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서울광장을 개방하고 편의시설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광장 개방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당초 서울시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18일 오후 4시까지만 해도 서울광장 개방 여부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도 이날 오후 전경 11개 중대 800여명으로 서울광장과 덕수궁 주변을 봉쇄하는가 하면, 분향소 설치를 위해 서울광장에 진입하려는 일부 시민들을 제지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4시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에 따른 광장 사용여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장례와 관련한 광장사용 여부는 공식 장의위원회가 구성된 뒤 사용방향이 결정되면 장례가 엄숙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식 장의위원회가 구성된 뒤 광장 사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오후 7시쯤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광장에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 19일 오전 9시경부터는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가능할 것”이라며 분향소 운영과 시민의 조문 편의를 취한 조치를 밝혔다. 공식 장의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임에도 앞서 밝힌 서울시의 입장을 뒤집어 광장을 개방하는 등 적극적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개방, 분향소 설치 △광장 전체를 조문 공간으로 활용 △분향소 주변에 편의 공간 마련 △청사 전면부 전광판 가동 중지와 광복절 모뉴먼트를 추모 분위기에 맞게 교체하거나 다른 시설로 대체 △서울시 전역에 분향소 추가 설치 및 음용수, 화장실, 의료 및 소방시설 등 편의시설 지원 △분향소에 서울시 전담 직원을 배치해 24시간 지원근무 체제 유지 등의 조치를 밝혔다.

서울시는 또 오늘(19일)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천막, 테이블, 의자 설치와 더불어 조문을 하는 시민들이 햇빛을 받지 않도록 캐노피 천막을 설치했으며, 오늘부터 서울시 직원 120명이 24시간 상주하면서 시민 조문 안내 및 질서 유지를 한다고 밝혔다.

▲ 서울광장에 설치된 김대중 전 대통령 공식 분향소 ⓒ서울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도 적극적이다.

오 시장은 오늘 오전 9시와 10시 두 차례 간부회의를 소집, 시청사 전면부에 근조 띠 형태의 별도 공간을 설치해 조문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영정과 국화꽃, 입 부분 등 분향소가 비에 젖지 않도록 조치하고, 광장에도 추가로 천막(그늘막)을 설치하는 등 시민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또 부시장단 뿐만 아니라 실국장들이 서울광장 분향소 현장에 직접 나가 시민 편의와 운영상황 등을 수시로 파악해 미흡한 부분들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전 기할 것 등을 지시했다.

서울시의 이러한 변화는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추모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는 태도로 변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장의 절차를 진행하라”는 입장을 밝힌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18일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관계 장관이 모인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장의 절차를 진행하라”며 “장의 기간 중 공직자들이 경건하게 애도하면서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고, 추모행사가 온 국민과 함께 엄숙하고 질서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에서 만전을 기하라”고 밝힌 바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광장의 모습. ⓒ서울시
“노 전 대통령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서울시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이미 언론 보도에 나왔듯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협의를 해 광장을 개방하게 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 때와 (서울광장 개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운영을 똑같은 기준으로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하루 전날인 5월28일 경찰버스로 봉쇄되어 있는 서울광장의 모습. ⓒ미디어스
지난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서울광장은 경찰버스로 봉쇄됐다. 노 전 대통령 유족측과 시민사회단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움직임을 위해 서울광장을 열 것을 촉구했으나 서울시는 광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추모문화제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결국, 광장은 이후에도 계속 봉쇄되다가 영결식 당일인 29일 아침 노제를 위해 개방됐고, 며칠 뒤 다시 봉쇄됐다.

이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광장을 봉쇄하면서 너무나 큰 사회적 비난을 초래한 적이 있었기에, 서울시가 이번에도 광장을 봉쇄할 경우 범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광장을 열게 된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광장을 봉쇄한 것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번에 광장을 열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장에서 추모제를 하든, 집회를 하든, 공연을 하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야지 정부와 서울시가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허락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이번 광장 개방을 계기로 광장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서울광장 개방을 비롯한 적극적인 조치에 대한 네티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송고된 관련 기사 <서울광장 김前대통령 추모 공간으로 개방>을 보면 네티즌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광장을 개방하지 않은 서울시가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광장을 개방하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것을 비난했다.

“고인이 되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개방을 안 한 시청 앞 광장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개방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물론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전엔 왜 쌍수를 들고 반대를 했었는지”

“개방하고 안하고의 기준은 도대체 뭐니?”

다음에 송고된 <시청광장에 설치되는 분향소>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찰력, 서울시가 나서서 별의별 이유로 막더니 이번엔 가능한가? 스스로가 스스로의 모순을 보여주는군… 이번에도 꼬마가 촛불 들고 인도 지나가면 불법이라고 막아서라”

“노무현 전 대통령때는 시청근처에서 임시분향소도 차리지 못하게 했으면서, 역시 그분은 자살 당하신 것이였나보다. 아무튼 김대중 전 대통령님 분향소는 시청에 설치하게 해서 다행이다”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처럼 경찰에서 버스로 아늑하게 만들어 줄거냐? 영정차 운전사도 교통방해죄로 구속할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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