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동1985' 국회 시사회장 앞에 세워진 영화포스터

“난 (여기서 나가면)이런 반인권행위 고발할 거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고문 실화를 영화화한 <남영동 1985>. 주인공 김종태(박원상 분, 고 김 상임고문)는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85년 9월 4일 경찰에 연행돼 남영동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장의사’라 불리던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 분, 이근안). 이두한은 김종태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데…. <남영동1985>는 김근태 상임고문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에 갇힌 22일을 그린 영화다.

<남영동1985>는 ‘8할이 고문’이라고 할 정도로 상상도 못하는 고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 김근태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이 “(보는 게)고통스러울 때에는 눈을 감으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남영동1985> 제작 과정은 그야말로 험로 그 자체였다. 투자를 받지 못해 정지영 감독(<부러진 화살> 연출)이 주축이 돼 배우는 물론 모든 스텝들도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 '남영동1985' 국회 시사회에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부인 인재근 의원은 "고통스러우면 눈을 감고, 눈물이 나면 울라"고 말했다. ⓒ미디어스

오는 22일 정식 개봉을 앞둔 <남영동1985> 시사회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14일 열렸다.

이날 상영회에서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영화를 보는 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라면서 “그럴 때에는 눈을 감으세요. 전기고문 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눈을 감았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인 의원은 지난 13일 영화 시사회에서 <남영동1985>를 관람한 바 있다.

인재근 의원은 이어 “눈물이 나면 그냥 우세요. 그런 자유쯤은 저희가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라면서 “<남영동 1985>를 제작해준 정지영 감독과 힘든 연기를 한 배우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남영동1985> 제작한 아우라픽쳐스 정상민 대표는 “저희 영화는 과거 있었던 고문이라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당시 고문을 자행했던 특정 정치집단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상민 대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20~30년 이후에 그 당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과거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면서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역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남영동1985>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어 “머리로 생각하지 마시로 가슴으로 느끼면서 감상해달라”고 말했다.

▲ 1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남영동1985' 영화시사회. 이 자리에 정지영 감독과 배우 박원상, 이경영, 김중기, 문성근이 무대에 올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좌부터 우). ⓒ미디어스

<남영동1985>에서 고 김근태 상임고문 역을 맡은 박원상 씨는 “머리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봐달라.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역을 맡았던 이경영 씨는 시사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을 향해 “이 영화가 다시 제작되지 않도록 바른 정치를 이끌어달라”고 주문했다.

최규성 민주통합당 의원은 “헌법에 고문하지 않는다고 돼 있는데 고문하는 세상이었다”면서 “이제 대선이 며칠 안 남았다. 잘못하면 또 그런 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영동1985> 국회 시사회를 주최한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의원모임’ 대표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한국영화가 관객도 많고 한해 천만 영화도 2편이나 나와 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심하게 곪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성근 상임고문은 “영화계 내부에는 극장업, 제작업, 투자업, 배급업 등 다양한 업종들이 있는데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해서 영화인들의 창작의욕을 상실시키고 있다. 이미 자본의 검열이 시작됐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가 나오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남영동1985> 역시 자본의 논리에 따라 투자를 받지 못했다는 게 문 상임고문의 설명이다. 문 상임고문은 김종태(박원상 분)에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데 가담하는 윤사장 역으로 <남영동1985>에 특별출연했다.

영화가 끝난 뒤, 객석은 무거운 공기로 뒤덮였다. 한 관객은 역사의 상처를 정면으로 대면한 게 힘든 듯 “못보겠더라”는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한 인권단체 활동가 역시 “보는 내내 힘들었다. 감당하기 힘든 고문이 이뤄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대사는 김종태(박원상 분)가 남영동으로 끌려가 처음했던 한 마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였다. ‘여기’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국사회를 빗대는 듯했다. “숙제를 다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박 전무(명계남 분), 2012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준 숙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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