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때가 왔습니다. 이번 여름은 참으로 위대할 것입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한나라당·선진당 추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 조중동 등 수구신문은 기도 준비가 잘되어 가는 모양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제 짐작으로 지레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행동할 때 “김칫국부터 마신다”라고 한다. 헛꿈 꾸지 말라는 경고지만 이들이 이번 일에 김칫국을 미리 마셔두어도 좋을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언론법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도 소집되었고 표결처리를 위한 국회의석도 한나라당이 169석, 선진당이 14석, 친박연대가 5석으로 전체 의석의 63%를 차지한다. 한나라당 단독으로도 59%를 차지하니 걱정이 있을 수 없다. 민주당이 회의장을 점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첨단 감시 장비와 자물쇠가 달린 국회 회의장은 철통보안을 자랑한다.

명분도 있다. 작년 말에는 법안 발의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설익은 밥이었다. 2월 국회 역시 여론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듯한 사회적 논의기구도 만들었고 반쪽에도 못 미치는 나름의 여론수렴을 했으니 한 점 부끄럼도 없다고 위안 삼으며 지난 3월 표결처리하기로 했다는 합의문을 고스톱 판 화투장인 듯 흔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래도 걱정이 하나 있는 모양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문제다.

▲ 김형오 국회의장 ⓒ민중의소리
청와대와 한나라당, 조중동이 보면 김 의장은 여전히 회색분자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래전에 국회의장으로서 중립적 관점을 엿 바꿔먹은 우유부단하고 개념 없는 정부여당 소속 국회의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취해온 일련의 행보는 비록 게걸음이었지만 높은 데서 보면 한나라당의 언론장악 전선을 따라 움직였다.

작년 말 한나라당이 7대 언론악법을 들고 나왔을 때 김 의장은 직권상정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언론노조가 김 의장을 언론장악 5적으로 규정하고 그의 화상을 전 세계로 전파하자 그는 직권상정은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동의를 보냈다. 언론노조가 그를 5적에서 빼주자 화답한 듯 직권상정은 포기했다.

그보다는 청와대와 언론노조, 시민단체 등의 간을 한 번 봤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1차 입법전쟁을 마감한 후 부산일보에 “정치인생을 마감하더라도 지금 당장 정치를 그만두더라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주의 원칙을 버리지 않겠다. (청와대에 의한) 청부입법을 할 수는 없다”고 직권상정을 거부한 노회한 정치인으로 국민 앞에 당당했다.

하지만 입법부 수장 일언중천금(一言重千金)은 결국 풍선껌이 되고 말았다. 2월 국회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 대표가 2차 입법전쟁을 선언하며 김 의장에게 한밤중에 분칠하고 선글라스 끼고 다녀도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국회의장 자리에 앉혀준 한나라당 요구대로 직권상정 하라고 협박하며 탄핵도 불사할 듯 나오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도 여론수렴도 없고 국민의 65% 이상이 반대하는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 진입을 터주는 개악안을 직권 상정하는 것은 국회의장으로서 염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선하게 해석하여 대화와 타협의 의회주의를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중재에 나섰다. 3월 1일 오전부터 시작한 중재는 다음날 새벽에 겨우 합의점을 찾았다. 여야 3교섭 단체 원내대표와 청책위의장은 김 의장 주재로 연석회의에서 언론 관련법 처리에 합의한 내용은 이렇다. 첫째,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4개 법안은 사회적 논의 추진 기구를 만들어 4개월 간 논의 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 둘째, 사회적 논의 추진 기구는 3월초 문방위 산하에 여야동수로 추천 설치한다. 셋째, 저작권법, 디지털방송전환법은 4월에 처리한다.

그러나 합의문에 민주당, 선진창조의모임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이 모두 서명했으나 한나라당은 임태희 정책위의장만 서명하고 홍준표 원내대표는 서명을 거부했다. “4개월 간 논의 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에 불만을 품었다.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날이 밝은 아침 김 의장은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의 호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의 한 호텔이라고 한다.

그 이후 김 의장은 돌변했다. 표결처리에 동의하라고 민주당을 다그쳤다. 입법부 수장이 주재하여 대화와 타협으로 작성된 합의문을 스스로 파기하고 나섬으로써 다시 한 번 그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날 오후 언론 관련법 심사기일을 오후 3시로 정하고 직권상정할 법안 목록을 공개했다. 방송법, 신문법, IPTV 방송 사업법을 첫 번째부터 차례로 배치하여 민주당 등 야당에게 1시간반 내에 항복할 것을 통보했다.

결국 민주당은 어떤 최악의 조건이라도 서명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 합의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당황한 민주당은 김 의장이 ‘정보통신망법’을 직권상정 법안 목록에 올리지 않았는데도 표결처리에 동의해 줄 만큼 김 의장의 배신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이날 아침 강남 모 호텔로 불려간 김 의장이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의 협박에 굴복했다는 것은 타당한 추측이 아닐까 한다.

이제 국민 여론수렴을 위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활동도 끝났다. 한나라당과 선진당은 그들대로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은 또 그들대로 각자의 보고서를 문방위에 제출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이따위 보고서는 필요치 않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과 선진당의 보고서는 선전용 전단지로는 유효하겠지만 그들만의 보고서가 내용상 객관적 정당성은 확보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이미지에 먹칠을 하면서 개악안을 통과시킬 희석제는 아니다. 그래서 전면에서 돌격 깃발을 대신 들어줄 한나라당 가게무사가 필요하다. 그가 바로 김형오 국회의장이란 것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지난 4월 국회에서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억지로 상임위에 관련법을 상정한 것을 인정하더라도 법안심사소위와 법사위 등을 거쳐야 하는 등 쉽지 않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가 국회법 제85조를 거론하며 언론 관련법이 이미 상임위 심사기한을 넘겼으므로 의장의 직권상정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만큼 한나라당으로서는 김형오 의장이 움직여야 쉬워진다. 김 의장도 거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6선의 김 의장이 이제 1년 남은 국회의장을 떠나서 친정인 한나라당에서 노년을 편히 보내지 않는다면 어디에도 그를 받아 줄 정치 양로원은 없다. 더구나 선진당의 대안법과 반쪽자리 미디어위 보고서까지 있으니 마음도 편하다.

지난 4월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 나경원 의원은 6월 국회 방송법 처리를 묻는 기자에게 의장님이 처리해 주실 것으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장도 5월12일 오스트리아 방문 중에 기자들에게 “미디어관련법은 여야가 이미 약속한 대로 처리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법안 처리를 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이슈를 만들거나 미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미 한나라당의 전략과 전술을 성실히 수행하는 바지 사장이다. 미디어위가 여론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국회 표결처리 전제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는 민주당과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를 예상하고 이런 말을 던졌다. 예상대로라면 7월 말 찜통더위 속에 국회에서는 김형오 의장의 또 한 번 청부 원맨쇼가 펼쳐진다. 그러나 쇼는 쇼일 뿐, 공연이 끝나면 공허함이 남을 터다. 그의 쇼가 청와대와 한나라당, 조중동 등 수구세력을 잠시 즐겁게 하겠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눈물과 한숨 속에 몰아넣는 것은 자명하다. 김 의장의 여생이 삼류 코미디언의 초라함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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