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첫 날은 밤늦게까지 바빴다. 오전 8시 경 이순진 국군 합참의장으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는 걸 시작으로 미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까지, 그야말로 숨 가쁜 일정이 이어졌다. 이 하루의 일정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처한 여러 어려움을 예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정치적 측면이다. 국정원장과 민정수석에 대한 인사 내정을 통해 정보기관 및 검찰 개혁 의지를 보여준 것도 중요하게 평가해야 겠지만, 무엇보다도 국회선진화법의 존재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필연적으로 다른 정당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당사를 직접 방문하면서 스킨십을 늘리는 행보를 통해 이런 의지를 보여줬다.

이낙연 전남지사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 역시 이런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지원 의원은 10일 국민의당 대표를 사퇴하기 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낙연 전남지사의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임중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손학규 전 의원도 이와 관련해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 국민의당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이 전폭적으로 협력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의당이 이낙연 총리 후보자 카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건 1차적으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입장에서 호남 출신 국무총리 탄생을 반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는 4선 의원 출신이기 때문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별 탈 없이 인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의 협력적 태도가 부각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협치’를 시도하고 있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 설정은 장기적으로 국민의당 소속 개별 의원들이 ‘여당화’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의당은 애초에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노선이나 정책적 견해의 차이로 갈라선 게 아니다. 개별 의원들의 공천 문제와 ‘안철수’라는 대권주자의 가능성이 핵심이었다. 이제 안철수 전 의원은 대선 패배로 당분간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상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의당이 강경한 대여투쟁 없는 상황에서 전열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왼쪽)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국민의당을 통합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날도 문재인 대통령은 박지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당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뿌리가 같은 정당”이라고 발언했다. 야당 국회의원의 삶은 나름대로는 고된 것이어서 이번 기회에 여당 소속이 되고자 하는 의원들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물론 과거의 제1야당 소속이 아니었던 인사들도 국민의당이 결합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당분간 국민의당은 ‘진로 논쟁’이라는 변수가 수면 아래로 잠겨있는 상태에서 상당한 내부적 진통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후 진로와 관련해 국민의당 앞에 놓인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일부 반대파를 남겨 놓더라도 더불어민주당으로 사실상 복귀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며 버티는 것이며 셋째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으니, 세 번째 시나리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바른정당의 입장이 중요하다. 바른정당도 똑같이 세 가지 선택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첫째는 자유한국당으로의 복귀, 둘째는 독자노선, 셋째는 국민의당과의 통합이다. 최소한 바른정당이 독자노선을 택한 상태로 남아 있기는 해야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 탈당파들의 복당을 사실상 보류해놓은 상태에서 이후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2018년 지방선거 시나리오를 예상해보면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나 지금 상태로 조직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는 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는 것보다는 국민의당이 ‘여당화’ 되는 게 더 낫다. 이러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눈앞에 놓여진 정치적 문제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일정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애물은 대북 문제다. 우리가 대선을 치르는 동안 주변국들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미국은 올 초까지 ‘선제타격론’을 거론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여 오다가 갑자기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그야말로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태도다. 일본은 연일 ‘한반도위기론’에 불을 지피며 유사시 한반도에 체류하고 있는 일본인의 대피 문제를 논의하겠다며 분위기를 띄우는 상태다.

가장 큰 문제는 김영삼 정권 시절 ‘통미봉남’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거다. 일본 언론들은 미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통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이 가능한 조건을 제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다면 정상회담을 미국에서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제안이다. 그러나 보도 내용이 사실일 경우 미국의 이러한 제안은 협상 과정에서 체제보장 즉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바꾸는 형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미국이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바꾸는 형태의 옵션까지도 고려하는 정황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갖춘 걸로 보인다. 한국일보가 지난 2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1월 방미 당시 미국이 앞서의 시나리오를 고려한 정황이 있고, 우리 정부가 이에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는 정황을 보도한 걸 봐도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서 탈피한 ‘최고의 압박과 개입’이란 이름의 새로운 대북 독트린에서도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기도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만일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협상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는 문제가 주한미군 철수이다. 이는 북한과 중국이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사안이고 트럼프 행정부는 사실상 비개입주의를 천명하고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축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 국군의 자주국방 확보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취임사에서 “자주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즉,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논의되고 결정될 가능성이 생긴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있는 거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했다. 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 앞으로 미국과의 소통과정에서 대북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충분한 입장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여타의 문제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이게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