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의 유료방송 발전방안이 표류하고 있다. 미래부는 시장의 불확실성 최소화, 산업성장의 모멘텀 마련, 사업자의 공적책무 제고를 유료방송 발전방안 추진배경으로 제시했다. 나아가 허가체계 완화, 소유∙겸영규제 완화, 사업권역 개편, 혁신서비스 촉진을 통한 산업적 성장기반 조성, 결합상품 개선과 대가분쟁 조정기능 강화를 통한 공정경쟁 환경조성, 케이블의 디지털전환, 공적책무 강화 등을 통한 시청자 후생제고를 세부방안으로 설정했다.

미래부의 유료방송 발전방안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사업권역 개편방안에 집중됐다. 미래부는 사업 허가권을 법인 단위로 부여하여 전국단위 케이블SO를 허가하고, 디지털전환 완료 시점 또는 2020년 상반기에 권역제한을 폐지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사업자들은 사업권역이 폐지될 경우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예상하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업권역 폐지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미래부가 사업권역 폐지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 무산이 직접적인 계기라고 생각된다. 당시 공정위는 사업권역 단위로 시장을 획정하여 경쟁제한성을 판단하였고, 그 결과 두 회사의 합병은 무산되었다. 이에 미래부는 사업권역 규제가 인수합병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하여 아예 사업권역을 폐지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을 잡은 것 같다.

지난 11월 9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유료방송 발전방안 제2차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정부·학계·산업계 관계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그러나 사업권역 폐지를 통한 인수합병 활성화가 유료방송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안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심화될 경우,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경쟁력이 저하된 사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권투경기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서로 다른 체급의 권투선수를 링 위에 올려 경기하게 만든 다음, 낮은 체급의 선수에게 경쟁력이 없으니 링을 나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링을 내려가야 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이런 경기가 공정하다고 생각할 리 없다.

IPTV가 처음 도입될 당시부터 케이블SO는 시장지배력 전이를 우려했다. 거대 통신사가 IPTV사업에 진입한다는 점에서, 케이블SO는 공정경쟁 환경조성을 위해 사업부문 분리, 회계분리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체로 수용되지 않았고, 그 결과 IPTV는 빠른 성장을 거듭하며 유료방송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래부가 현 시점에서 취해야 하는 정책은 사업권역 폐지를 통해 IPTV가 유료방송시장을 재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SO와 IPTV사이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서비스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시장의 본질은 경쟁이다. 경쟁이 생산, 분배, 소비의 효율성을 담보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방송시장 역시 시장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다만, 방송은 일반 시장과 달리 정신적 가치가 담겨 있는 상품(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측면에서 방송은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해야 하고, 부족한 재원은 수신료나 제한적 경쟁을 통해 보완되어 왔다.

그러나 방송미디어의 증가, 광고시장 및 가입자시장 포화로 방송사는 공익보다 수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특히 가입자 시장에서 케이블SO는 SO간 인수합병, 통신시장 진출 등으로 대응해 왔지만, IPTV를 앞세운 통신사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결합상품에서 찾을 수 있다. 결합상품은 소비자에게 요금인하, 사업자에게 마케팅비용 절감 등의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사업자의 결합상품 구성능력 차이는 지배력 전이 등의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IPTV사업자가 유료방송시장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유통망과 이동전화 시장지배력이 경쟁시장인 유료방송시장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래부가 금번 유료방송 발전방안에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사업권역 개편이 아니라 공정경쟁 환경조성과 혁신 서비스 촉진이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미래부가 지금까지 공정경쟁 환경조성에 관심이 없었다는 비판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공정경쟁 환경조성에 더 중점을 둬야 것이다. 융합으로 인해 각기 다른 시장에 존재하던 사업자들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특히 가입자 규모, 유통망, 마케팅 역량 등이 시장경쟁력을 좌우하는 네트워크 시장에서, 정부는 결합상품, 대가 산정,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 등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여 서비스 중심의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나아가 유료방송시장에서 서비스 경쟁은 상품구성, 요금, 콘텐츠 차별성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상품구성, 콘텐츠는 대체로 유사하기 때문에 저가요금 중심의 경쟁이 이뤄져 왔다. 따라서 미래부는 유료방송사업자가 보다 다양한 상품과 요금수준을 구성하고, 콘텐츠와 혁신 서비스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유료방송 발전방안의 초점을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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