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3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제6차 촛불집회에 몰린 시민은 주최 측 추산 232만 명이다. 헌정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집회에 참가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유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다.

시민들의 분노가 전국을 뒤덮자 새누리당 비박계도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등졌다. 당초 오는 7일 오후 6시까지 박 대통령이 4월 퇴진을 밝힐 경우 탄핵을 유보하겠다던 비박계였지만, 시민들의 성난 촛불에 9일 탄핵 표결 참여로 선회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오는 9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

▲5일자 조선일보 사설.

보수언론은 혼란에 빠진 분위기다. 탄핵에도 조기퇴진에도 발 담그기 어려운 입장이 됐다. 조선일보 5일자 <탄핵 표결해야 한다면 문제 시작 아닌 끝이 돼야> 사설에는 이러한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비박계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을 전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만장일치 당론으로 만들어 대통령에게 조기 퇴진을 요구하고서 이틀 만에 시위 한 번을 이유로 말을 뒤집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탄핵이든 중도 퇴진이든 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수 없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다만 탄핵의 경우 국회에서 가결을 장담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의 심리 결과도 100%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 심리가 4월을 넘기게 되면 오히려 탄핵이 박 대통령 임기를 더 연장시키는 결과가 된다"고 우려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보다는 중도 퇴진에 무게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탄핵 후 펼쳐질 차기 대선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탄핵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각 정당이 대선 후보 선정 절차에 들어가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대통령이 지금 당장 물러나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 현실성이 있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60일 이내에 각 당이 경선하고 검증하고 유세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논리다.

그러면서도 말미에서 "탄핵 표결은 현실이 됐다"고 인정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여야, 국민 모두가 표결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겠다는 결심부터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탄핵은 하되 모두가 결과에 대해 납득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납득은 보수언론과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친박계만 하면 될 듯하다.

그렇다면 보수언론은 왜 혼란에 빠진 것일까. 보수언론,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가 이번 박근혜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 이외에 주목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보수재집권'이다.

보수언론들은 조기 퇴진 의사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가 열렸던 11월 30일부터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인 2일까지 탄핵보다는 퇴진에 무게를 두는 사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30일 <朴 대통령 임기 단축 제안, 실현돼야 용단이다>, <여야 원내대표 '대통령 봄 퇴진' 놓고 일주일 내 협상 끝내라>, 1일 <野 대통령 퇴진 협상도 거부해서야 탄핵인들 되겠나>, <'親朴 개헌' 불가능, 朴 대통령은 퇴진 명확히 하길>, 2일에는 <朴 대통령 '4월 퇴진' 표명하면 국가 위기 고비 넘는다> 등의 사설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탄핵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에 방점을 뒀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약속받고 이후 단계적 퇴진 절차에서 정계개편을 통해 보수재집권을 노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촛불 민심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3일 촛불집회에 232만 명의 시민이 모여,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촛불은 횃불이 됐고, 새누리당 비박계는 성난 민심에 두 손을 들었다. 지난 주 탄핵보다는 퇴진을 요구하던 보수언론도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보수언론이 혼란에 빠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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