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최대 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첫 회의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근행)의 강한 반발 가운데 마무리됐다. 일부 이사들은 MBC 노조의 반발을 의식한 듯 노조원들을 피해 일찌감치 회의장에 도착했으며, 떠날 때에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앞서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는 지난 7일 한나라당측 이사로 김우룡 한양대 석좌교수,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차기환 변호사,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남찬순 관훈클럽 총무,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등 6명을, 민주당쪽 이사로 고진 전 목포MBC 사장, 정상모 전 MBC 해설위원, 한상혁 변호사 등 3명을 임명했다.

▲ MBC노조원들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일부 이사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방문진 이사들은 1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6층 방문진 회의실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김우룡 이사를 이사장으로 호선했으며 이후 이사회 일정 등을 논의했다.

이사들의 방문진 ‘입성’은 순탄하지 않았다.

‘보도가 편파적이다, 불공정하다’ ‘민영화는 피할 수 없다’는 등 MBC에 대한 노골적 발언을 해왔던 일부 뉴라이트쪽 인사들이 이사로 선임된 것에 대해 “공영방송 MBC를 사수하자”고 나선 MBC노조는 이날 이사회 시작 한 시간 전인 오전 10시부터 방문진 건물 앞에서 일부 이사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노조원들은 한나라당 쪽 추천 이사들의 모습이 보일 때 마다 “MBC 장악음모 투쟁으로 막아내자” “공영방송 MBC에 뉴라이트 웬말이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원들은 김광동 이사가 도착하자 “사퇴하라”고 외치며 김 이사의 출입을 저지했고, 사복경찰들이 이를 다시 저지, 물리적으로 큰 충돌이 일었다. 노조원들이 가장 크게 기대(?)하던 김우룡 이사장과 최홍재 이사는 노조원들이 손팻말 시위를 시작하기 전인 오전 9시경 방문진에 도착하는 부지런함을 보여 다행히 수모(?)를 면하기도 했다.

▲ 김광동 이사가 노조원들의 저지를 뚫고 사복경찰의 호위 아래 방문진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송선영
이날 방문진 주변에는 영등포경찰서 소속 100여명이 넘는 경찰 병력이 동원됐으며, 이사회가 열리는 방문진 6층을 비롯한 곳곳에 사복경찰이 배치됐다. 이에 대해 방문진 관계자는 “이사회가 열리는 날에 경찰 관계자들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으며, 이근행 본부장도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방문진 회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비난했다.

이사회가 끝난 직후 김우룡 이사장은 이사장이 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MBC노조의 손팻말 시위에 대해서는 “피켓도 의사 표현의 수단”이라며 “존중한다”고 말했다.

김우룡 이사장, 김광동 이사, 최홍재 이사 등 뉴라이트 쪽 이사들은 방문진을 빠져 나가는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이들이 타고 있던 차량을 향해 “독재정권 찬양하는 김광동은 자격없다” “공영방송 팔아먹는 김우룡은 사퇴하라” “정권의 홍위병 최홍재는 물러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며 사퇴할 것을 종용했고, 경찰 병력이 노조원들을 다시 저지해 이 과정에서 큰 충돌이 일었다.

▲ MBC 방문진 이사들이 10일 오전 11시 임시 이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송선영

이근행 본부장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이들이 방문진 이사가 되었기에 (앞으로)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것이고, (이들은) 우파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할 것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간섭이 있을 것이고 경영진에 암묵적 압력을 행사해 낙하산 사장을 투입하는 등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굉장히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민들에게 MBC 상황을 널리 알리고, 시민사회와 연대해 투쟁을 강화하겠다. 사퇴 할 수밖에 없도록 개인적인 부적격 사유를 공개할 것이다.”

MBC내부에서도 일부 이사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MBC기자회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고 공영방송 MBC를 지키려는 사명감 있는 인사를 원한다”며 “정권의 나팔수가 되려는 인사는 더 망신 당하기 전에 즉각 방문진 이사직을 사퇴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MBC 카메라맨협회와 보도영상 협의회, 미술인협회도 성명을 통해 “방송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방송언론 장악이라는 검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호들갑 떠는 귀머거리 자객들에 불과한 이번 방문진 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 MBC노조원들이 김우룡 이사장의 차량을 막아선 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송선영

“열정적으로 일 할 생각”이라는 김우룡 이사장의 말에 대해 한 MBC 관계자는 “열정적으로 MBC 민영화를 시키겠다는 거냐”고 일갈했다. 오늘 임시 이사회를 시작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한 방문진이 MBC 내부 구성원과 언론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한편, 김우룡 이사장은 오는 13일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열어 향후 방문진 운영에 관한 계획 등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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