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게 터진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 배치 보고 누락 문제를 고리로 국방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국가의 중대사를 앞에 놓고도 협량한 태도로 일관하는 보수적 군 출신 관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청와대가 밝힌 전모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정의용 현 국가안보실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사실상 업무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사드 배치의 현황에 관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지난 5월 25일 사실상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 업무보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 보고는 없었다.

다음날인 26일 국방부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고 내용의 부실함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이 국방부 관계자를 따로 불러 취조를 하다시피 한 후에야 미군 측이 국내에 반입한 사드 발사대 4기의 정확한 상황이 보고됐다. 2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사드 발사대 4기의 행방을 물었으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는 역사에 남을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도 하루가 지나도록 국방부는 해당 사안을 여전히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결국 30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한민구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건 이후에야 사드 발사대 4기의 행방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전북 군산시 새만금에서 열린 바다의 날 행사를 마친 뒤 전시된 헬기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이날 오후 국방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은 오히려 상황 파악을 못한 청와대가 문제라느니 국면전환용 언론플레이니 하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애초에 사드 발사대 6기가 국내에 반입되어 있었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고 “배치”냐 “반입”이냐에 따라 국방부 측의 답변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2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추가 배치된 것이냐”고 묻기에 “아니다”라고 했고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반입된 것이냐”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한 것뿐이라는 거다.

만일 이렇다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상식적 차원에서 판단하면 된다. 청와대의 외교안보정책 총책임자가 사드 발사대 4기의 행방을 묻는데 국방부 장관이 무슨 스무고개도 아니고 ‘올바른 질문’을 할 때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4기가 추가 배치됐느냐”고 물었더라도 “사드 1개 포대가 전개됐고 이 중 발사대 4기는 칠곡 왜관에 있다”고 대답하는 게 누가 봐도 정상적인 대화다. 한민구 장관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해프닝이라고 해도 “한반도에 반입된 사드 포대는 4개가 아니라 1개다”라고 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하는 건 말을 안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사드 발사대 4기의 반입은 이미 언론을 통해 기사화 됐는데 이제와서 “충격적”이라는 건 문제라는 식으로 반응했는데 이는 그야말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권의 국방부는 해당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해준 바 없다.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군사정보에 관한 사안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공개적으로 사실 확인을 해준 바 없는 사안을 직접 군사정보를 관리하는 청와대가 “언론보도와 현지 상황을 보니 사드 발사대 4기는 칠곡에 계속 있는 거 같다”고 알아서 판단했어야 한다는 건 상식을 뛰어넘는 주장이다. 언론 보도와는 별개로 사드 발사대 4기의 현황과 향후 이동 계획 등에 대한 인수인계 성격의 공식 보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왜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 청와대가 ‘환경영향평가’를 언급한 것과 이에 대한 언론의 후속보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발사대를 2기만 배치한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약식으로 최대 6개월 안에 끝낼 수 있지만 나머지 4기를 모두 배치하면 복잡해진다. 기간만 따져도 최대 1년까지 걸릴 수 있다. 그러니 최대한 쟁점화 시키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를 끝내기 위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려면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사드 배치에 필요한 부지 공여 문제를 어떻게 합의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의 행방도 두루뭉술하게 서술해 보고한 걸 볼 때 이런 구체적 합의내용 역시 보고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과연 무슨 문건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박근혜 정부는 사드 부지 공여와 관련한 사안을 ‘합의건의문’의 형태로 명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도 정확치 않고 이 내용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어쨌든 한민구 장관의 행위는 큰 줄기로 보면 한미 양국이 지난 2월 말 사드 포대를 조기에 국내 배치하기로 합의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다음 문제가 등장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장관이 사드를 조기 배치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난 12월 말 군 부대 방문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단순한 것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보다는 복잡한 사고가 필요하다. 대선 이후 대북정책과 한미관계의 변화를 예감한 군 출신 관료들이 새로운 정부의 정책적 자율성을 침해하기 위해서 되돌릴 수 없을만한 ‘결단’을 한 거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5월 2일의 한국일보 보도를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대통령이 이미 탄핵된 상태에서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1월 초 미국을 방문해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돼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는 슬로건을 통해 ‘선제타격’부터 ‘비핵화-평화협정 교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일보 보도의 핵심은 김관진 당시 실장이 방미 기간 동안 평화체제 논의는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미국을 설득하려 했다는 것이다.

‘비핵화-평화협정’ 논의는 원래 중국의 안이다. 따라서 중국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사드 조기 배치 요구는 여기에 재를 뿌리려는 정책적 판단의 결과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10억 달러’를 언급하는 것 역시 이 당시의 우리 정부의 적극적 요구가 빌미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현재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이런 중요한 판단을 누가 내렸는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정책집행의 최고책임자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이다. 이런 판단과 행위 자체가 ‘대행’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더 문제는 그 ‘판단’이 정권이 바뀐 지금도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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