인 논리지만, 상식적인 만큼 피상적인 구석이 있어 과연 실정에 맞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축구는 타국과 달리 하향식으로 발전해 왔다. 유럽과 남미는 프로 리그가 융성해 있고 축구가 생활 스포츠다. 높은 수준의 인프라를 통해 우수한 선수들이 배출되고 대표팀 수준도 높다. 즉, 기층에서부터 상향식으로 발전한 스포츠다. 한국은 정반대다. 한 발 앞서 안착한 프로 야구가 인기 종목을 차지했고 축구 리그는 두 번째 이상 간 적이 없다. 반면 축구만큼 국가 대항전이 꾸준히 중계되는 종목이 없어 특유의 내셔널리즘으로 한일전,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다. 즉, ‘약한 프로리그 / 강한 국가 대항전’은 처음부터 한국 축구에 주어진 조건이었고, 4년마다 제시된 ‘월드컵 16강’의 미션이 축구계를 이끌어 왔다. 대표팀이 국가 대항전에서 거둔 실적이 보상이 돼 인프라가 건설됐고, 선수들은 대표팀 경기를 통해 유명세를 얻고 몸값을 제고했다.

한국 대표팀의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순간.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대표팀의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순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하향식 시스템의 정점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다. 프로 리그를 중단하고 대표팀 장기 합숙을 하며 국가적 총력전을 펼쳤고, 그 잭팟이 터져 한국 축구는 몇 차원 도약할 수 있었다. 축구란 스포츠의 사회적 위상이 성장했고, 유럽 리그로 선수들이 대거 진출했고, 축구협회 예산 규모가 커졌으며, 유소년 육성 인프라가 급속히 확장됐다. 케이리그 역시 월드컵 특수를 받아 관중이 유입했고 자국 리그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런저런 담론의 수혜를 누렸다. 이렇듯, 한국 축구는 리그가 성장해야 대표팀도 성장한다는 일반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오히려 대표팀을 향한 국민적 열기, ‘FC 코리아 팬’들의 ‘감 놔라 배 놔라’가 케이리그에도 영양분을 흘려보내 준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한국 대표팀 경기에 심취하는 건 직관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축구협회에 들어가는 세금은 아주 적지만, 국민들이 보는 대표팀 경기 스폰서로 수익이 충당되기에 협회의 존립 기반도 ‘FC 코리아 팬’들에게 달렸다. 오히려 케이리그에 대한 관심을 ‘개입할 자격’으로 요구하며 국가 대표팀이란 보편적 대상을 배타적 자의식으로 전유하는 이들이야말로 ‘FC 코리아 팬’ 같은 유별난 소속감을 빗대는 조어에 더 들어맞는 이들일지 모른다.

이상은 축구를 넘어서 한국적 특수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역동성과 내셔널리즘이 강한 데다 엘리트 집단의 성취가 국가를 대표하는 하향식 시스템으로 운영돼 왔다. 사회 전 분야에서 산업화와 세계화의 열망이 들끓었고 스포츠 분야에선 엘리트 선수를 키워 종목에 종사하는 이들이 낙수 효과를 얻었다. 손흥민은 제도권 축구 교육에서 이탈해 부친에게 개인 지도를 받고 유럽에 진출한 케이스라 한국 축구계의 예외처럼 보이지만, 자식 교육에 기대를 걸고 모든 걸 투자하고 뒷바라지한 지극히 낯익은 한국적 풍경이기도 한 것이다.

축구 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전반전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 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대 카메룬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전반전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한국 축구계는 저 열망을 충족해 주는 소수의 해외파 빅리그 선수들로 동력을 얻고 있다.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국민적 관심사가 손흥민과 김민재, 황희찬에게 투영되고, 대표팀 경기 티켓이 팔리고 축구계에 관한 여론과 담론이 이어져 축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코인’을 배당한다. ‘국뽕 낙수효과’라 부를 만한 이 원리가 대표팀과 국내 해외축구 팬덤, 국내 축구계를 연결하는 시장 논리이며, 최근 유럽 빅리그 중 한국인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활약상을 보여주는 이강인이 블루칩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중들이 어린 선수 하나를 집어 구세주처럼 호명하는 유난스러운 상황까지 나왔다.

벤투가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구체적인 전술적 식견으로 토론되어야 할 논점이다. 꾸준히 말이 나오는 벤투의 ‘빌드업 축구’나 대표팀 경기력, 본선에서 취해야 할 전술도 전문가들 의견이 필요한 쟁점이지만, 대표팀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논란 너머에 있는 쟁점을 인식해야 한다. 하향식 시스템을 통한 축구계 발전은 한국 축구의 역사이자 현재이며, 그 외부를 상상할 수 없이 주어진 조건이다. 그것이 옳냐 그르냐 가치판단을 떠나서, 이 현실을 긍정하고 합의하지 않고는 대표팀과 축구협회 운영에 관한 모든 열띤 말들은 계속해서 헛돌 수밖에 없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