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 언론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의해 지난 1988년 12월 설립된 방문진은 현재까지 모두 8번의 이사진 교체가 있었지만 방문진 교체가 언론계 안팎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9명 이사 모집 공고에 119명이나 지원했다는 점도 이를 잘 나타낸다.

현재 MBC 내부에서는 방문진 이사로 거론되는 인물 중 상당수가 그동안 MBC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던 보수쪽 인사라는 점과, 방문진이 이들로 구성될 경우 MBC가 가지고 있는 공영성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비롯해 ‘이사진 교체로 MBC 민영화의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31일 오전 회의를 통해 총 119명의 지원자 가운데 모두 아홉 명의 이사를 결정한다. 그러나 방통위가 이사를 발표하기도 전인 지난 27일, 방문진 이사에 지원했던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가 사전 이사 내정 의혹을 제기하며 후보 신청을 자진 철회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언론계에서 소문으로만 돌았던 ‘내정설’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으로 나오자, ‘방통위가 미리 이사를 선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더욱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 방문진 이사 교체와 ‘언론 장악 시나리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언론계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지난해 초, 언론 유관기관에 잇따라 대통령 특보 출신 등이 사장으로 임명돼 ‘낙하산 논란’이 일었고, 검찰의 MBC <PD수첩>에 대한 수사로 ‘언론탄압’이라는 비난이 확산됐다. 또 지난해 8월 KBS 이사회는 당시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 안을 의결해 현 이병순 사장이 취임했으며,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했던 YTN노조원 6명이 해고돼 과거 언론통폐합 이후 ‘최다 언론인 해고’라는 점에서 비난이 거셌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 한나라당은 신문법, 방송법 등을 비롯한 언론 관련 7개 법안을 마련, 신문과 방송의 겸영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홍보하고 나섰으며,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두차례 총파업으로 이를 저지한 바 있다. 언론노조의 3번째 총파업 기간 중인 지난 22일,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은 대리투표와 재투표 논란을 떠안은 채 직권으로 상정됐다.

낙하산 사장 임명, 언론인 해임과 해고, 제작진 수사 착수, 언론관련법 통과 등 이처럼 언론인들이 우려했던 일명 ‘언론 장악 시나리오’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언론 장악 시나리오’ 한 편에는 늘 MBC가 있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쪽 인사들은 지난해부터 수없이 “MBC는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좌파 방송”이라며 민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이에 지난해부터 언론계 안팎에서는 “한나라당이 언론관련법을 통과시키고, 그 이후에 방문진 이사를 교체해 MBC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고, 이후 공영방송법 개정 등을 통해 MBC 민영화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현재 방문진 이사로 거론되고 있는 이들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여당 측 위원장을 맡았던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재교 인하대 교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등이다. 이들은 그동안 MBC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보수 쪽 인사라는 점에서, 이들이 이사로 선임될 경우 그들의 입맛에 맞게 MBC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언론 장악 시나리오’에 대한 언론인들의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 또한 크다.

◇ 거론되는 이들이 방문진 이사 된다면?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미디어스
MBC 관계자들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이들이 방문진 이사가 된다면 MBC는 지금 가지고 있는 공영방송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기 힘들 것’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영진을 선임할 수 있는 방문진 이사가 된다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하지 않는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교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나아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쉽게 작용해 보도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정치적인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근행 언론노조 MBC 본부장은 “MBC를 향한 우파들의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MBC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방문진에 들어오려 하고,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방문진에 지원했다고 공언한 사람도 있다”며 “이러한 사람들이 이사로 선임된다면 지금까지 MBC가 했던 방송과 보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야말로 정치적 간섭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MBC노조 관계자도 “MBC에 대해 ‘좌파’라며 감정적으로 적대적 입장을 보였던 분들이기에 그분들이 MBC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걱정된다”며 “방문진은 실질적으로 경영에 관여해서는 안 되지만 그 분들이 (경영 등 전반에 대해) 요구하고 휘두를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다. 거론되었던 분들이 이사로 안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MBC 보도국 소속 모 기자도 “이러한 사람들이 이사가 되면 아무래도 MBC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보수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청와대나 한나라당의 입김이 전해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과정을 둘러싸고 내부와 상당한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MBC에 대한 민영화를 생각하기 이전에 당장 MBC가 받게 될 영향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방문진 개편으로 보수쪽 인사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MBC 민영화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으나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현재 방문진과 정수장학회가 각각 70%,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공영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광고에 의존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30%의 지분을 해결해 MBC 민영화를 추진할 수도 있지만, 정수장학회의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이 복잡해 당장 MBC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재투표 논란으로 얼룩진 방송법이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신문과 대기업의 지분 소유 한도를 10%로 정한 것은 향후 MBC민영화 수순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MBC 내부의 강한 반발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과 관련해 MBC내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MBC노조는 ‘이사 내정설’에 대한 구체적 증언이 공개된 직후인 지난 28일 성명을 내어 “공모는 사기극이었다. 설마 했지만 사실이었다”며 “정권은 공영방송 MBC를 장악하기 위한 시나리오에 따라, 방문진 이사추천과정에서부터 막후에서 적극 개입해 왔고, 이사장도 밀실에서 내정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MBC노조는 지난 29일 낸 성명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시나리오대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여당 측 위원장을 맡았던 김우룡 전 외국어대 교수가 위원장에 낙점되고, 근거 없이 MBC를 극좌파, 빨갱이로 몰아온 인사들이 이사진에 다수 포진되면 MBC의 앞날은 어찌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며 “‘중도-실용’을 외치는 정권이 공공연하게 반MBC를 외쳐온 극우인사들을 MBC 점령군으로 보낸다면, ‘미디어 법 다음은 MBC다’라는 언론 장악 의도를 스스로 입증하고 마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근행 본부장도 “MBC내부는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에서 입장을 냈고 경고를 했기 때문에 선임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 사람들이 선임 된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일 것”이라며 “MBC의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 공영방송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일(31일) 방문진 이사 발표를 시작으로 공영방송사의 이사진 교체가 본격화 된다. KBS는 오는 8월31일 이사가 교체되며, EBS는 오는 9월14일 이사 교체와 함께 9월18일 사장 교체를 앞두고 있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언론 장악 시나리오’가 언론관련법 직권상정으로 결론을 맺게 될지, 방문진 이사 발표를 기점으로 더욱 노골화 될지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

방문진은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의해 지난 1988년 12월31일에 설립되었으며, 과거 언론통폐합 이후 KBS가 소유하고 있던 MBC의 주식을 넘겨받으면서 MBC의 대주주가 됐다. MBC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방문진은 MBC 경영진을 선임하며, 방송문화진흥자금의 운용 및 관리, 연구, 학술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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