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왕’이라고 불릴 만큼, 프랑스 왕조 역사상 가장 무소불위 권력을 자랑하던 루이 14세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아니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통해 공개된 <루이 14세의 죽음>(알베르트 세라 감독) 속 루이 14세(장 피에르 레오 분)는 첫 장면부터 서 있지 못하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프닝 때는 휠체어를 타고라도 궁 밖으로 산책을 나갈 수 있었던 루이 14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궁 안, 엄밀히 말하면 침실에 갇혀 있다.

온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루이 14세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다. 알베르트 세라 감독은 왜, 루이 14세의 많고 많은 일대기 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쇠한 루이 14세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서기도, 물 한 잔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루이 14세를 보여주었을까. 여전히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신하들의 헌신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지내고 있는 루이 14세라고 하나, 그의 말년은 화려했던 지난날과 대비되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영화 <루이 14세의 죽음> 스틸컷

혹자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에 출연한 이래, 누벨바그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장 피에르 레오가 죽어가는 루이 14세를 연기했다는 점을 예를 들며, <루이 14세의 죽음>을 영화의 죽음을 절묘하게 비유하는 영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 시종일관 루이 14세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보여주는 <루이 14세의 죽음>은 움직이는 것을 카메라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박제된 회화를 보는 것 같다. 신하들과 궁정 의사들의 헌신적인 치료에도 병세가 악화되는 노년의 루이 14세의 얼굴과 달리, 젊고 건강한 루이 14세의 청년시절을 그린 초상화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루이 14세의 얼굴만 나오는 덕분에, 2시간 러닝타임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루이 14세는 관객들이 겪었던 지루함보다 몇억 배의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루이 14세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숙명이다. 돈, 권력, 명예, 지위 모든 것을 다 갖춘 루이 14세는 당연히 오래 살고 싶었고, 루이 14세를 잘 모신 덕분에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루이 14세의 신하들도 그가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최선인 의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루이 14세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었다.

영화 <루이 14세의 죽음> 스틸컷

하지만 죽을 날을 앞둔 루이 14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받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루이 14세는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만으로도 궁정 사람들의 진심어린 박수세례를 받는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그 모습은 흡사 동물원 우리 속 침팬지의 재롱잔치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루이 14세의 수많은 일화 중에서 굳이 죽어가는 루이 14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택한 알베르트 세라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우려도 있지만, 그럼에도 <루이 14세의 죽음>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루이 14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몇 마디 말로는 형연할 수 없는 감정을 북돋운다. 우리 모두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단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살아갈 여지가 남아있는 것 아닐까. 디저트와 와인을 마시며 무언가를 오랜 시간 노려보는 장 피에르 레오의 표정이 깊은 잔상을 남기는, 단언컨대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될 <루이 14세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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