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을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나? 직권상정해서 날치기로 통과한 것은 위법이다.” (민주당 쪽 변호인)

“불법을 저지른 자가 불법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을 비난하고 정당화 하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한나라당 쪽 변호인)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이 직권으로 상정되던 2009년7월22일 상황에 대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또렷한 시각차이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미디어법과 관련한 여야 공방은 국회 안이 아닌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뤄졌으며,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던 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여야는 서로를 향해 ‘불법’ ‘위법’ 등을 언급하게 크게 대립했다.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가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 4당이 청구한 ‘미디어법 등 관련 권한쟁의 사건’에 대한 2차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공개변론은 재판관들이 청구인(야당 국회의원들)쪽과 피청구인(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국회부의장) 쪽에 질문을 한 뒤, 당사자들이 이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가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 4당이 청구한 ‘미디어법 등 관련 권한쟁의 사건’에 대한 2차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
민주당 의원들, 심의·표결권 포기?

이날 공개변론에서 가장 큰 쟁점은 언론법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의원의 권리인 ‘심의·표결권’을 포기했냐는 부분이었다.

김희옥 재판관의 ‘피청구인(한나라당)측에서는 근본적으로 청구인(민주당)들이 의사 진행을 방해했고, 의안을 심의할 권한은 행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심의 결과를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조건 의사 진행을 막을 것 아니라 법안 과정에 참가해 다수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민주당 쪽 대리인은 “심의·표결권은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았다”라며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심의·표결권은 국회의원의 책무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국회 구성원을 상대로 제안 설명을 배제하고, 토론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 부분은 여야를 불문하고 의결 과정상 중대한 하자이기에 문제삼을 수 있다. 질서유지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장은 평온한 상태에서 표결에 부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박재승 변호사도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했다”며 “국회의장이 의사진행권(직무대행)을 넘길 요건이 아니었고, 직권상정할 사안이 아니었는데도 직권상정했다. 적법한 과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나라당 쪽 대리인인 김연호 변호사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귀속된 권리를 본인이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심의·표결권 포기라고 인정해야 한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단순하게 심의·표결에 불참한 것이 아니라 단상으로 돌진하고 좌석을 검거하는 등 투표 방해를 통해 적극적으로 투표 방해 행위를 했다”고 반박했다.

김치중 변호사도 “표결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권한과 법률상 이익을 포기한 사람이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할 자격이 있냐”며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의 표결 행위를 방해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정도라면 (권한쟁의심판에 대한)청구인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쪽이 심의·표결권 포기에 이어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한 적격성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민주당 쪽 김종률 변호사는 “국회 본회의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던 것과 관련해서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외에 풀 방법이 없다”고 다시 반박했다.

7월22일 당일,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개정안 수정안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원안에 대해 제대로 토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직권상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무리하게 직권상정하려 할 때 투표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고, 참여해서 반대 내지 기권 할 수도 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심의표결권을 포기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동흡 재판관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가회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 4당이 청구한 ‘미디어법 등 관련 권한쟁의 사건’에 대한 2차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
한나라당 “민주당= 불법”

이날 최후변론에서 한나라당 쪽 대리인들은 작심한 듯 민주당을 향해 불법, 위법, 조직적인 투표 방해, 대리투표 의혹 등을 주장하며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기각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청구인들은 ‘대리투표’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국회의원이 재석버튼을 누른 뒤 찬성을 눌렀는데 다른 국회의원이 취소 버튼을 누르고 반대로 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어느 국회의원이 다시 원상태로 돌린 것이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정당방위라는 게 있다. 불법을 바로잡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강훈 변호사)

“청구인들은 국회 소수파로서 다수결 원칙을 파괴했다. 소수의 폭력과 투표 방해 행위, 투표장 진입 방해 등을 하다가 법안이 통과되자 헌법재판소에 와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하는 듯 권한쟁의심판 청구했음은 물론 130만 서명운동 벌여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는 헌재에 대한 압박행위로 본다.” (김연호 변호사)

반면, 민주당 쪽 박재승 변호사는 “이 사건은 국가의 입법권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전 국민이 피해자인 사건”이라며 “이 재판은 국회의 입법권 행사의 위법성에 관한 재판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의사 절차상의 정의에 합당한 것인지 판단을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리투표는 중대한 범죄이기에 당연히 무효”라고 덧붙였다.

‘대리투표’ 동영상 주인공 여상규 의원, 공개변론 참여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언론관련법 상정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을 대신해 ‘찬성’을 누른 모습이 잡힌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은 이날 공개변론에 참여해, 언론노조 동영상에 문제를 제기했다. (관련기사 ▷ ‘대리투표’ 한나라당 여상규, 증거 나왔다)

그는 “민주당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동영상은 대단히 의문스럽게도 25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유포한 동영상으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공개 동영상’이라는 이유로 인터넷 언론 등에 돌아다니고 있다”며 “민주당에서 대리투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물리적으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국회의장을 방해했다는 것은 동영상에 잘 나와있다”고 주장했다. 여상규 의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전국언론노동조합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적정한 시기에 추후 정해서 선고 기일을 통지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미디어관련법의 효력이 발생하는 오는 11월 이전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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