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송인서적과 일원화 거래를 유지해온 군소 출판사들과 중소형 서점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출판노동자들의 피해가 심각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출판사들이 이번 사태로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출판업계 2위 출판도매업체 송인서적이 지난 3일 최종부도처리 되면서 대형서점을 제외한 수도권과 지방의 중소형 서점이나 중소형 출판사 2000여곳의 연쇄 파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송인서적으로 거래를 일원화 한 500여곳의 군소 출판사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송인서적 채권단이 파악한 송인서적의 부도 규모는 총 688억원으로 세부 내역은 부도어음 100억원, 출판사 매입채무 277억원, 서점잔고 212억원, 은행부채 59억원, 도서재고 40억원 등이다.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출판업계 대형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지난 2일 1차 부도를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판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출판업계에서는 송인서적이 발행한 전체 어음 규모가 2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인서적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 출판사들이 송인서적에 공급한 서적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 사진은 5일 송인서적의 하역장 모습. 2017.1.5 andphotodo@yna.co.kr(끝)

출판계·정부가 내놓은 대책 "언 발에 오줌누기식"

한국출판인회의는 우선 4일 정식 채권단을 구성, 우선 채권과 재고를 넘겨받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역시 송인서적 관련 피해업체에 저리로 긴급 자금을 대출해주기로 결정했다. 또 16일 송인서적 부도로 피해를 입은 출판계에 대해 ▲피해 출판사의 지속적 창작활동 지원(20억 원) ▲피해 출판사 도서 구매(10억 원) ▲피해업체 실태조사 지원 및 범정부·지자체의 피해 출판사 도서구매 유도 등 추가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출판노조협의회(출노협)은 이런 대책들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출노협은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이 사태의 1차적 피해자인 100여명에 달하는 송인서적 노동자들의 실직과 퇴직금 마련, 곧 몰아닥칠 출판노동자들의 고용위협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더불어 사태 해결을 넘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독서 인프라 확대 및 출판생태계 상생 등 장기적인 체질 개선 계획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출노협은 ▲피해 출판사들로 구성된 채권단을 통해 송인서적이 발행한 어음 직접 매입 ▲출판노동자들에 대한 인원감축이나 작업비 체불등 노동권 후퇴를 강요하지 않는 조건의 공적 자금 지원 ▲보편적인 독서인프라 확대 및 출판생태계 상생을 위한 정책 시행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출판노동자들, 임금 절반 삭감·작업비 체불 통보받아

실제로 출판업계에서는 출판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삭감 및 외주 인력에 대한 작업비 체불 등이 단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지부장 박세중)에 따르면, 최근 한 출판사는 출판 디자인 업무 등을 담당하는 외주 인력들에게 작업비를 약속한 기한 내에 못 주겠다고 통보했다. 또 송인서적 부도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한 출판사는 직원들에게 9월부터 임금 절반을 삭감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출노협이 출판노동자 5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년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체의 45.5%가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사이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2천만 원 미만의 연봉을 받는 인원도 8.8%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측이 통보한 외주 인력 작업비 체불과 출판노동자 임금 절반 삭감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가하는 꼴이라는 게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의 지적이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이만재 사무국장은 “출판사들이 ‘송인서적 사태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대놓고 출판노동자들에게 임금 50% 삭감을 통보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평소에도 있어왔다”며 “출판계 임금 평균 수준이 월 200만원도 안 되는 상황인데 50% 삭감은 정말 큰 타격이다. 이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출판노동자들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사무국장은 “출판계 내부에서 문제가 생겨도 공개적으로 나서려는 분들은 10명 중 1명 정도 뿐”이라며 “공개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고 문제제기하면 출판계 내에 다시 발 딛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구인정보 사이트에서 출판노동자들의 입사율과 퇴사율을 보면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출판노조협의회는 현재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촉발된 중소형 서점들과 출판노동자들의 피해 규모와 상황을 듣기 위해 간담회를 준비 중이다. 출노협 박세중 의장은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후 대형 출판사들이 앓는 소리를 하지만 대형 출판사 보다는 중소형 서점들과 출판노동자들의 피해가 크다. 중소형 서점들은 송인서적이 없어지면 책을 받을 곳이 없다”며 “중소형 지역서점들과 함께 출판 약자들이 처한 사태를 알리려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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