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 선배가 건너 건너 부탁해왔습니다. “너 ○○○사건 알지? 그 사건 관련된 사람인데, 좀 부탁할 수 있겠니?” 그리고 동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같이 살았던 그 선배의 실명도 몰랐습니다. 일부러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선배도 아니었고, ○○○사건이라고 하지만, 그 사건과 그가 어떻게 관련되는지 몰랐습니다.

동거는 한 3~4개월 쯤 이어졌는데, 그 선배는 계속 단칸짜리 제 자취방에서 지냈습니다. 갑자기 제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동거인과 연락은 끊겼습니다. 머릿속에서 셈을 해보니 벌써 17년 전 이야기입니다. 87학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요.

○○○사건 관련자들의 인생은 그 후 다 달라졌습니다. 각자의 길을 간 것이지요. 어떤 분은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또 어떤 분은 생태전문가로, 또 다른 분은 출옥 후 인천 어디쯤에서 다시 노동운동 현장으로 투신했다는 ‘소문’을 나중에 다른 관련자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취재현장에 다니면서 그때 그 사건 관련된 분을 만나면 개인적으로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그 조직사건과 관련한 몇가지 ‘미스터리’를 물어보곤 합니다. 퍼즐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뿐 아니라 언젠가 사회운동사에 등장하는 80, 90년대 주요사건과 관련된 연속기획을 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러니까, 2~3년 내에는 어려울 것 같고…”라는 토를 달지만요.

개인적인 사설을 길게 늘어놨는데, 광우병대책회의 조계사 농성단 마지막 수배자인 김광일씨를 만났을 때 그런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 수배자 이야기를 다룬 책 제목입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책에는 부록으로 남민전 보안수칙 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이를테면 “버스에 타면 운전자 맞은 편, 두 번째 좌석에 앉아라”(제가 학생시절, 이 수칙을 지키면서 종이백에 플래카드를 접어 담고 이동하고 있는 사노맹 여성 맹원들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등등. 김광일씨도 그런 보안수칙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어쨌든 자세한 경위는 공개할 수 없지만, 은신처가 아닌 서울의 모처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계기는 그가 펴낸 책 <촛불항쟁과 저항의 미래>였습니다.

▲ 위클리 경향 기사 화면 캡처.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조계사 농성장이었으니 근 8개월 만에 만난 셈인데, 조금 야위었지만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배생활을 ‘수배투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의식적으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정해놓은 계획표대로 운동하고 독서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지난해 6월 27일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니 며칠만 있으면 만 1년이 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수배생활 중 제일 안타까운 것은 ‘야만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현장의 동지와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용산참사가 벌어지던 그날 김씨는 인터넷 생중계를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촛불시위 이전에 반전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양민학살이 벌어졌을 때 광화문에서 동지들과 함께 규탄집회를 열고 싶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덧붙여놓은 인터뷰 기사로 갈음하겠습니다.

물론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도 있고, ‘오프더레코드’를 부탁한 부분도 있습니다. 광우병대책회의에 대한 평가, 촛불시민연석회의에 합류하게 되는 네티즌 운동 흐름들, 그리고 진보학계의 촛불시위 평가에 대한 그의 견해 등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들도 공개할 날이 있겠지요.

항상 그렇듯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넘어 계속되었습니다. 오후 6시쯤 되자 시장기를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더 붙잡아 두는 것도 누가 되는 것 같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과거와 뭐가 달라졌나 생각했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보다 촘촘해진 감시망입니다. 김광일씨의 블로그는 조계사에서 그가 나온 후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습니다. PC방이든 어디든 그가 일단 접속한다면 경찰은 그의 행적과 관련한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됩니다. 포위망은 쉽게 좁힐 수 있겠지요. 우리에게 일상생활이 된 메일이나 휴대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인들과 일상적인 수단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 없는 고통. ‘정치수배자’가 없는 세상은 언제나 가능할까요.

기사 링크입니다.
[단독인터뷰] 조계사 마지막 수배자 김광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
“촛불시위는 정권 퇴진 운동이었다”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Weekly경향의 기자다. 사회팀장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KYC 등과 함께 풀뿌리공동체를 소개하는 <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풀뿌리가 희망이다> 책을 냈다. 괴담&공포영화 전문지 또는 ‘제대로 된(또는 근성 있는)’ 황색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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