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3일 방송통신위원회는 ‘2009년도 시청자권익증진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된 단체들을 발표하였다. 결과는 오랫동안 시청자권익보호 활동을 수행해 온 단체들은 탈락하고 관련 활동분야에서 듣도 보도 못한 단체들이 대부분 선정되었다. 시청자운동 단체들을 탈락시킨 것은 ‘경찰청이 이들을 불법폭력단체’로 정해 통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오랫동안 시청자권익보호 활동을 해 온 단체들이 배제된 이유가 불법폭력단체이기 때문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시청자권익증진=경험과 역량 있는 단체 배제하는 데서 출발?

▲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스
시청자권익증진활동 지원사업은 애초 ‘시청자단체 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2000년 통합방송법 개정 시 방송발전기금의 용도에 ‘시청자단체 및 미디어교육 지원’이 명시되면서부터 시작, 현재 10년째 계속되는 지원사업이다. 그동안 40여개가 넘는 전국의 단체들이 이 사업에 참여해 왔으며 이로 인한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방송과 통신규제 기관을 하나로 묶어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업주무기관이 되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참여하는 단체가 늘면서 조금씩 늘던 예산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시청자단체 활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니터링 분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원분야에서 아예 제외해 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지난해 사업수행 실적이 우수하다고 칭찬하던 단체들을 이번 지원사업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실적이 우수한 단체들을 배제한 채 그동안 관련 활동이 없어 그 수행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단체들에게는 오히려 가산점까지 주면서 선정하였다.

초기 지원사업을 추진하며 발생한 많은 오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단체 활동 지원사업 대상 선정시 지원사업 수행능력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기에 ‘최소 1년 이상 관련 활동 수행 실적이 있는 단체에게만 지원자격을 부여해 왔던 것과 사뭇 다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어떤 단체는 지원사업 신청 직전에 급하게 사단법인화하고 선정된 경우도 있으니 그 수행능력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정된 모 단체의 경우는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신 이명박 대통령님의 효과적인 국정운영과 방송통신 및 언론의 새로운 문화창달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단법인으로 출발하게 되었다며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밝히는 등 정치색이 강한 단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음에도 선정되었다. 과거 시청자단체 지원사업 선정시 정치적 편향성이 강해 공익적 활동이 우려되는 단체, 임원 중에 정당, 정치인이 있는 경우 등은 지원자격이 제한되기도 했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지원사업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통위, 경찰청 자료참조 불법시위관련 단체 선정대상에서 제외

이에 시청자운동단체들의 연대모임 성격을 갖고 있는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는 방송통신위원회에 ‘2009년 시청자권익증진활동 지원사업’ 선정과정에 대한 공개질의를 하였다. “시청자권익증진이 경험과 역량있는 단체를 배제하는 것인가?”를 묻고 “선정과정과 기준을 낱낱이 밝히고 해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5월 29일 방통위는 “기획재정부의 ‘2009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 행정안전부의 ‘2009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추진 방향 및 경찰청의 관련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불법시위 관련 단체에서 제출한 사업을 선정대상에서 제외”하였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번 지원사업 선정시 경찰청이 임의로 정한 불법폭력단체 리스트를 방통위가 수렴했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경찰이 사법부인가? 언제부터 사법기관을 제치고 불법단체 여부를 판단하고 낙인찍는 권한을 경찰청이 가졌는가? 경찰청이 임의로 정해 통보하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면서 오랫동안 시청자권익증진을 위해 활동해 온 단체들이 불법폭력단체가 되는가. 문제가 커지자 경찰청은 참고용일 뿐이라며 뒤로 꽁무니를 빼고 있으니 그로 인한 시청자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처럼 책임질 주체도 확실하지 않는 채 진행된 사업으로 인해 20여년 동안 시청자들의 권익증진과 방송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 온 수많은 단체들의 경험이 정부기관의 오만과 무책임 속에 그대로 사장되고 부정되고 있다. 이번 지원사업 선정결과는 시청자단체의 운영비가 아닌 사업지원을 통해 건강한 방송환경 조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원래의 의미는 점점 퇴색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단체들에게 유리하게 운영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방송환경은 다매체 다채널화가 되면서 심화되고 있는 시청률경쟁으로 인해 점점 더 상업화되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보도는 연성화되고, 저질 콘텐츠는 범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들의 자율적 감시활동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에도 모니터링 분야 배제와 지원사업 예산축소 하는 등 방통위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거꾸로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존립근거는 정부를 비롯한 각종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가 핵심이다. 때문에 비판적 의견, 문제제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활동했다 해서 모두 불법폭력단체로 몰아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하는 것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디까지면 불법폭력단체고, 어디까지 이하면 불법폭력단체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는 현재 방통위에 “2009년 시청자권익증진활동 지원사업 심사과정 및 선정기준, 결과에 대한 내용 일체와 관련 논의 및 결과를 의결한 회의록 일체”를 정보공개청구해 놓은 상태이다. 정보가 공개된 이후에도 투명하게 지원사업 수행 단체를 선정했다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청자권익 증진’은 보다 덜 상업적이고, 보다 더 건강하고, 누구나 안심하고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어떤 단체는 되고, 안되고의 여부를 공익사업 수행능력 여부가 아닌 경찰청이 임의로 정한 잣대를 들이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통위의 역할은 다매체 다채널환경으로 더욱 상업화되어가는 미디어환경에서 사업자에 대한 진한 애정을 줄이고 점점 더 작아져만 가는 시청자의 권익증진을 위한 정책추진이지, 힘있는 특정세력의 눈치 보기가 아니다. 이와 같은 비판의 한복판에 방통위가 서있지 않길 다시 한번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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