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겁의 날이었다. 그동안 잦은 싸움에도 9회만큼 많은 사람이 죽은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혜원에 대한 말없는 충성과 애정을 가진 백호(데니안)의 허무한 죽음이었고, 특급 살수답지 않은 윤지(윤지민)의 죽음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에게 죽음에 대한 감독의 친절한 배려로 인상적인 격투신을 남겼다. 이들의 탈락으로 인해 복잡했던 추격전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선구조로 정리되었다.

추노 격투신의 특기 초고속 카메라의 효과가 주는 미감은 충분했으나 혜원의 초상을 대길에게 던진 후 그것을 베는 백호의 행동이 의아했는데 만약 죽음을 예감(각오)한 일검필살의 행동이었다면 수긍되는 일이다. 이승을 등지는 검객의 필살의 일격이라면 마음에 품은 단 하나의 여인 먼저 베는 선택을 통해 그만큼의 결연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상황에서 언제나처럼 대길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날아드는 최장군의 장창에 뒤치기 당하는 것은 아쉬웠다.

백호가 추노에서 주요 인물은 아니지만 송태하에게 보인 무사의 격이나 주인이자 연모하는 대상 혜원에 대한 지고의 마음을 보여 온 것과 달리 그의 최후는 성의가 조금 덜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대길의 느닷없는 자기 상실의 상태의 개연성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들짐승 같은 추노꾼으로 살아온 그가 방금 전까지 검을 겨루던 상대가 버젓이 앞에 선 상태에서 혜원의 초상 하나에 넋을 잃고 검이 달려오는데도 꼼짝 않는다는 것은 지나친 방심이며, 혜원에 대한 아픔 표현의 중복이었다. 천지호의 덫에 걸렸던 때 한번으로도 이미 충분히 혜원에 대한 대길의 절대적 상흔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주인공 불사의 법칙을 버릴 수 없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대길이 그 순간 넋 나간 사람이 되고 거의 그의 머리가 두 동강 날 즈음에 최장군의 장창이 정확히 백호의 등짝을 뚫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그림이었다. 백호가 단역에 불과하다면 갑자기 떨어진 기왓장에 맞아 죽어도 그만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설정대로라면 백호에 대한 무사의 예는 대길의 검에 베이는 것이었다. 대신 죽는 백호는 최대한 무사다웠기에 다행이었다.

우리가 사극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 중에는 살인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다른 태도에 있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패한 적장을 예로써 대한다든가, 대적할 만한 실력을 가진 상대라면 이기고도 그에 합당한 예의를 표하는 등이 그렇다. 살수 윤지야 아무런 동기 없이 돈을 받고 혜원을 죽이려 한 단순한 청부업자기에 그런 대접은 과할 수 있다지만 백호에 대한 무사로서의 명예로운 죽음을 허락 치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데니안 최후의 연기는 넉넉한 평가를 주어도 충분했다. 연기자로서의 첫발을 잘 뗀 것 같다.

그리고 토사구팽의 전형을 보인 천지호 패거리들에 대한 학살이 있었다. 이것은 황철웅(이종혁)의 잔혹한 캐릭터의 배경 삽화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뒤집겠다는 업복이 패거리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쓸모가 있을 동안은 천지호의 능글거리는 요구들을 모두 받아주던 황철웅이 천지호의 오른팔 만득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비정함은 결코 섞일 수 없는 신분의 한계를 상징한다.

섬인 제주의 한정된 공간에서 송태하의 흔적을 발견한 이상 황철웅에게 천지호 패의 존재는 없어도 그만이다. 추노 홈페이지에는 만득을 비롯한 패거리의 죽음으로 인해 천지호가 벼슬아치에게 저항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현재 추노에서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업복이 패거리들뿐이다. 태하의 현실이 그렇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권력에 대한 항거라기보다는 권력의 수평이동을 뜻한다.

쫓기되 쫓기지 않고, 노비지만 노비가 아니라는 송태하의 현실부정 속에는 과거(여러 의미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노비들이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노비들이 현실의 권력(신분)을 부정하고자 하지만 송태하의 끊임없는 자기 부정은 권력다툼에 밀려난 것이지 현실의 제도가 아니다. 그런 송태하의 탈출부터 추노의 시선이 노비에서 충신 태하로 바뀌고 있어 초반의 질펀한 저자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좀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천지호 패거리와 백호, 윤지 등 복잡한 추격전의 잔가지가 처리된 추노는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고 있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짝귀가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언년에 대한 애증으로 뒤범벅이 되었던 대길의 또 다른 변신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드라마가 추노인 만큼 대길의 변화는 혜원에 대한 애증의 본질적 문제인 반상의 제도에 대한 저항으로 산화해가는 모습일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다.

그 대열에 업복이, 천지호 그리고 송태하의 서로 동기와 이유는 다를 지라도 동행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런 남정네들의 위험한 도전 속에 두 여자 혜원과 설화는 상실의 아픈 상징이 될 것이다. 역사가 전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추노 속에서도 결코 상것들의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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