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선 듯하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내정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인사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을 돌파하는 과정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수석비서관 보좌관 회의에서 그간 제기된 야당의 비판에 대한 답을 내놨다. 요약하자면 인수위도 없는 짧은 시간 내에 공직 후보자 인선을 하다 보니 논란이 불가피했고 이후에는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정해 이에 따라 인선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애초 언급한 원칙에서 후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애초 일부 야당이 요구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 본인의 사과였다는 점을 보면 이 발언은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인사들엔 큰 문제가 없고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의 원칙을 훼손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같이 볼 것은 이날 국민의당이 이낙연 후보자 인준에 협조하기로 당론을 정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리라는 점은 이낙연 후보자가 호남 출신이고 전남지사를 역임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럼에도 국민의당이 그간 이낙연 후보자를 “의혹 종합선물세트”라는 등의 어휘까지 동원해 비판하며 각을 세운 것은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회 의석수와 이에 따른 인사청문위원회 구성을 보면 국민의당이 동의를 해야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이 가능한 상황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중심으로 국민의당을 설득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을 했고 이 점이 효과를 낸 정황이 명백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국민의당이 처한 정치적 딜레마의 성격은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지지기반 등을 고려하면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보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더불어민주당 2중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면 오히려 ‘통합론’이 강화될 수 있다. 그렇잖아도 동교동계 일부가 ‘회군론’을 제기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면서도 국회 내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면서 존재감을 키우는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 후보자 인준 협조로 입장을 정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다음 행보이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이낙연 후보자 인준에 ‘예외적’으로 협조하기로 했기 때문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나머지 후보자들, 즉 김상조 후보자와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 대립각을 더 세울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 재판관으로 복무하면서 시민군을 태운 버스 운전사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등의 전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문제까지 더하면 매듭은 쉽게 풀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김상조 후보자의 경우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의 중대성이 다소 낮다. 일부 언론이 아들 병역 과정에서의 특혜를 거론하고도 있으나 김상조 후보자는 이름이 알려진 교수였을 뿐이므로 구체적인 대가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낙마 사유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걸로 보인다. 김이수 후보자의 경우는 ‘호남민심’에 악영향을 줄만한 대목이 있지만 헌법재판소장직이 공석이 된 지 오래됐다는 점, 현행 법률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헌법재판관으로서 잔여 임기인 1년 반 정도만 직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제기에 힘이 실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강경화 후보자가 남는데, 최근 제기된 의혹의 성격을 고려하면 실제로 야당의 화력이 여기에 집중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경화 후보자에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은 위장전입, 증여세 늑장 납부, 큰딸의 주류수입 사업체 관련 문제 등이다. 개별 사안으로 보면 큰 비리는 아닌 것 같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이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 강경화 후보자의 자질 문제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강경화 후보자는 29일 그간 제기된 위장전입 논란에 대해 일부분을 해명했다. 2000년 당시 큰 딸을 이화여고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한 주소지의 전세권을 당시 이화여고 교장이 소유하고 있었고 이후에는 이화학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에 대해 “주소지에 누가 살고 소유주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애초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긴 것으로 청와대가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후보자 내정 당시 자신이 스위스 제네바로 출장을 나간 상태에서 잘못 알려진 바 있다고도 해명했다.

이 사건이 향후 과정에서 공방의 주요 대상이 될 수 있는 건 두 가지 점에서다. 첫째는 ‘거짓 해명’ 논란이다. 동아일보는 30일 지면에 당시 위장전입한 주소지가 이화여자외국어고 원어민 교사 숙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강경화 후보자는 “몰랐다”고 하지만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일 경우 이화학원의 묵인 없이 주소지 이전과 전학이 가능했을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야당들은 강경화 후보자가 두 번에 걸쳐 거짓해명을 했다고 공격할 것이다.

두 번째는 ‘특혜’ 논란이다. 위장전입 당시 강경화 후보자는 외교통상부 장관 보좌관이었다. 강경화 후보자는 위장전입 주소지 부동산을 “아는 은사께 주소지를 소개 받았다”고 했는데, 이런 일은 이화여고 출신 인물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야당들은 이 사건에 ‘이화학원 인맥’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를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인근 임시사무실에서 나와 취재진 앞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29일 제기된 새로운 의혹까지 더하면 상황은 더 난감해진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은 강경화 후보자의 큰딸이 강경화 후보자 유엔 재직 시절 부하 직원이었던 인물의 친인척으로부터 자본금 8000만원 중 6000만원을 투자받아 주류도입 도소매 회사를 차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강경화 후보자가 딸의 창업에 개입한 일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경향신문 등의 보도를 보면 딸에게 나머지 투자금 2000만원을 빌려준 정황이 언급되고 있다.

강경화 후보자의 증여세 늑장 납부 문제 역시도 자녀 문제와 연관돼있다는 사실을 보면 결국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공세가 어떻게 이뤄질지 불을 보듯 뻔히 알 수 있다. 강경화 후보자는 여성인권전문가이고 최초의 비고시출신 외교부 장관 후보자이며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을 깬다는 상징적 의미를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인사이다. 그러나 자녀 문제와 관련한 의혹 때문에 상황은 이런 장점을 부각시킬 수 없는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강경화 후보자가 의혹에 대해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성실하게 해명을 해야 이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가장 좋은 그림은 적격 부적격 의견이 병기된 수준에서 국회가 장관급 공직 후보자들의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는 것이다.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을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감당해야 하는 정치적 압력은 배가된다. 임명을 강행할 것이냐의 선택지를 눈앞에 두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국회 의견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하면 이후 추경 편성 등의 국면에서 국회와 대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시나리오보다는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임명을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사태가 여기까지 가기 전에 청와대가 국회를 설득할 묘수를 내놓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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