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5차 TV 토론을 앞둔 28일 금요일, 보수 정당과 보수쪽 표에 기대고 있는 정당들 다시 말해서 사드 배치에 찬성하거나 적극 추진하자는 쪽들에게는 불이 떨어졌다. 이틀 전 새벽 군사작전처럼 기습 배치를 한 사드에 대해서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10억불의 비용을 요구할 거란 발언이 전해진 것이다. 사드를 빌미로 안보의식이 의심스럽다고 공격하던 보수 후보들로서는 꼼짝없이 역공세를 받아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됐고, 대응도 딱히 없는 상황이다.

대선 전 초기만 해도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미국에 배치하겠다는 말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발언을 해 다시 북풍 선거가 되나 싶었던 트럼프였는데, 선거전 막바지에 들어서는 오히려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폭탄 발언을 던진 것이다. 보수 후보들은 은근히 트럼프의 기행으로 몰고 가려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그럴 리도 없고, 잘 먹히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대선후보 5차 TV 토론 방송화면 갈무리

어쨌든 갑자기 터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앗 뜨거워라 하는 쪽들은 일단 표정관리가 힘들어 보였다. 사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것은 점잖은 것이 아니라 무능한 것이다. 당연히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보수 성향 후보들을 상대로 사드 비용에 대한 공세를 펼쳐 갔다.

그러나 갑자기 날아든 폭탄에 사실상 대처할 시간적 여유조차 부족했던 보수 후보들의 답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이 비용을 대기로 했다고 국방부가 그랬다는 대단히 유아적인 대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아직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한미 간의 사드 합의는 그러나 누구도 본 적이 없다.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후보 공히 합의를 근거로 대지만 그 누구도 합의문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크나큰 함정이자 오류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10억 불 운운에 대해서 합의를 근거로 사실 무근을 주장할 수 없으며, 오히려 트럼프의 발언으로 인하여 국방부의 발표에 대한 의심을 갖는 것이 합리적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드에 찬성한 후보들 누구도 그런 합리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이구동성 한미 간의 합의된 사항이라는 것만 반복했을 뿐이다.

대선후보 5차 TV 토론

심지어 프레시안에 기고한 송기호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사드 배치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합의는 없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유야무야 지나가 버리고 나중에 가서 미국 쪽에서 사드 비용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리게 된다면 약소국인 한국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반 관리도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이 한 말이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사드가 안보에 없으면 안 될 장비로 단정해버리면 협상할 지위마저 사라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무조건 국방부가 그랬다는 말 뒤에 숨는 것이 10억 달러, 1조 2천억 원의 방위비가 졸지에 늘어나게 된 상황에서의 대통령 후보들이 취할 태도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들어온 사드가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더 들어와야 전술적 규모를 갖춘다고 한다면 사드 하나로 인한 예산은 생각도 하기 싫은 규모로 커질 것이다.

백보 후퇴를 해서 트럼프의 발언이 실언이거나 협상으로 물릴 수 있는 희망이 남았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후보들이라면 아니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누구라도 만약 그렇지 않다는 가정 하에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상대국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리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자세로는 아무 것도 대비할 수 없다.

대선후보 5차 TV 토론

게다가 대통령 부재의 상태에서 새 대통령이 10여일 후면 나오는데 그새를 못 참고 기습적으로 배치를 완료해버린 것도 사실상 우방국으로서의 온당한 자세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라도 트럼프의 발언은 여러모로 의심스럽고 또 경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더 최악은 사드비용을 빌미로 더 곤란한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후보쯤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드 비용과 함께 FTA를 들고 나온 것을 그저 우연이라고 믿는다면 정말 암담할 뿐이다.

그런 합리적 경계나 대비 없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된다면 도대체 우리 국민들은 또 무슨 죄로 몇 조 원의 부담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로 선거에 뛰어들었다면 이래서는 곤란하다. 사실상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돈 달라고 하면 우리는 사드 거절하겠다고 미국 측에 으름장을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드 때문에 중국의 온갖 보복에 시달릴 대로 다 시달렸는데 이제 와서는 공짜가 아니라 수 조원의 돈까지 내놓으라는 미국에 이대로 끌려가야 하는 건가?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트위터에 “미군부대 안에서 미군이 운영하는 무기를 위해 땅 내주고 돈 뜯기고 이웃나라로부터 보복까지 받는 '호구' 노릇, 맨정신이나 맨입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사드 재협상'보다 '사드특검'이 더 절실해 보이네요”라고 현 상황을 꼬집었다. 이번 대선은 보궐선거이다. 5월에 해서 장미대선이 아니라 추운 겨울을 이겨낸 촛불시민들의 염원으로 일군 촛불대선이다. 대통령도 시민이 뽑을 것이면, 사드도 시민들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이다. 안보를 위해서는 예산이 얼마든 써야 한다. 그러나 쓰지 말아야 할 돈, 새나가는 돈을 없애는 것이 진짜 안보가 아니겠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