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경찰의 곤봉세례를 받아가면서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값싼 외국산에 밀려 쌀 생산기반은 붕괴되고 주식마저 석유처럼 해외공급에 의존하는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 가뭄, 홍수 등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일어나면 흉작으로 인한 가격폭등이 그대로 국민생활을 강타한다. 바로 2년전 세계적 식량위기로 22개국에서 민중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국은 쌀만은 자급체제를 유지해 식량파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3년 12월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면서 쌀시장도 MMA(최소시장접근)에 의해 열렸다. 수입물량을 10년간 단계적으로 늘려 소비수요의 4%까지 개방했던 것이다. 이 물량은 소비와는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당시 국내 쌀값이 국제시세에 비해 4~5배가량 비쌌다. 그 때문에 고율의 관세를 붙여 시장을 전면개방하기보다는 일정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쌀 농업을 보호하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0년이 지나 2004년 또 다시 전면개방과 제한개방의 유-불리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내에 포진한 비교우위론자들은 공산물을 수출해 농산물을 수입해 먹는 게 싸다며 전면개방을 주장했다. 이에 맞서 농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전면개방을 반대했다. 수출국과 협상결과 MMA에 의한 의무수입량을 증량하는 선에서 전면개방이 유예됐다. 2004년 의무수입량을 1988~1990년 소비량의 4.4%(22만5,575t)에서 출발해 2014년 7.96%(40만8700t)로 해마다 늘리기로 합의한 것이다.

▲ 한겨레 5월 19일자 26면.
2006년 이후 국제 쌀값이 크게 상승해 국내외 가격차가 좁혀지자 이명박 정부가 전면개방을 밀어붙이고 나섰다. 관세화를 통한 전면개방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 1200원을 적용하고 관세율을 400%로 잡으면 수입산 값이 국내산보다 비싸 수입수요가 미미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누구도 세계작황과 환율변동을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격과 환율이 급락하면 수입수요가 폭발하여 쌀값 폭락으로 재배농사가 치명타를 입는다. 장기적으로는 생산기반이 붕괴된다.

또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DDA(도하개발아젠다)협상도 변수이다. DDA협상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유지한다면 쌀 시장 개방 이후에도 40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전면개방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선진국으로 분류된다면 관세율을 200% 이하로 낮춰야 한다. 이 경우 관세를 방어벽으로 활용하여 수입물량을 조절할 수 없다. 그 이유로 농민들이 전면개방을 드세게 반대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갑자기 전면개방을 추진하는 데는 배경이 있다. 그것은 재고미 증가이다. 단경기(端境期)라고 해서 농산물 수요량이 공급량을 초과하는 늦봄과 초여름에는 쌀값이 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는 쌀값이 떨어지고 있다. 재고미가 4월말 현재 76만9000t(80㎏들이 950만 가마)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FAO(식량농업기구) 권장 재고량은 소비량의 16∼17%인 550만∼600만석 수준이다. 지난해 작황이 좋았고 대북지원이 2년째 중단됐기 때문이다. 대북지원 규모는 국내산만 2002년 40만t, 2003년 40만t, 2004년 국내산 10만t, 2005년 40만t, 2007년 10만t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가까운 시일내에 대북지원이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기에다 쌀 소비량은 국민 1인당 2007년 76.9kg, 2008년 75.8kg, 2009년 74.3kg으로 계속 줄고 있다. 그런데 의무수입량은 해마다 늘어난다. 이에 따른 재고미 관리비가 큰 부담이다. 100만석을 관리하는 데는 금융비용, 보관료 등 연간 450억원이 소요된다. 현재의 재고미를 관리하려면 연간 4000억원이 들어간다는 소리다.

쌀 개방을 다루는 농어민선진화위원회의 성격부터 문제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직속 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가 있다. 그런데 법적기구를 무시하고 지난 3월 임의기구를 시장론자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출범하자마자 가족농 중심의 농업구조를 기업농 중심으로 개편할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런 위원회가 쌀 개방을 추진하니 농민들이 반발하는 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의 논의대로 농업구조를 개편하면 식량안보는 증발되고 농민은 농업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쌀 관세화 개방은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재고미는 주정용, 가공용, 사료용으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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