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며칠 전까지 강원도에 있는 문학촌에 있었다. 문학촌은 인가와 떨어진 곳으로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읍내로 나가야 했다. 집필에 필요한 것과 먹는 것은 모두 문학촌에 있었기 때문에 별로 필요한 것은 없었으므로 마실 삼아 일부러 읍내에 나가 한 바퀴 돌아보고 오기도 했다.

그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빗소리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내내 시선을 창에 머물게 하였다. 결국 집필을 접고 다른 선생님들과 읍내에 나가 치킨에 가볍게 맥주 한잔하고 오기로 하고 읍내로 향했다. 읍내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면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치킨 가게에서 단체 주문 때문에 홀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나와 어디로 결정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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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옆의 문 닫힌 가게 앞에서 흰 물체가 꿈틀거렸다. 백구였다. 우리를 발견하고 조용히 일어나 꼬리를 쳤다. 백구는 묶여 있었다. 일 미터쯤 되는 줄에 묶여 같은 공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우리에게 오고 싶지만 목줄이 허용하는 거리와 공간은 일 미터.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바닥에 누워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순한 개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백구가 있는 곳은 가게 앞 길가로 차가 다니는 도로였다. 영업이 끝났는지 문이 닫힌 가게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개집은 보이지 않고 밥그릇과 물그릇이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백구가 머무는 집이 아니라고 하여도 길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이 왔던 선생님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저 개는 평생 묶여 살 거야. 저 일 미터 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 미터 안의 공간에서 빙글빙글 돌며. 가슴이 먹먹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눌러서 밀어 넣었다.

주인 몰래 풀어줄까. 그럼 백구는 자유를 얻는 건가.

목줄에 묶여 딱 일 미터만 허용되는 공간에서 사는 것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목줄을 풀어주면 잘 살 수 있을까.

정말 자유를 얻는 것일까.

도시 사람의 쓸데없는, 어설픈 연민이 아닐까. 

복잡한 마음이 되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문학촌 앞의 천에 물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 주기적으로 경고 사이렌이 울릴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 읍내에 있던 백구가 걱정되었다. 집도 없이 길가에 묶여 있던 백구. 무섭고, 외로웠겠다. 얼마나 많은 날을 무서움에 떨며 보냈을까, 또 얼마나 많은 날은 외로움에 떨며 보내야 할까.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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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개의 운명이었다. 집 안, 문 앞에 묶여 평생을 보내야 하는 운명. 딱 일 미터의 공간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 같이 살지만 고독한 운명.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골에 살지만 일 미터 공간에서 벗어나 강을 따라 달릴 수도,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수도 없었다.

개를 위해 목줄을 풀어 산책시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십 년 넘는 세월을 오직 목줄이 허용하는 공간, 딱 일 미터 안에서만 생활하다 삶이 끝났다. 

이보다 더 나쁜 예도 있었다. 읍내에서 보았던 백구에 관해 이야기하자 작가 O가 이야기했다. 글을 쓰려고 들어갔던 시골에서 밤이면 개가 내지르는 비명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밤이면 밤마다 개가 내지르는 비명과 남자의 술에 취해 내지르는 욕설에 괴로워 살 수 없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개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잠을 잘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고 했다.

추측하건대 밤이면 집주인 남자가 술에 취해 집 앞에 묶여 있는 개를 때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신고하고 싶은데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린지 알 수 없어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개는 일 미터밖에 안 되는 줄에 묶여 남자의 발길질을 그대로 견뎌야 했다. 개는 평생 일 미터의 삶에서뿐 아니라 폭력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비가 오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날씨 예보가 있었다. 결국 다시 읍내로 향했다. 백구가 그 자리에 그대로 묶여 있었다.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주인은 있는 듯하지만 백구는 일 미터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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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의 주인이 연세가 많은 어르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개는 집을 지키는 거지, 그럼 집 앞에 묶어서 키우는 게 당연하지, 산책은 무슨, 그리고 내가 나이가 있어 개를 산책 시킬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대신 산책을 시켜주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들었다. 일 미터의 삶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백구의 주인이 산책시키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어르신이라면 묻고 싶다.

"당신의 개를 산책시켜도 되겠습니까?"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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