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과 28일, 일간지를 장악한 기사는 ‘G20 한국 개최’였다. 조선중앙이 찬양 분위기라면 동아는 비교적 간단하게 다뤘고, 한겨레는 ‘의미와 한계’를 짚으며 냉정을 유지했다. G20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시위 소식을 짧게라도 전한 건 경향신문 뿐이었다.

피츠버그에서 열린 제3차 G20 정상회의를 다룬 5대 일간지의 사실 보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츠버그회의 합의내용인 △금융기관 규제강화 △신흥국에 IMF 투표권 5% 확대 △출구전략 시행 등을 소개하고, 한국이 5차 G20 정상회의 개최지로 지명됐다는 사실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G8의 G20으로의 확대가 갖는 의미와 이명박 대통령의 소감 등을 다뤘다.

G20 반세계화 소식 담은 건 경향신문 뿐

중앙일보가 가장 많은 양을 쏟아냈다. 중알일보는 1면 외에 ‘국제질서 따라가던 한국, 앞으로는 만들어간다’(26일자 3면), ‘G20 TF팀 만들라, MB 지시 열달 만에 결실’(26일자 4,5,6면)에 이어 ‘MB 귀국 특별기서 만세 삼창한 까닭은’(28일자 1면), ‘G14 구상하던 프랑스...한국 유치 물 건너갈 뻔’(28일자 4,5면) ‘G20 결속력 개질 땐 또 하나의 talk shop 될 수도’(6면) ‘한국도 세계 경제 룰 제정의 주역됐다’(28일자 8면)를 실었다.

조선일보의 선동이 가장 인상적이다. 조선일보는 양일에 걸쳐 1면 외에 ‘세계 GDP 85% 20개국 정상들, 처음으로 한국에 모인다’(26일자 4면), ‘G7 30년 천하 뒤안길로...이제 신글로벌경제는 G20이다’(26일자 5면)에서 ‘88올림픽 때처럼...G20을 선진국 진입 계기로’ ‘세계 VIP등 2만명 집결, 경제효과 6000억 넘어’(28일자 6면)에 걸쳐 전변 보도했다. 헤드라인만 읽어도 ‘G20=선진국’ 효과가 톡톡히 각인된다.

‘G20=선진국’ 효과를 선명하게 표현한 조선일보의 ‘88올림픽 때처럼...G20을 선진국 진입 계기로’는 G20을 ‘선진국 진입 계기’로 삼자는 것인데, G20을 잘 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유도한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보도한 ‘선진국 진입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고 이동관 대변인이 전한 “내년 11월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계기로 법질서, 정치문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올림으로써 국격을 업그래이드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선진국의 지표가 ‘법질서, 정치문화, 도덕적 수준’이라는 건데 기사 어느 곳에서도 ‘선진국 진입’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함께 배치한 기사 ‘20000명 집결, 경제효과 6000억’은 직접적인 경제 기대효과와 간접적이고 중장기적 효과를 서술하고 있으나, 손에 잡히는 선진국 진입의 내용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2005년 부산 APEC 당시 4억5176만 달러의 경제적 기대치(KIEP 추정)를 비교하는데, KIEP가 워낙 조작의 명수인지라 곧대로 시뢰할 수 없는 데다, 4년 전 APEC이 ‘선진국 진입 계기’를 마련해주지도 않았다.

한겨레는 이번 3차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불균형’이 의제로 떠오른 배경을 확인하는 한편 데이빗 넬슨 미 국무부 차관보의 말을 빌어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이 단시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지 않았다. 지난 2차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1조2천억 달러의 빈곤국 지원기금 마련 및 내년까지 경기부양 규모 5억 달러 확대 이행 실적 검토가 지켜지지 않은 점을 들어 ‘말뿐인 합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 G20이 열리는 동안 반세계화 운동 소식을 보도한 건 경향신문 뿐이었다. 사진/ 9월26일자 경향신문

피츠버그 정상회의, ‘지속불가능한 성장’의 어두운 그림자

정상회의 합의문에 담긴 △금융기관 규제강화 △신흥국에 IMF 투표권 5% 확대 △출구전략 시행 검토 등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이 설정된 의제였기는 하지만 구속력 있는 조치를 수반하지는 않았다.

‘금융기관 규제강화’ 부분으로는 미국이 제안한 ‘금융자본의 자기자본비율 확대’와 유럽이 제안한 ‘금융기관의 고액 연봉 제한’ 추진을 담았다. 두 합의 내용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금융자본의 이동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IMF는 세계은행 등과 함께 개발도상국에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이들 국제기구들은 1980년대 이후 외환 부족과 부채에 시달리거나 외환위기에 빠진 개발도상국에게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긴축정책, 공기업 사유화, 금융과 무역 자유화, 노동 유연화 등을 요구했다. 이처럼 IMF와 세계은행이 주도해온 자본의 세계화,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이 지배하는 ‘지속불가능한 성장’(unsustainable growth) 체제로 호명된다. IMF 선진국 지분 60% 중 최소 5%를 개발도상국에 넘긴다고 해서 IMF가 해온 본연의 기능 변화를 기대한다는 건 난망한 일이다.

속사정이야 어떠하든 G20 한국 개최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은 ‘만세 삼창’을, 사공일 G20기획조정위원장은 ‘언빌리버블’을 연발했다.

‘지구촌 유지(有志) 그룹 좌장이 된 한국’. 사공일 G20기획조정위원장은 중앙일보 9월28일자 ‘시론’을 통해 한국이 2010년 G20의 의장국으로 지명된데 대해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외교사에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된 것만이 아니라 세계경제 협력의 장이 바뀌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사공일 위원장은 “G20을 중심으로 지구촌의 새로운 거버넌스체제가 출범했고, 우리 나라가 내년에 G20의 좌장으로서 지구촌의 경제 관련 중대사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주도하게 됐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2005년 부산APEC의 트라우마, 2010년에 재연되나

사공일 위원장의 호언처럼 G20이 새로운 거버넌스로 자리잡을 것인지, 한국이 경제 해결책 모색을 주도할 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분명한 건 이명박 대통령과 사공일 위원장이 G20을 유치함으로써 2010년에 대한민국 시민들은 부산 APEC 때 당했던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는 사실이다. 부산 회의장을 컨테이너로 둘러막았던 당시 부산 경찰청장은 어청수 씨였고,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 2009년 1월 용산참사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G20이 진행되는 동안 5대 일간지에 G20에 저항하는 반세계화 운동 소식을 단신으로나마 담은 신문이 경향신문 하나 밖에 없었다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한겨레는 지난 21일 짧게 다루긴 했다.) APEC 당시 회의장 풍경의 면면과 참가국 회원들이 먹는 것, 입는 것까지 자세히 소개했던 언론이지만 컨테이너 앞에서 물대포를 맞아가며 싸웠던 APEC 반대 반세계화 동원투쟁 소식은 사회면 기사로 간단간단하게 다뤘을 뿐이었다.

지난 4월 런던에서 개최된 제2차 정상회의에서 신문판매상이었던 톰린슨이 복부 출혈로 사망했다. 톰린슨은 G20 반대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정강이를 맞고 등을 심하게 떼밀려 앞으로 넘어진 비디오 영상의 주인공이었다. 3차 정상회의가 진행된 피츠버그에는 1만 명 이상의 반세계화 동원투쟁이 벌어졌다. G20 이전 G8, G7 회의 때에도 수 만의 시위대가 모여 '자본의 세계화'에 저항하다 사상을 입거나 체포당하곤 했던 바다.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대부분 없던 일이었고 어쩌다 겨우 단신 처리됐다.

G20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서둘러 제주도 유치를 희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을 치르기 위해서는 감내라도 하겠다는듯 일찌감치 ‘법질서, 정치문화, 도덕적 수준’을 거론하고 나섰다. APEC과 한미FTA 이후 손을 놓다시피 한 한국의 반세계화운동에 새로운 물꼬가 터질 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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