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방송광고판매대행(이하 미디어렙) 법안과 관련해 MBC가 자사렙을 둘 수 있는 사실상의 ‘1사1렙’ 안을 제출해 논란을 예고했다.

지난 5일 밤 10시 넘어서 진행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는 미디어렙 법안과 관련한 입장을 공식화하고 타협에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1공영 다민영’, ‘종편 3년 유예'라는 입장을 밝혔다. 말만 ‘1공영 다민영’이지 MBC를 공영렙에 의무위탁이 아닌 다민영에 포함시켜 사실상 ‘1사1렙’에 가깝다는 평가다.

▲ 22일 방통위 국감에서 김재윤 민주당 의원이 미디어렙 처리와 관련해 최시중 위원장의 책임을 추궁,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권순택

민주당은 또한 그동안 여야 이견으로 인해 법안 처리를 지연시켜왔던 조중동매경 종합편성채널의 광고판매와 관련해서도 3년 유예안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재윤 의원은 “최선은 ‘1공영 1민영’이나 현실적으로 타협가능성이 없기에 절충안으로 ‘1공영 다민영’을 제시한다”면서 “종편이 3년 정도면 시장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때 가서는 반드시 렙 체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방송사업자들이 차별 없이 각자의 미디어렙을 소유하게 하자는 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안은 당론에서 후퇴한 안이라는 비판이 높다. 지난 6월 민주당은 미디어렙 관련 워크샵을 통해 ‘1공영 1민영’으로 당론으로 정한 바 있다. 당시에는 MBC를 포함한 KBS와 EBS를 공영렙에 의무위탁 지정, SBS와 종편에는 선택권을 주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 라디오에서 김재윤 간사는 “민주당은 1공영 1민영 체제를 갖추면서 종편을 미디어렙 안에 포함한다는 게 당론”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이날 법안심사소원회에서 한나라당은 ‘1공영 1민영’, ‘종편 자율영업(3년 후 시장상황 판단)’으로 입장을 공식화했으며, 민주당과의 이견으로 협상이 진전되지 못한 채 끝났다.

민주당의 입장선회를 두고 언론계 및 시민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안이라면 차라리 내년 4월 총선 이후, 미디어렙 법안 제정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쓴 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비판했던 한선교와 다를게 뭔가”

‘충격적이다’라고 반응한 한 방송 관계자는 “여당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서 1사1렙을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종편을 미디어렙에 그것도 3년 유예로 의무위탁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미디어 정책에 대한 철학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MBC의 공영렙 지정’, ‘SBS지주회사 렙 소유 금지’, ‘종편의 렙 포함’, ‘종교 및 지역방송에 대한 연계판매 법적근거 마련’ 등의 미디어렙 법안을 입법청원한 언론개혁시민연대 역시 긴급하게 성명을 내어 “야심한 밤을 틈타 당신들은 우리의 등에 또 한 번 칼을 꽂았다”, “하루아침에 표변했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언론연대는 ‘당신들’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서울MBC의 자체 미디어렙 소유를 포함한 1사1렙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이어 “내년 4월 총선 보도에서 서울MBC의 우호적인 보도를 끌어낼 것이라는 식의 저급한 ‘정치공학’을 스스로 발동한 것이냐”고 쓴 소리를 던졌다. 또한 “‘협상 진전을 위한’이라는 말을 집어 치우라”며 “한나라당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종편의 미디어렙 적용은 4월 총선 직후 의회권력 지형을 바꾼 뒤 시행해도 늦지 않다”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차라리 집어치우라. 배가 산으로 가서야 되겠는가”라면서 “‘지상파방송도 종편이 미디어렙에 적용 되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고 말했던 한나라당 의원 한선교 씨하고 당신들이 다를 게 뭔가?”라고 경고를 보냈다.

‘지상파 1사1렙’, ‘종편 적용 3년 유예’라는 민주당의 미디어렙 공식 입장이 알려지자 종교방송 쪽도 바빠졌다.

불교방송, 평화방송, CBS, 원음방송으로 구성된 종교방송협의회 박원식 간사는 “민주당이 큰 실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원칙에서 밀리면 안 됐었다”고 비판했다.

박원식 간사는 “‘1사 1렙’으로 가자는 건데, 공영렙의 근간을 흔들 수 있지 않느냐”며 “민주당의 안이라는 게 사실로 확인되고 그런 입장을 견지한다면 종교방송협의회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본심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김재윤 간사도 방송을 통해서도 ‘1공영 1민영’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종교방송사장단은 다음주 긴급히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논의를 통해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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