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은 자기 속을 환하게 내보이는 숲입니다. 멀리서도 나무사이를 걸어가는 멧돼지가 보이고 쌓인 흰 눈이 보이는 숲입니다.

봄부터 숲은 속을 가리기 시작합니다. 나무에서는 잎과 꽃이 돋아나고 땅에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풀들이 돋아납니다.

▲ 5월 숲 ⓒ지리산
햇빛 들어설 틈도 없이 우거진 숲은 다니던 길까지 뒤덮어 산 다니기 어렵게 합니다. 겨울 숲은 나무껍질과 가지 끝, 겨울눈으로 나무를 구별해야 하기에 나무공부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나뭇잎, 꽃, 열매로 나무를 공부할 수 있어 우거진 숲을 다니면서 나무와 풀을 공부하는 데 이로움이 많습니다.

처음 숲에 들어서면 나무와 풀을 개별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로 뭉쳐서 그냥 숲이 산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숲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푸름이 마음을 가볍게 하고 상쾌하게 합니다.

굳이 단풍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함박꽃나무를 따로 구분해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없습니다. 예쁜 꽃과 푸름, 새들의 지저귐과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만으로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 계곡물 ⓒ지리산
▲ 삵 ⓒ지리산
▲ 나도밤나무꽃 ⓒ지리산
하지만 사람을 사귐에도 그 사람이 가진 성품과 생각을 이해하면 더 깊이 있게 사귈 수 있듯이 숲도 숲을 이루는 나무와 풀, 새와 네발 동물, 곤충들을 알수록 훨씬 더 숲과 가까워집니다.

숲에서 살다보면 삶의 필요에 따라 나무와 풀, 동물과 물, 곤충들을 배우게 됩니다. 몇 년을 찾아 헤매다 다른 나무들에게 살 곳을 빼앗겨 높디높은 바위 위에서 의연하게 서 있는 마가목나무를 만날 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숲을 헤매다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계곡에서 마시는 물은 얼마나 단지 모릅니다. 가을에 몇 시간을 올라가서 만나는 빨간 오미자열매는 얼마나 탐스런지 모릅니다.

숲에 의지해 삶을 살아가는 시대를 벗어난 지금 우리는 숲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문자를 모르는 문맹은 문자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문자에서 어떤 혜택도 받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은 컴퓨터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컴퓨터에서 어떤 혜택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숲에 대해 전혀 모르는 ‘숲맹’도 숲에서 많은 혜택과 삶의 활력을 얻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들은 모르면 도움받는 것이 없지만 자연은 모르든 알든 두루두루 공평하게 도움을 줍니다. 높은 산에서 시작한 한 방울의 물이 너른 바다까지 긴 여행을 하면서 모두에게 생명을 나누어 줍니다.

나무와 풀은 한시도 쉬지 않고 상쾌한 공기를 나누어줍니다. 좋고 밉고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두루두루 살아갑니다. 이런 숲에 살면서 숲에게서 삶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지리산에 댐을 만든다고 합니다. 숲의 삶을 이해하기엔 머리가 부족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사람보다 수 만년을 더 살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한 숲을 가난한 마음으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겸허한 마음으로 숲에게서 삶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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