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사퇴보다 비록 비굴하고 굴욕적일 수 있으나 남아서 끝까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이 시대의 요구라는 ‘아주 자의적 판단’으로, 오늘도 내일도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모퉁이에서 담대하게 해야 할 일, 고쳐야 할 일에 매진하려 합니다”

▲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오마이뉴스 김시연

11월 10일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 일정을 의결하기 전 회의장을 퇴장한 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추천 양문석 상임위원. 그러나 그의 ‘퇴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8일 심사위원회 구성 계획 논의에 앞서 그는 퇴장을 선택했다. ‘일어나는 게 옳을까 아니면 앉아서 심사위원에 2~3명이라도 밀어 넣을 것인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는 양문석 상임위원.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던 그를 찾았다. 종편 사업자 선정 결과 발표를 이틀 앞둔 지난 28일이었다.

“내 손으로 조중동에 방송을 준다고 생각하니…”

양문석 상임위원은 심사위원회 구성 계획 논의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 “내 손으로 조중동에 방송을 준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판단이 안 섰다. 끝까지 참여해서 심사위원 구성과 관련해 지분을 행사하고 결과적으로 14명 중에서 1/5의 몫인 2~3명의 심사위원을 밀어 넣을 것인지, 아니면 그만 둘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정말 깊었다. 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들어가서 감시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요청도 강해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순간 뇌리를 강타한 것이 내 손으로 조중동에 방송을 준다는 생각이었다. 그 때는 온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언론개혁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언론개혁의 대상인 조중동의 방송진출을 결과적으로 동의하는 게 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퇴장을 하게 됐다”

그러나 종편 선정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방통위는 오는 31일 오전 사업자 선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 몇 개가 선정될 것인가만 남았다.

이미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5~6개가 선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종편, 몇 개 선정을 전망하느냐’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몇 개냐는 전망은 별 의미가 없다”며 “조중동방송이 출현하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권력의 대변인인 폭스가 유럽과 미국에 침투한 결과, 값싼 문화, 저급한 보도, 자극적 뉴스가 판을 친 것처럼 한국에서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악성 바이러스 조중동방송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바이러스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MB정부가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이고, MB정부와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부메랑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쓴 것 같아 오히려 착잡한 심경이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종편 사업자 선정 이전에는 조중동이 정부 여당과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에 있었지만, 선정되는 그날로 ‘갑’의 입장이 되어 정부와 한나라당을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여당은 이제 조중동방송의 먹거리, 땔거리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번 업무보고에서는 빠졌지만 광고금지품목을 열어주는 것과 함께 편성영역에서 일본의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들의 값싼 방송콘텐츠들을 유료방송에게 열어 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15세 이상 시청 관람 일본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은 케이블TV에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곧 종편채널에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조중동은 이제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거의 모든 방송 정책에 대해 거품을 물고 반대할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에 합치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지면을 도배질해서라도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며 “종편을 따낸 이후부터는 방통위와 현 정권인 한나라당을 압박하면서 폭력적으로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한 번 언론개혁을 이야기해야 할 때…차라리 태광이 낫다”

그렇다면 양문석 상임위원이 생각할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태광그룹> 등 종편 사업을 신청한 법인 중 정말 여기만은 안 된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을까?

그는 “차라리 태광이 낫다”면서도 “그런데 거기도 안 된다”고 답했다. 이어 “최소한 6개 예비사업자를 제외하고 다른 사업자가 있다면 지금 반대의 1/10만 투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차라리 태광이 낫다’는 발언의 배경은 신문 예비사업자들의 보도행태였다.

“종편 추진 이전에는 최소한 발생한 사건 의제 자체에 대해 의도적으로 삭제하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조중동 대척점에 지상파 방송3사가 있었고, 지상파가 큰 사건이라고 판단했을 때에는 조중동도 해설을 달리해서 다루는 정도였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지상파 3사와 조중동의 의제설정이 친정권적 의제설정으로 바뀌면서 사실상 일방적인 조중동의 가감 삭제만이 있었을 뿐이다. 미디어법, 4대강사업, 반종교적 행태들이 그러했다. 천안함 등 대북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한국의 침묵하는 50%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으로 간주되었고, 말하는 50%의 일부만 한국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인 양 보도했던 것이 조중동과 그 아류 신문들이었다. 그 위세에 짓눌린 지상파 방송 3사의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개혁과제는 다시 한 번 언론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양문석 상임위원ⓒ권순택
“방통위 1기, 그만 먹튀하자…2기가 바로잡을 기회는 주어야”

1기 방통위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특히 1기 방통위는 이미 ‘먹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종편 등 많은 것들을 추진해 놓고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정부여당 추천 방통위원과 민주당 추천 방통위는 1차적으로 구분되어야 하고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져야 할 책임은 막중하다”며 “KBS 장악부터 MBC 이사진 장악 과정,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 날치기 이후 후속조치인 종편·보도전문채널까지 일련의 반언론적 행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렇지만 이런 평가들은 양문석의 눈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야당이 평가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을 아꼈다.

양문석 상임위원이 분명히 한 점은 방통위 1기가 먹튀라고 한다면 종편에 더 이상의 특혜를 주지 않고 그만 먹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기에선 이대로 끝냈으면 한다. 남은 기간, 최소한 2기 방통위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간곡히 설득하고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싸움? ‘쌈꾼’하면 생각나는 사람 역시 양문석 상임위원이다. 파이터의 이미지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양문석 상임위원은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다)

“평생 저항이라는 이미지와 같이 살았는데 방통위에 들어오면서 이제 설득의 영역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방통위에 합리적 논쟁은 있는데 비합리적 결정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합의제라는 방통위를 보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나 또한 충분히 민주주의에 훈련돼 있는가를 반성하게 됐다”

양문석 상임위원에게 최시중 위원장, 이경자 부위원장, 형태근 상임위원, 송도균 상임위원 중 꼭 한 사람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양문석 상임위원은 같은 야당 추천인 이경자 부위원장을 두고 “밖에서 비판할 때와 옆에서 목격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4:1이라는 아주 험난한 논의구조에서 2년간 버텨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존경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일관되게 민주주의적 신념 속에서 논쟁을 해 오신 분이다. 안에 들어와서 보니 나보다 더 선명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이 나에 대해 돌아보고 신중함과 많은 취재들이 필요한 이유가 됐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야당추천 전 상임위원이자 종편 심사위원장인 이병기 교수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 민주당 추천이었던 사람에게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병기 교수 본인 또한 거절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다는 점에서 용서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도광양회, 2010년은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 해였다”

이명박정부 3년차였던 2010년을 양문석 상임위원은 ‘도광양회(韜光養晦)’로 정리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속에서도 그래도 희망을 만들어가고 확인한 시간이었다는 평가다.

“첫 해보다는 두 번째 해가 나았고, 또 두 번째 해보다는 올해가 좀 나았다. 민주세력들이 바닥을 치고 다시 내부적으로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고통스럽기만 한 기간은 아니었다. 이제는 반격만이 남았다. 총반격을 통해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더 공고히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을 도광양회라고 정리하고 싶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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